[박문수의 교회문화 이야기]

지난 주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몇 달 동안 몰두하던 일이 끝나 몸과 마음을 쉬고 싶어서였다. 남들은 힘들게 산을 오르는 일이 무슨 휴식이 되느냐고 하지만 필자에게는 최고의 휴식이자 기도이다. 가을이 완연한 계곡을 따라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오색으로 물든 단풍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살을 맞으며 천천히 정상에 오르다보면 관상이 따로 없다. 이 기분은 경험해본 사람만 안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아무도 내 기도를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 모처럼 홀로 산행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해발 천이백 미터 되는 산마루에 올라 한참 동안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노라니 사람들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중에 혼자 온 등산객들이 내 옆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침 점심을 준비하지 못했던 터라 염치 불구하고 점심 공양에 동참했다. 산에서야 누구나 선한 사람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아니 선한 사람들이 산을 좋아해서 그럴 것이다. 아무튼 그들과 같이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오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이 때 나누었던 이야기 가운데 필자의 마음을 울렸던 것이다.

내 이름 석자가 그렇게 낯설게

분당에서 왔다는 쉰 살 먹은 어느 남자 분은 한 달에 한번 이 산을 오른다고 했다. 한계령 옆 자락 내설악 끝에 있는 이 산을 오르려면 오지탐험에 가까운 모험을 해야 하는 터라, 한 달에 한 번씩이나 이곳에 오는 정도면 이 산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다. 평범한 직장인이고, 자식이 둘 다 장성한 그이는 몇 년 전 우연히 회사에 있다가 갑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남편, 부장, 아버지인 자신 말고 참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더라는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자기 이름 석자가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나도 나만을 위해서 살아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위해 산을 택했다고 한다. 익숙하지 않은 산을 혼자 오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산을 오르면서 많은 것을 정리하고 무엇보다 자신을 발견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그는 산이 없으면 살 수 없노라고 했다.

또 한 사람은 교포 여자 분이었는데 한국에 왔다가, 친구를 따라 이 산까지 왔다고 한다. 사십이 조금 안 되었다고 하니 삼십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이혼하여 혼자 살고 있고 지금은 미국과 한국에 남자 친구를 각각 한명씩 두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 남자친구는 유부남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남자 때문에 갈등이 심하다고 했다. 남의 가정을 파탄내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헤어지기도 싫은데 어찌하면 좋으냐는 것이 그녀가 그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초면에 그녀가 던진 질문이 너무 낯설어서 다들 입을 떼지 못하였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이내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들 친구처럼 진심어린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점심 자리는 두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자기 몫을 할 수 있어야

일정 때문에 산에서 만난 이들을 뒤로 하고 혼자 산을 내려왔다. 산을 내려와 묵었던 산장 주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도시를 떠나 혼자 이곳에 내려와 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산중에 사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산을 떠나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는 산장을 하면서 일 년에 수백 명을 만난다고 했다. 처음에는 등산객들이나 쉬러온 이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직업으로 했는데, 이제는 산장주인이 아니라 상담가, 멘토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산장주인이긴 하지만 그는 단순히 방이나 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시에서 상처를 안고 온 사람들, 진지한 삶의 문제를 안고 온 사람들, 세상 떠나기 전에 마지막 여행 오는 심정으로 온 사람들을 만나 밤새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산을 오르다보면 그들이 다시 살 기운을 얻어 돌아가게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돈을 벌려고 한 일이 이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되어 돈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을 맞는다고 한다. 그 덕에 필자도 전날 저녁과 잠자리를 그곳에서 해결했다.

뜬금없이 웬 산 이야기인가 싶으셨을 것이다. 남들은 바빠도 산에 갈 엄두를 못 내는데 염장을 지른다 싶으셨을 것이다. 혹시 그렇게 느끼셨다면 용서해주시길 바란다. 필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자기 몫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곳이 산이든, 바다이든 그가 준비만 되어 있으면 모든 곳이 구원의 자리이고 남을 섬기는 꽃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제도에 소속되기 이전에 이런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서 여러분도 그렇게 돼보시면 어떨까 해서 염장을 질러 본 것이다. 특히 인생의 오후반인 필자와 같은 연배에 있으신 분들이 앞의 어느 남자 분처럼 자기를 찾는 마음을 내 볼 수 있기를 바라서 무례를 저질러 보았다.

/2008.10.24.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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