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전쟁 순교자의 가족들이 한국을 방문해,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했다.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앤서니 콜리어 신부(고 안토니오), 프란시스 캐너밴 신부(손 프란치스코), 토마스 쿠삭 신부(고 토마스)의 친척과 후손 10명은 5월 19일부터 26일까지 대전, 광주, 춘천, 원주 등 고인들이 활동했던 곳과 순교 장소를 찾았다.
세 신부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으로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제임스 매긴 신부, 페트릭 라일리 신부, 패트릭 브래넌 몬시뇰, 존 오브라이언 신부와 함께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에 포함됐다. 현재 시복 대상으로 심사 과정에 있다.
이번 순례를 준비하고 함께한 오기백 신부는 “방문한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하고, 초대해서 이뤄진 일이어서 특별히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복 준비 과정이 10년쯤 되면서 가족들도 나이가 많기 때문에 상황이 허락될 때 한국에서 고인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시복 진행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후배 선교사 입장에서 선배들에게 큰 영감을 받았고, 그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면서,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대신 그 가족들에게 감사드리고 한 번은 모시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대전교구 목동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집단 학살터 추정 장소), 대전 신학교 성직자 묘지, 광주대교구 목포 산정동, 용담동, 경동 성당(토마스 쿠삭 신부 어머니가 봉헌한 14처가 보존된 곳)을 둘러보고,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와 만나는 시간도 가졌다. 23일에는 서울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본부에서 환영 미사를 봉헌했고, 24일은 춘천교구를 방문해 순교자들의 가묘가 있는 죽림동 성당 성직자 묘지, 강릉 임당동 성당을 들른 뒤, 김주영 주교와 만났다. 마지막으로 26일 원주교구 횡성 성당을 방문한 뒤 출국했다.
토마스 쿠삭 신부(고 안토니오)의 사촌 여동생은 1948년 즈음 휴가차 본국에 들렀던 쿠삭 신부가 집 떠나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오빠의 사망 소식을 들었던 날도 아주 자세히 기억한다"는 그는, "그 뒤 오늘까지 슬픔과 고통은 여전하고 아마 죽을 때까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가족의 죽음으로 한국전쟁의 슬픔과 고통을 피부로 느끼게 됐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고인들이 “타국인으로서 분명히 철수하거나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한국 사람들, 신자들과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결심은 분명 대단한 것이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시복 심사를 간절히 바라며,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가 궁금하다면서도, “한국 신자들의 환대, 선교사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과 기억, 사랑을 보면서 정말 마음이 기쁘고 감사하다”고 했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23일 환영 미사에서 오기백 신부는 특별히 복음을 전하려다 생명을 바친 7명의 선교사를 기억했다. 그는 “그분들의 삶은 예수가 말한 그 사랑의 가치로 움직이고, 결국 그러한 용기와 사랑을 결정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기억했다.
“내가 여기를 떠나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나는 누군가가 죽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함께 남기로 했습니다.”(토마스 쿠삭 신부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중)
1950년 대전 목동 성당 포로 집단 학살 때 순교한 쿠삭 신부의 편지글을 읽은 오기백 신부는 “이 믿음과 정신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도 그런 믿음과 사랑을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의 작은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는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당시 순교자와 한국전쟁 전후 순교자들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삶과 죽음으로 증거한 이들이다. 이들에 대한 시복 안건 예비 심사는 2022년 6월 마무리됐고, 현재 바티칸에 문서가 제출된 상태다.
81위 가운데 한국전쟁 전후로 북한 지역에서 피랍, 피살된 이들은 35위, 남한 지역에서 체포돼 이른바 ‘죽음의 행진’으로 북한까지 끌려가는 중에 세상을 떠난 이들은 11위다. 납치, 행방불명된 이들은 27위, 북한 지역에서 행방불명된 이들은 19위다. 이 가운데 당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순교한 이들은 7명이며, 강릉, 대전, 삼척, 춘천, 북한 중강진에서 순교했다.
- 앤서니 콜리어 신부(고 안토니오) : 1939년 한국 파견. 1950년 6월 27일 춘천교구 소양로 성당 주임으로 북한군에 총살. 춘천교구 죽림동 성직자 묘지 안장.
- 제임스 매긴 신부(진 야고보) : 삼척 본당 사목 중 체포돼, 1950년 7월 4일 삼척에서 총살.
- 패트릭 라일리 신부(라 바드리시오) : 묵호 본당 사목 중 체포, 1950년 8월 29일 즈음 강릉에서 총살.
- 패트릭 브레넌 몬시뇰(안 바드리시오) : 1949년 11월 제4대 광주지목구장으로 임명. 1950년 9월 23-26일 사이 대전에서 피살.
- 토머스 쿠삭 신부(고 토마스) : 목포 산정동 주임으로 사목하던 중 체포돼, 대전 목동 성당으로 이동. 1950년 9월 24일 집단 학살 때 순교한 것으로 추정.
- 존 오브라이언 신부(오 요한) : 1950년 7월 목포 산정동 성당에서 체포, 1950년 9월 23-26일 사이 대전에서 피살.
- 캐너밴 신부(손 프란치스코) : 1950년 춘천 죽림동 성당에서 미사 중 체포. 북한까지 끌려가는 ‘죽음의 행진’을 겪고 같은 해 12월 6일 중강진에서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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