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영유아 신앙교육 사례 발표 세미나
“성당은 아이에게 불편한 곳이 아니라, 아이 때문에 더 은총이 가득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10일,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원장 김민수 신부, 상봉동 주임)이 '영유아 신앙교육 사례 발표' 세미나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었다. 이날 세미나는 잊혀진 신자들이었던 ‘영유아 동반 부모’에 교회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묻고, 나아가 한국 교회 영유아 사목은 더 이상 이론에 머물지 않고 현장 가능성이 확장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자리였다.
유아실 중심 사목, ‘분리’의 오랜 기억
“아기와 함께 성당에 가면 눈치부터 보게 돼요. 유아실에 갇히듯 들어가 있다 보면, 하느님보다 눈총을 더 의식하게 됩니다.”
정준교 소장(다음세대살림연구소)은 첫 발제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영유아 사목이 여전히 ‘실험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9년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부모와 동반한 유아의 미사 참례, 유아실 폐쇄 권고를 포함한 유아 사목을 권고했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본당(성당)이 유아실을 쓰도록 하고 있고, 공동체 전례에서 영유아와 부모는 ‘투명 인간’처럼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전례신학의 핵심인 ‘온전하고 능동적인 참여’(participatio actuosa)의 관점에서 유아실이 지닌 구조적 문제를 강조했다. 전례는 교회의 중심이며 전례에 참여하는 장이지만, 유아실은 분리 공간이고, 그곳에선 부모도 아이도 전례의 의미를 배우기 어렵다.
인천교구 은계 성당, '예스 키즈존'으로 전환
이 같은 현실을 정면으로 돌파한 사례가 인천교구 은계 성당이다. 김용수 신부(세계청년대회 인천교구 대회조직위원회 사무국 차장)는 부임 초기부터 유아실을 폐쇄하고, 성전 안에 영유아 배려석을 마련했다. 그리고 주일 미사뿐 아니라 평일 미사, 어린이 미사, 성가정 주일 미사, 축복 예식 등 다양한 전례 안에서 영유아와 그 가족이 공동체 중심에 있도록 했다.
“성당은 출산을 장려하지만, 정작 출산한 부부와 아이를 환대하지 못한다면 모순 아닐까요?”
김 신부는 ‘온돌방 유아실’ 사용을 요청한 신자들에게 오히려 유아실을 닫는 이유를 설명했고, 2개월 유예 기간을 거쳐 부모들이 성전 안에서 아이와 함께 미사에 참여하도록 권유했다. 그 결과, 미사 중 아이 울음소리에도 누구 하나 뒤돌아보지 않는 분위기, 아이가 성체 거양 때 합장하고 인사하는 모습, 젊은 부모들의 평일 미사 참례가 늘어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기존 신자 설득이 관건이었는데, "나중에 우리가 죽었을 때, 연도해 줄 이들이 바로 이 아이들"이라는 설명이 꽤 주효했다고 했다.
은계 성당의 사례는 미사 운영을 넘어서, 태중 아기 축복 예식에서부터 관면혼, 대부모 선정, 자부모회 구성, 첫영성체 부모 교리 연계에 이르기까지, 영유아 사목은 사목 전체를 재구성하고 있다. 본당의 축복 예식은 “성사 참여 중심”이라는 신학적 기초 위에 서 있으며, 그 자체가 신자들의 신앙을 다시 일으키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
청담동 성당, 신자 중심의 신앙 동반
서울 청담동 본당은 ‘아빠와 함께 그림책 읽기’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영유아 신앙교육 사례를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독서 모임 이정민 대표가 미국 체류 중 체험한 영유아 신앙교육에서 중요성을 느끼고, 직접 실행에 옮긴 결과다.
“이건 그림책 수업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에요. 교육이 아니라 신앙입니다.”
청담동 성당은 영유아가 거의 없는 본당인데도 불구하고, 신자들의 열정과 풀뿌리 동력으로 이 프로그램을 3년째 이어 가고 있다. 초기에는 주임 신부의 무관심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꾸준한 실행과 사목회 설득으로 본당의 체계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0살부터 6살까지 누구나 참여 가능’이라는 유연성과 ‘예수님을 만나는 감동’이라는 본질에 충실한 방식으로, 신앙의 씨앗을 심는 공간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수원, 의정부 등 타 교구 신자들도 참여하고 있어, 영유아 사목이 지역의 경계를 넘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와 공동체적 전환
이번 세미나는 단순히 본당별 우수 사례 소개에 그치지 않았다. “왜 여전히 영유아 사목은 이토록 어렵고 낯설기만 한가?”라는 구조적 질문을 던졌다.
정준교 소장은 "청소년 사목 지침서"의 관점을 빌려, 영유아 역시 청소년 사목의 일환이며, 본당은 영유아가 전례와 신앙교육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 사목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동반자 의식을 지닌 신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양성 과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종합 토론에서는 “사제의 열정 하나에 좌우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지침 마련, 교구 차원의 미사 운영 안내, 신학교에서의 사목 교육 강화 등의 제안이 있었다. 또 영유아 사목을 위한 평신도 주체의 역할, 특히 ‘아빠 교사’의 필요와 남성 교사 양성이 중요하다는 것도 지적했다.
이전에 열린 영유아 사목 관련 세미나와 이번 세미나의 차별점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정 소장은 과거 세미나가 말의 성찬에서 그친 경향이 높았다면, 이번은 은계동 성당과 같은 구체적 사례가 있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는 하나의 선언이었다. 교회는 더 이상 미사 중 아이 울음소리를 방해로 여기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느님을 만나는 ‘동반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선언이다. 미사와 공동체 생활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 교회”, “함께 걷는 교회”는 영유아 사목을 통해 비로소 구체화된다.
“교회는 이미 진리를 담고 있다. 우리가 몰라서 활용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김용수 신부의 이 말은 사목자와 신자, 모든 하느님 백성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성사 중심, 공동체 중심, 환대 중심의 사목이야말로 오늘날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가는 교회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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