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하느님, 저희가 제주4.3의 진실을 올바로 규명하고 하느님의 정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일꾼이 되게 하여 주소서. 불의에 저항하면서도 분노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이 세상에 주님의 정의를 바로 세우게 하소서.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모든 이들 앞에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과 같이 저희도 자비로울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소서.”(제주4.3 기도문 일부)

3일 ‘제주 4.3’ 77주년을 맞아 이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미사가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봉헌됐다.

이 미사는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와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JPIC분과 위원회, 함께 걷는 예수의 길이 마련했다.

‘제주 4·3’, 또는 ‘제주 4.3 사건’으로 여전히 그 이름을 찾지 못한 이 일은 1947년 민간인에게 경찰이 발포한 사건을 시작으로,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던 제주도민의 저항을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이 무력 탄압, 학살한 약 7년간 이어진 사건이다.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봉기와 정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 진압 과정에서 희생된 민간인은 약 3만 명으로 추정된다. ‘4.3’은 1948년 4월 3일로 남로당 무장대가 본격 무력 저항을 한 날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제주4.3 특별법을 제정해 조사를 시작했고, 2003년 10월 조사 보고서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10월 31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제주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제주 4.3은 여전히 이름을 찾지 못하고, 진상 규명의 과제를 남긴 채 그 자리에서 멈춰 있다.

4월 3일 남녀 수도회와 함께 걷는 예수의 길이 제주 4.3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정현진 기자<br>
4월 3일 남녀 수도회와 함께 걷는 예수의 길이 제주 4.3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정현진 기자

이날 강론은 홍호남 신부(카푸친작은형제회)가 했다.

제주 출신인 홍 신부는 “사실 그대로 증언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우리 역시 삶으로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다”고 말하고, “4.3 사건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도내 진입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며,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려줬다.

“새벽에 군인들이 아버지와 오빠를 끌고 갔습니다. 그러고는 돌어오지 않았죠. 그날 이후 가족의 시신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살아남은 우리는 빨갱이 가족이라고 낙인 찍혀 숨죽이며 살아남았습니다.” (당시 십 대 여성이던 생존자 증언)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군인들이 갑자기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동생도 그 자리에서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는데, 그 장면이 아직도 악몽으로 떠오릅니다.”

“나는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군경이 끌고가 고문을 했고, 결국 남로당원이라는 자백을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감옥에 갔고 평생 ‘빨갱이’로 낙인찍혔습니다.”

“아버지와 오빠가 끌려갔어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모두 바다로 끌려가 물속에 던져졌다는 것을. 마을에 남자는 아무도 남지 않았어요.”

홍 신부는 “제주 4.3 사건은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가 남로당의 지시를 받는 빨치산 조직의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을 희생시킨 반인륜적 범죄”라고 말하고,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바라는 대로 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며, 대한민국 헌법 1조의 규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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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공원 모녀상 '비설'. 제주4.3 '초토화작전' 당시, 25살이던 '변병생'과 그의 2살짜리 딸이 피신 중 총에 맞아 죽었다. ⓒ정현진 기자

이날 미사에 참석한 유가족 박진우 씨(제주 4.3 범국민위원회 회원)는 현재 4.3 희생자와 피해자, 남아 있는 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침묵을 강요받았던 유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항쟁’으로서 제주 4.3에 대한 성격 규정, 제대로 된 제주 4.3을 알리는 것”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유족들의 침묵은 강요받은 것이자, 후손과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조금씩 말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위안을 얻고 있다면서, “그러나 역사적으로 항쟁의 성격이 규명된 4.3은 여전히 법률적으로는 제대로 규정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와 정부가 이를 명확히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역사 교과서에도 4.3은 “폭도에 의한 반란”에서 2019년 이후 조금씩 바뀌어 왔다면서도, “제주 지역 사회에서는 알려졌지만, 제주 밖 일반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제주 4.3의 의미와 성격이 제대로 규정되고 더 많은 이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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