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차관보 아우구스토 잠피니 신부

“진정으로 인간적인 길은 권력 차지하려는 이들을 ‘함께 걷는 과정’ 속으로 초대하는 것”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차관보를 지내고 코로나 세계적 유행 당시 교황청 COVID 위원회를 이끈 아우구스토 잠피니(Augusto Zampini) 신부가 지난 5월 7일부터 16일까지 한국을 다녀갔다. 아르헨티나인이자 변호사 출신으로 그는 경제와 도덕 신학, 생태 영성을 연결해 왔고, “신부가 왜 다보스 경제 포럼에 가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으면서도 세계 경제 포럼에 4년 연속 참석했다.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영성과 교훈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번 처음 한국을 방문한 잠피니 신부는 유엔사회발전연구소와 연세대학교가 공동 주최한 ‘생명을 위한 경제’ 국제 포럼 발표를 시작으로, 정순택 대주교 예방, MBC 간담회, 가톨릭 에코 포럼 '찬미받으소서' 반포 10주년 특별 강연, 비무장지대 평화 순례까지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다음은 지난 16일 출국을 앞둔 잠피니 신부와 만나 나눈 이야기 내용이다.

전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차관보 아우구스토 잠피니 신부. ©경동현 기자<br>
전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차관보 아우구스토 잠피니 신부. ©경동현 기자

<지금여기> : 이번 한국 방문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무엇입니까?

잠피니 신부 : 이번 방문에서 제가 겪은 주요 세 가지 경험은 유엔 국제 포럼과 가톨릭 에코 포럼 그리고 DMZ 평화 순례였습니다. 유엔 회의에서 인상적인 점은,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더 포괄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제 모델을 추구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었고, 이 내용들은 다음 G20 정상회의 의제에도 포함될 예정입니다. 두 번째는 가톨릭 에코 포럼에서 강연한 것인데, 늦은 시간까지 많은 분이 자리를 지키고, 특히 프란치스코 교종이 한국의 많은 신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사실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통합 생태에 관한 프란치스코의 유산을 따르고자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통합 생태’란 나무나 동물, 자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측면, 즉 ‘가난한 이들의 외침’과 ‘지구의 외침’은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이러한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 매우 놀랍고 인상 깊었습니다. 세 번째는 DMZ 평화 순례였습니다. 분쟁을 상징하는 장소를 방문할 때마다 저는 깊은 고통을 느낍니다. 매우 아프고 슬픈 체험이었는데, 이번 순례에서 한반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던 것은 큰 수확이었고, 많은 이가 평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사실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DMZ 평화 순례 여정에서 팍스크리스티코리아 이성훈 공동 대표와 아우구스토 잠피니 신부. (사진 제공 = 팍스크리스티코리아)
DMZ 평화 순례 여정에서 팍스크리스티코리아 이성훈 공동 대표와 아우구스토 잠피니 신부. (사진 제공 = 팍스크리스티코리아)

<지금여기> :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지난 10년간 교회와 사회에 어떤 실질적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잠피니 신부: 이 회칙은 교회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회칙입니다. 교회 바깥에서도 그렇고, 발표된 지 고작 1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일이죠. 이 회칙은 현재 위기의 분석이 매우 설득력 있고 반박 여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 분석은 최고의 과학적 자료를 기반으로 하며, 사회적·생태적 문제가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인과를 매우 명료하게 설명합니다. 그것이 전적으로 인간적 원인에 기인한 것이며, 단지 문제의 분석에 그치지 않고 해결책까지 함께 제시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러한 인간적인 문제에 대해 윤리적 분석을 바탕으로 ‘정치적, 경제적 차원’과, ‘교육, 문화 차원’, ‘영성 차원’의 세 가지 실천 축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논리 구조가 이 회칙을 매우 설득력 있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이 회칙은 다른 종교들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유엔 안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찬미받으소서'는 파리 기후 협약이 공식 채택되기 전 발표됐고, 협약이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이를 다시 전진시킬 수 있는 힘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여기> : 10주년 특별 강연에서 한국 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나 도전 과제를 무엇이라고 보았는지 궁금합니다.

잠피니 신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 더 나아가 국가 전체가 당면한 도전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한국이 최근에 이룬 놀라운 경제 발전의 역사와 관련된 것입니다. 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이 지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가 되었는데, 이러한 발전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고 포괄적인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이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에너지 상당수는 여전히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정한 전환(just transition), 즉 정의로운 방식으로 다른 에너지원으로 나아가기 위한 길은 어떻게 열어야 할까요? 이게 하나의 도전입니다.

