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주교와 개신교의 사회 참여 다룬 책 출간 기념
197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독특한 측면은 종교계, 그중에서도 천주교와 개신교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점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연말 이에 대해 다룬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천주교"와 "개신교"를 출간했다.
지난 6일, 천주교 편을 집필한 경동현 씨(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김소남 씨(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한상욱 씨(인천교구 교회사연구소 연구원)와 연구 책임을 맡은 박문수 씨(우리신학연구소 소장)를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 내용은 박문수 소장이 주로 답했고, 부분적으로 필자들이 이야기했는데,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이름 표기 없이 정리했다.
<지금여기> : 1970년대 천주교 민주화 운동사를 출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지난 2022년 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종교 부문 운동사 연구를 지원한다는 공고가 직접적 계기가 됐다. 다른 시기도 마찬가지겠으나, 군부 독재 시기의 민주화 운동사를 정리하려면, 흩어져 있는 국내외 자료 발굴과 수집한 자료에 대한 해제 작업이 선행돼야 본격적인 역사 정리를 할 수 있다. 이에 1차 년도는 사료, 자료 수집과 해제, 세부 목차를 만들고, 2차 년도에 집필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고 진행했다.
<지금여기> : 기존 천주교 사회운동 관련 자료와 비교할 때, 이 책은 어떤 차이와 의미를 갖는지요?
이번 발간의 가장 큰 의미는 오늘날 천주교 사회운동이 성장하는 계기가 된 1970년대 천주교 민주화 운동에 대한 최초의 통사적 접근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이 시기는 한국 천주교회사의 일부로 다뤄지기는 했어도 사료 부족 등의 이유로 거의 주목 받지 못했다. 다행히 이번 연구를 통해 이 시기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의 사료와 자료를 발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소재나 존재 자체를 몰랐던 해외 교회 문서와 정부의 미공개 문서, 교회 미발굴 문서를 비롯해 당시 활동가들의 증언을 폭넓게 수집할 수 있었다. 또 1970년대 천주교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여러 주체의 본래 역할과 기여대로 서술하려 했고, 당시 전체 민주화 운동의 맥락과 연결하면서도 교회의 기여를 가감없이 드러내려 한 점이 기존 연구들과 다르다.
<지금여기> : 당시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가톨릭교회가 근거로 삼았던 신학적, 윤리적 원칙은 무엇이었고, 그러한 대결을 지속할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올해로 폐막 60주년을 맞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는 현대 가톨릭교회에 쇄신 동기이자 동력으로 작용한 역사적 공의회로 평가된다. 특히 교회의 사회 참여 입장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일례로, 제3세계에 속한 지역 교회가 해당 국가의 사회 정치 문제에 관여할 때 필요한 교리적,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이러한 참여를 촉진한 계기가 되었다. 특별히 공의회의 '사목헌장'은 중남미에서 ‘공의회 정신의 수용’이라 평가받는 '메데인 문헌'(1968) 작성으로 이어졌고, 이 문헌은 해방신학의 태동을 촉진시켰다. 한국 교회도 이 공의회의 영향을 받았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사제들은 이 문헌을 사회 참여의 신앙적, 신학적 근거로 삼았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배경에 더해 군부 독재의 억압이 주교와 사제, 평신도의 각성으로 이어지면서 민주화 운동의 촉매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여기> : 기존 천주교 사회운동사 서술이 정의구현사제단으로 대표되는 주교, 성직자 중심이었다면, 이 책에서는 평신도(수도자, 평신도)의 역할에도 주목한 것이 눈에 띄는데요. 이들의 참여가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요?
1962년은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한국 교회 교계 제도가 설정된 해다. 바로 이어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이에 따른 교회 쇄신 운동, 사회 참여와 다양한 분야에서의 평신도 운동의 시작이 천주교 민주화 운동이 태동하는 데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교계 제도 설정 이후 신설 교구에 초대 교구장으로 부임한 젊은 주교들은 공의회 정신을 구현하는 데 앞장섰다. 이들은 평신도가 교회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 기회를 제공했다.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한국가톨릭농촌청년회와 같은 가톨릭 액션과 지역 사회 개발 운동, 협동조합 운동을 도입해 이런 흐름이 촉진되도록 도왔다. 그 결과 평신도가 천주교 사회운동, 민주화 운동의 주요 지지 기반이자 주도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주요 지지 기반이자 종교 활동에만 치중했던 반공, 우파적 성격이 강한 천주교에서, 일부 사제, 평신도가 각성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민주화 운동 참여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지금여기> : 해외 천주교회 가운데 한국 민주화 운동을 지원한 교회들도 있었는데요, 이들의 구체적 연대 방식과 성과는 무엇이었나요?
