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가톨릭 '교회와 세상' 강연회
2014년 세월호 참사 뒤에도 대형 참사가 일어나고, 매년 13만 건 이상의 산재로 인한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 참담한 현실에서 억울한 죽음과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 요구되고 있다. 2020년 21대 국회에서 발의한 생명안전기본법은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상태에서 논의 없이 폐기됐다. 그리고 올해 3월 10일 국회의원 77명이 다시 이 법안을 발의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안전하게 생활하고 일할 권리(안전권) 보장’,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무 명시, 피해자의 인권과 권리 보장, 안전 약자 보호, 위험에 대한 알 권리 보장, 독립적 조사 기구 설치, 안전영향평가 제도 실시, 추모와 공동체 회복, 시민 참여 등이 핵심 내용이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지난 4월 28일, 가톨릭 ‘교회와 세상’ 강연회를 열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과 의미 그리고 시민 참여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강의는 오지원 변호사(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사무처장)와 박래군 운영위원장(4.16재단)이 맡았다.
오지원 변호사는 생명안전기본법은 '인권 존중'이라는 헌법의 기본 정신에서 비롯되고, “인권은 자율과 공감의 내면화를 통해 실질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이러한 인권의 발명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맥락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이 있지만, 이 법에서 참사 피해자들은 피해자가 아니다. 이재민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피해자’라는 개념과 범위를 제대로 규정하지 않으면 재난과 참사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피해 상황을 알 수 없고, 언론이 먼저 정보를 파악하게 된다. “왜, 어떻게, 어떤 과정에서 내 가족이 죽거나 다치게 되었는지 알려 달라”는 물음은 묵살되고, 수사나, 조사도 없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계속 요구하고, 정부는 이들을 반정부 세력으로 취급하며, 사찰 대상으로 삼는다. 심지어 이들에게 보상과 지원을 한다는 발표로 피해자와 가족들은 모욕 당하기 시작하고, 자율적 연대도 할 수 없다.
오 변호사는 현행법이 유일하게 규정하는 ‘이재민’은 가해자를 찾지 않으며, 책임을 묻기 어려운 개념이라면서, “정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미리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피해자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피해자를 찾고 이들을 보호하기 어렵다. 피해자 명단 하나하나가 얼마나 절실한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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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권 개념이 발전한 나라일수록 각 사람이 독자적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각각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경위를 알려 줘야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시스템이 없고, 현재의 대응과 수습 과정도 납득하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재난 뒤에 피해자들에게서 의견 듣기나 실태 조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개선안 마련도 이뤄진 적이 없다면서, “세월호 참사 역시 자료를 체계적으로 남기지 않았고, 그 모든 과정에 대한 평가도 없다. 따라서 참사를 통한 교훈이 축적되지도 않고, 피해자 권리 보장 시스템도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여전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며, “민주주의가 법에는 있지만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적 요소들이 체화돼 있지 않아서 문제의식이 없거나 또는 정부가 그걸 무시하는 행태들을 보이고 있다”면서, “생명 안전 문제, 재난의 책임은 정부의 어떤 책임자에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가 책임을 법적, 도의적, 사회적 책임 등을 져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순간, 논란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큰 참사를 겪은 피해자, 생존자, 유가족은 엄청난 트라우마(심적 외상)를 겪고 극심한 무력감, 불신을 겪습니다. 피해자들의 결정권을 회복시키고 이해와 공감을 확산시켜서 재난과 관련된 교훈을 축적해 나가고, 그래서 우리 사회가 안전하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인데,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만든 것이 생명안전기본법입니다.”
오지원 변호사는 어떤 정부라도 지켜야 하는 시스템, 특별조사위원회 같은 한시적 기구가 아니라, 상시적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피해자들의 권리는 결국 우리 모두의 권리다. 참사에 따른 사회적 갈등 요소를 없애는 것이며, 안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기억과 추모가 결국 공익이라는 것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정부라도 재난과 참사에서 지켜야 할 시스템, 모두를 위한 권리와 안전망으로 만든 ‘생명안전기본법’은 “국가와 기업의 책무, 피해자의 권리, 피해 지원의 원칙, 안전 취약자 보호, 기억과 추모, 독립 조사기구 상설화, 독립성 보장, 피해자 참여, 안전영향평가, 안전 및 안전 사고에 대한 정보 공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오 변호사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주목해야 할, 권리라는 개념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재난 현장에 있다”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일상에서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극악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 그것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으로 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책무”라고 말했다.
이어 '생명안전기본법과 시민 참여'를 주제로 발표한 박래군 운영위원장(4.16재단)은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재난에 대한 프레임(틀) 변화, 이로 인해 최초로 시작된 일들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그는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생명안전기본법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재난’에 대한 사회적 정의는 자연 재난과 사회 재난으로 나누던 것에서 “단순히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인간적 요인들의 상호작용의 산물”(유엔 재난위험감축회의)로 다시 정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정의 아래에서 한국 사회는 “과거형 재난과 미래형 재난이 결합해 발생하는 특별한 위험 사회”며, “기후 위기 등과 결합한 다중 위험 사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과거형 재난이란 “부정 부패가 결합된 재난”이다. 그는 “부정부패가 결합되기 때문에 안전 대책이나 설비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있고, 안전 문제를 비용으로 생각한다”면서, “이런 상태에서 산업 기술이 발전할수록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사고들이 생겨난다. 한국 사회는 이 두 가지가 결합된 상태”라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는 재난, 참사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전에도 참사가 계속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그것을 ‘사고’로 봤습니다. 우연적 요소로 일어났다고 보고 빨리 보상하고 덮을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죠.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이 프레임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사고가 아니라 ‘사건’으로 보는 겁니다. 구조적 원인을 보고, 그것을 밝히는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중요해진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피해자들은 치유를 요구했고, 이에 시민들이 연대하면서 참사에 대응하고 대책을 요구하는 틀 자체가 변화했다. 시민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도 높아졌다. 그러나 제도와 정치, 법이 받쳐주지 못하는 의식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피해자들이 2차, 3차 고통을 겪고, 진실은 묻히는 참사들이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 참사와 관련해 특별조사위원회, 선체조사위원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등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 기구와 특별법, 기억과 추모, 피해자 지원, 안전 사회를 위한 노력, 기록, 관련 단체들의 활동이 최초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속적 제도와 법이 아닌 한시적이고 특별한 기구와 법에 의한 활동은 오히려 “방해와 거부, 지연시켜야 할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박래군 위원장은 이후 피해자 권리 개념이 발전하면서 “4.16인권선언,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태원특별법 제정, 재난참사피해자연대 발족, 생명안전기본법 발의”가 시민들의 노력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전의 ‘사고’ 프레임에 갇힌 이들이 지배층에 있고, 재난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어려운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기존의 재난안전기본법에 따라 안전관리민관협의회, 안전문화운동추진협의회가 지자체 절반 정도에 설치, 운영되고 있지만, “매우 형식적이거나 실효성이 없다”면서, 안전과 사건 관련 현장을 “직접 보고, 듣고, 연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간 가족들은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 “생명 존중-안전 사회의 길”이라는 두 방향을 병행해 왔다면서, 그 가운데 생명 존중과 안전한 사회로 진상 규명 차원에서 ‘생명안전기본법’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 진행된 것이고, 법을 만드는 것은 완성점이 아니라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생명 안전의 길로 가기 위한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첫 번째 걸음이 생명안전기본법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하지 못한 현재 우리 사회의 갈 길은 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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