두 번째 도전은 교회 차원의 문제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말씀하신 '생태적 회심'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입니다. 이 회심은 단지 일부 환경운동 단체나 가톨릭기후행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가족, 본당(성당), 교구 전체가 변화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영적인 힘, 영적 쇄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생태적 영성’, 더 나아가 ‘통합 생태 영성’이 모든 가톨릭 학교, 본당, 가정 속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돌봄의 영성, 곧 나를 돌보고, 타인을 돌보고, 사회를 돌보고, 창조 세계 전체를 돌보는 영성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도전은 한국 교회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교회를 포함한 모든 교회에 해당하는 보편 과제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 교회가 2027년 세계청년대회를 열 예정인데, 이 대회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통합 생태적 관점에서 제대로 기획되고 연결되도록 준비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토 잠피니 신부와 평화의 소녀상. (사진 제공 = 팍스크리스티코리아)<br>
아우구스토 잠피니 신부와 평화의 소녀상. (사진 제공 = 팍스크리스티코리아)

<지금여기> : 아마존 시노드에서 전문가 자문단으로 참여하셨는데, 시노드 과정에서 특별히 인상 깊었던 점이 있는지요.

잠피니 신부: 우리는 아마존에 속한 9개국에서 지역 대화 모임(local assemblies)을 수백 번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이 아마존 시노드는 지역 주민, 원주민, 전문가들도 함께 초대되어, 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시노드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9개국의 공동체가 내놓은 최우선의 관심사가 놀랍도록 유사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들의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열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지역에서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면 생명의 위협을 받습니다. 생태 운동가들이 살해당하기도 합니다. 착취 문화와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제 구조에서 비롯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는 발전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 삶의 터전을 지키며 발전하고 싶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아마존과 콩고의 열대 우림은 지구의 양대 허파입니다. 아마존은 지구 생태계 전체에서 엄청난 힘과 주도적 역할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마존 지역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진정한 대화란 무엇인가’를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주교들이 로마에서 열린 본회의에서는 오히려 대화가 더 어려웠습니다. 원인을 생각해 보았는데, 평신도들, 청년들, 원주민들의 말을 ‘아랫사람의 말’로 여기고 진지하게 듣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가 있습니다. 원주민이 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의 방식에서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프란치스코 교종이 제안하신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도 앞으로 레오 14세 교종도 그러하겠지만, ‘교회 안에서 먼저 시노달리타스를 실천해야 교회 밖에도 전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 제가 아마존 시노드에서 배운 인상 깊은 문장이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세계 인구 비중으로는 매우 적지만, 전 인류가 의존하는 중요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말이 참 깊이 있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흔히 원주민을 ‘불쌍한 존재’로 생각하며 보호 대상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지혜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 개혁은 구조가 아니라 과정

<지금여기> : 강연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의 유산 중 하나인 지속적인 교회 개혁에 대해서도 언급하신 것으로 압니다. 서구 교회의 관점에서 보편 교회의 시노드 여정은 성직자 수 감소와 성추문들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됩니다. 두 사안의 공통 주제는 권력 문제인데, 이번 세계주교시노드와 2028년까지 이어지는 여정에서 이 교회 권력의 문제가 어떻게 변화되리라 예상하십니까?

잠피니 신부: 프란치스코 교종은 마치 체스의 명수처럼, 앞으로 벌어질 일을 내다보는 분이셨습니다. 교회는 물론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권력 남용, 특히 아동 성학대 문제는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제도 안에 있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교종께서는 이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복잡한 문제를 만났을 때, 안에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위로 올라가서, 바깥으로 나가라.” 즉, 갇힌 구조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다른 시야를 확보하라는 뜻이죠. 시노달리타스는 바로 ‘밖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시노달 과정은 단순히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소명을 살리며, “함께 걷는 여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 권력 구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요구합니다. 즉, 바티칸과 지역 교회 간의,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기관과 본당 간의 권력을 공유하고 나누는 교회, 모두가 역할을 갖는 교회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위기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장기적 헌신’의 문화를 회복할 수 있을까?” “권력 구조가 가난한 이들을 억압하지 않도록, 우리는 어떤 제도를 마련해야 할까?” “이 시노달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이 프란치스코 교종의 유산이며, 레오 14세 교종도 그 유산을 계속 이어 가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사용한 아주 철학적인 문장이 있습니다.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데,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공간’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 권력의 표현입니다. 반면에 ‘시간’은 하나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권력의 역학 관계를 깨뜨리거나 재구성하는 길은, 권좌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인간적인 길은 권력을 차지하려는 이들을 ‘함께 걷는 과정’ 속으로 초대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방식은 평화를 이루어 가는 여정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평화 조약을 맺는다고 할 때 그것은 단순한 자리를 나누는 협상이 아니라, 함께 평화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대립이 아닌 공동의 여정인 것이지요. 교종께서는 이러한 ‘과정’의 힘을 진심으로 믿으셨습니다. 다소 철학적이긴 하지만 오늘날의 세계와 교회에 매우 깊은 울림을 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말미에 잠피니 신부는 “교회는 이제 경청과 돌봄, 생태와 정의의 문화를 바탕으로 세상과 다시 관계 맺어야 한다”며, “이 길은 구조 개혁이 아니라 영적 쇄신의 여정이며, 프란치스코 교종의 유산을 잇는 레오 14세 교종에게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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