1970년대 천주교 민주화 운동은 가톨릭 국제 기구를 비롯한 해외 원조기관, 교황청과 각국 정의평화위원회, 사도생활단과 교황청 설립 수도회의 국제 네트워크와의 상호 지원과 교류를 통해 시작되고 전개됐다. 캐나다 코디국제연구원과 미국신협연합회, 독일 미세레오르 재단, 독일 카리타스와 네덜란드 세베모 등은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소개하고 지원했다. 1970년대 재해대책 사업과 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물적, 인적 지원으로 민주화 운동을 전개해 나갈 수 있는 여건 형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교황청과 메리놀외방전교회,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일본 가톨릭 정의평화협의회, 주교와 사제들의 국제 네트워크를 활용해 교회와 정부의 갈등이 첨예했던 시기에 정부에 도덕적 압력을 가하고, 한국의 사정을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국제 연대를 통한 지원은 박정희 정권의 폭력적 탄압 속에서도 사제, 평신도, 수도자가 사회운동과 반유신 운동을 펼칠 수 있는 물적, 인적 토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중요한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지금여기> : 최근 내란으로 한국 사회가 혼란에 빠져 있는 가운데, 당시 민주화 운동의 정신은 지금 사회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천주교의 사회적 역할이 전과 달라진 듯 보입니다.
1970년대와 80년대 민주화운동사에서 천주교회는 분명히 큰 족적을 남겼고, 그로 인해 얻은 사회적 공신력으로 눈부신 교세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는 민주화 이후 또 다른 문제들로 고통받고 있다. 특히 민주화가 자유화로 연결되어 신자유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양극화를 비롯한 이념 갈등, 남녀와 세대 간 갈등, 소수자와 이주민 문제 등 온갖 사회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과거는 민주 대 반민주, 군부와 시민으로 구분이 명확한 시기였으나, 오늘날은 이러한 구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런 점에서 천주교의 민주화 운동은 오늘의 시각에서는 기후위기로 상징되는 생태환경 운동을 포함해 사회적 약자들의 고난에 동참하는 운동으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여기> : 1970년대 천주교 민주화 운동 경험이 현재와 미래 세대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엇일까요?
지난 연말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내란 사태는 1979년 전두환 일당의 12.12 군사반란과 이후의 비상계엄을 떠올리게 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윤석열의 계엄 모의 과정과 포고령, 군병력 투입 이유와 과정을 돌아볼 때, 전두환의 쿠데타를 답습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1970년대 천주교와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12.12 군사반란으로 잠시 꺾이긴 했지만,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5월의 봄을 지나 6월 민주항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과거의 역사적 기억으로만 존재했던 ‘비상계엄’이 2024년 12월 3일 선포되었을 때, 1979년과 달리 시민들이 그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국회로 모여 군 진입을 막아낼 수 있던 것은 1970년대 선배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고군분투와 무관치 않다. "과거는 현재를 돕는가?", "죽은 자는 산 자를 살릴 수 있나?"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한강 작가가 작가 노트에 써 놓았다던 질문들이다.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이 이 책을 통해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을 간접으로나마 경험하고, 혼돈의 정국을 보내고 있는 오늘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여기> : 마지막으로 이번 발간을 계기로 70년대 이전 시기와 1980년 이후의 천주교 민주화 운동사 집필도 구상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요.
교회사 연구 분야에서 현대사, 그중에서도 천주교 민주화 운동 분야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엄혹했던 시대 상황 탓도 있지만, 교회에 민감한 현안을 다룰 수밖에 없다 보니 관심에서 멀어진 탓도 있다.
이번 1970년대 천주교 민주화 운동사 발간 이전부터 1980년대 가톨릭 청년, 대학생 운동 역사를 정리하자는 논의가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있었고, <가톨릭평론>에 수년 간 1970-80년대 천주교 사회운동가들에 대한 인터뷰도 진행한 바 있다. 이번을 계기로 이러한 움직임들을 운동사 기획물로 낼 구상을 하고 있다. 이번에 발간한 1970년대 천주교 민주화 운동을 기준으로 이전과 1980년대 이후 시기로 나누어 각 1권씩 더해 천주교 민주화 운동사를 추가로 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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