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자 계엄에 이은 내란 소용돌이가 가라앉는다. 어수선했던 세상이 정리되는 순간이 이어지면서 마음이 편해지지만, 마냥 안심하는 건 아니다. 국민을 바라보며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거듭 약속하는 새 정부가 미더우면서, 이상 사회로 향한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 탓이다. 무도했던 정권의 폭거가 빚은 상처가 치유되면서 민주주의 성숙을 염원하던 시민은 대체로 만족하겠지만, 안타깝게 우리는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았다. 미래 세대의 생존이 위험해진 상황이다. 이제 사회의 이상이 달라야 한다. 민주주의 기준을 새롭게 수정해야 한다.
에어컨을 모르던 유럽이 근래 섭씨 45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시달린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열돔이 남부를 넘어 유럽 전체를 뒤덮는다. 체온보다 높은 기온을 갓 경험한 우리도 다르지 않다. 티베트와 북태평양 고기압이 두 겹으로 형성한 열돔으로 온열 환자가 작년의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는데, 내년 이후가 더 걱정이다. 온난화로 휘말리는 속도가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폭염에 이은 가뭄과 홍수가 빗발쳐 기후 변화는 세계적 식량 위기와 갈등, 그리고 감염병 창궐을 예고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은 안일하다. 개발 관성에서 벗어나려 애쓰지 않는다.
2024년 8월 세계지질과학총회는 부산 벡스코에서 현 지층의 이름을 홀로세에서 인류세(Anthropocene)로 공식 변경하려 했다. 증거가 분명해도 지층이 지나치게 얇아 총회는 실무위원회 제안을 일단 보류했는데, 4년 뒤 승인할 것으로 실무 과학자는 내다본다. 인류세는 종말을 예고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기후 위기만이 아니다. 탐욕스러운 에너지 소비에 이은 치명적 오염, 심각하게 훼손된 생태계와 파괴된 지형은 인류를 포함해 현 생물종의 70퍼센트 이상을 지층에서 순식간 몰아낼 수 있다는 경고다. 앞선 5차례 대멸종은 자연재해가 원인이었는데, 인류세는 오로지 인간이 원인을 제공했다. 돌이킬 수 있을까? 있다면 시간이 얼마나 남았고, 무슨 행동에 나서야 하나?
위기를 인식하는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6차례 보고서로 현황을 분석하며 각국 정부에 대응을 촉구하는데, 지지부진하다. 부자 나라일수록 기득권 눈치를 살피며 변죽만 울리는데, 우리 전 정권은 오히려 역행했다. 그만큼 파국이 가까워졌고, 미래 세대에 닥칠 위기는 심각해졌다. 현 정권의 생존 정책이 더욱 다급해진 것인데, 정책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지구적 기후 위기는 한 국가의 정책과 행동으로 모면하지 못해도 누구라도 선도할 수 있다. 남 탓하기에 앞서 의식 있는 국가와 지역부터 행동해야 할 텐데, 기준이 중요하다. 기회가 남았을 때 정책의 중심을 미래 세대에 맞춰야 한다. 무엇일까?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며 세계 굴지 기업들은 ‘RE100’을 약속하고 실천에 나서는데, 우리 정부도 그에 호응해 다행이다. 하지만 수도권을 향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도 지나치면 위험하다. 아이슬란드를 보자. 빙하와 화산 지대로 둘러싸인 아이슬란드는 지열과 수력이 풍부하지만, 미국계 다국적 디지털 기업의 데이터센터가 밀집되자 위기에 빠졌다. 전기료부터 올랐지만, 빙하와 수자원이 크게 줄었다. 분별없는 인공지능과 경제 성장은 기후와 생태계 위기를 촉발할 수 있으니, 미래 세대가 감내할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는 지역에서 자급해야 정의롭다. 지역의 풍력과 태양력 전기가 수도권으로 밀집되면 지방은 소외되고 미래 세대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세계적 기후 위기는 화석 연료 지원으로 생산하는 식량 체계를 무너뜨릴 것이니,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는 안보 차원으로 식량 자급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일까? 자급을 전제로, 농어촌과 산림을 보존하고 농어민의 안정적 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이다. 그를 위해 생물 다양성과 토종 유기농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미래 세대까지 지속 가능하려면, 경쟁적으로 중앙을 향하는 에너지, 교통, 교육 정책은 제한해야겠지만, 거기에서 그칠 수 없다.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고 지원하는 지역 정책이 중요하다. 지역 문화를 보전하는 활동에 나서는 젊은이가 있다면 정책적으로 그들의 자긍심을 지켜야 한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밀집, 밀접, 밀폐된 도시에서 빠르게 확산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더욱 심각할 텐데, 경쟁적인 개발과 화석 연료 소비가 화근이다. 미래 세대를 생각한다면 수도권에 집중된 사회를 분산해야 한다. 에너지와 식량, 그리고 돌봄이 지역에서 자급되도록 지원하는 정책이다. 경쟁에 지쳐 희망을 잃어 가는 젊은이에게 기본 소득을 제공하는 정책도 고려할 수 있겠다. 기본 소득은 도지사 시절부터 이재명 정권의 관심사였으며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 미래 세대 국민의 생존을 생각한다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자급자족 농경 사회에서 인공지능 디지털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치며, 소득이 눈에 띄게 오른 우리는 에너지 과소비로 안락하게 오래 살지만,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기적 삶이 내 아이의 삶을 위기에 빠뜨리지 않았나. 승자 독식 경쟁 사회는 언제나 불안하다. 행복과 거리가 멀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인류세가 되었다. 미래 세대에 전가될 파국을 한시바삐 돌이키려면 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대를 당장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이재명 정권은 돌이킬 수 있다. 아이가 맞을 민주주의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시민은 지속 가능한 정책을 환영할 것이다.
기후 위기와 감염병을 극복할 정책은 무엇이어야 하나? 고민하며 실천하는 사람은 지역에 있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무엇이고 어떻게 지원해야 좋을까? 인천에 터 잡은 사단법인 ‘새로운 일상을 여는 사람들’이 답을 찾으려 발품을 팔았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상황에도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 실천하는 젊은이를 만나 그들의 희망과 고민을 들었다. 기본 소득, 감염병 위기, 지역과 지속 가능성의 가치를 찾아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재명 정권이 귀담을 내용이다. 5년여 대화를 기록해 책, "반드시 열어야 하는 새로운 내일"을 펴냈다. 독자의 성원으로 새로운 정책을 새 정권에서 펼치기를 기대하면서.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ㆍ새로운 일상을 여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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