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쟁에 외세를 끌어들이면 나라가 망한다. 1894년 5월 동학 농민군이 전주성을 함락하자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민씨 일파는 고종을 움직여 청나라에 군대 파병을 요청했다. 12년 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의 도움으로 대원군을 축출하고 정권을 탈환했던 달콤한 기억이 작용했다. 청이 군대 파병을 수락하자 일본도 톈진 조약을 근거로 즉각 군대를 파견했다. 절치부심하며 조선 침략의 명분을 찾고 있던 일본에게는 기다리고 기다렸던 사건이다. 외세가 개입했단 소식에 동학 농민군과 관군은 화의를 통해 싸움을 중단했지만, 청·일 양군은 철수하지 않았다. 일본군은 오히려 경복궁을 기습, 점령한 뒤 민씨 정권을 몰아내고 친일적인 김홍집 내각을 출범시켰다. 이후 청일 전쟁이 터졌고 승리한 일본군은 그 기세를 몰아 동학 농민군의 2차 거병을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이로써 조선은 망국으로 치닫게 된다.
윤석열 일당의 북풍 공작
12.3 친위 쿠데타 수사 과정에서 윤석열 일당의 북풍 공작이 드러나고 있다. 계엄의 기획자였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 적힌 "북방한계선(NLL)에서 북의 공격 유도", "오물 풍선" 등의 메모가 실행된 정황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작년 10월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한국은 10월 3일과 9일에 이어 10일에도 심야시간을 노려 무인기를 평양 상공에 침범시켜 수많은 반공화국 정치모략 선동삐라를 살포”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용현 국방부장관은 국회에 나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12.3 쿠데타 실패 이후 국회에 불려 나온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도 “누구로부터 평양에 무인기를 보내라는 임무를 받았나”라는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민주당은 드론작전사 관계자로부터 평양 무인기 침투를 국가안보실이 직접 드론작전사령부에 지시해 실행된 사실을 제보받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와 관련해서도 김용현 국방부장관이 합참에 오물 풍선의 ‘도발 원점’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윤석열 일당이 12.3 계엄 선포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북한과의 군사 충돌을 유도한 것이다. 헌법의 계엄 선포 요건인 ‘전시·사변 기타 그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북풍 공작을 한 것이다.
분단돼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집권 세력은 북풍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조성해 정치적 이득을 누렸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시절 정치적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게 안보 위협론이었다. 1972년 유신 친위 쿠데타의 명분도 안보 위협이었다. 1987년 대통령선거를 보름 앞두고 일어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은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두환 정권은 폭파범 김현희를 선거 하루 전날 서울로 압송하며 이를 방송으로 생중계하였다. 세월이 흐르며 남북관계가 호전되고 북풍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이들은 아예 공작을 통해 인위적으로 북풍을 만들었다. 19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선거 승리가 위태로워지자 ‘총풍 사건’을 일으켰다. 안보 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 등을 중국 베이징으로 보내 북한 관계자들과 만나 휴전선에서 무력 시위를 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북풍 공작과 외환죄
내쟁에서 승리하려고 외세를 끌어들이는 행위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이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외환죄인데 형량이 무겁다. 외환유치죄의 법정 형량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며, 일반이적죄 형량은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이다. 윤석열 일당의 북풍 공작을 외환죄로 처벌하는 것과 관련해 논의가 분분하다.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은 북풍 공작에 대한 수사를 반대하며 외환죄 적용이 불가하다고 주장한다. 외환유치죄는 ‘외국과 통모하여’라는 조건이 붙어 있는데, 북한을 외국으로 볼 수도 없거니와 북한과 통모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외환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환유치죄(형법 제92조)는 “외국과 통모하여 대한민국에 전단을 열게 하거나 외국인과 통모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하는 행위”를 말한다. 법률 전문가들도 윤석열 일당의 북풍 공작을 외환유치죄로 다스리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본다.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는 데 ‘북한과 통모했는지’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죄는 외환유치죄 외에도 일반이적죄, 여적죄, 모병이적죄, 시설제공이적죄, 시설파괴이적죄, 물건제공이적죄, 간첩죄, 전시군수계약불이행죄 등이 있다. 그중 일반이적죄(형법 제99조) 적용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일반이적죄는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하는 행위를 말한다. 적국의 공격을 유도해 실제 우리 군에 해를 초래했거나, 미수에 그쳤어도 이를 의도했으면 일반이적죄가 적용될 수 있다. 공격 무기로 사용되는 무인기를 북한 영공으로 침투시킨 행위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준다. 더욱이 정찰에 그치지 않고 평양까지 가서 김정은을 비방하는 내용의 전단지를 뿌렸다면 이는 북한의 군사적 반격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노상원의 수첩에서 나온 “NLL 부근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메모도 사실로 밝혀질 경우 외환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NLL 부근에서 국지전을 유도하고 총격전을 유도했으면 이건 외환죄에 해당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의도가 있다면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답변했다.
남북의 군대가 중무장한 채 휴전선과 NLL에서 대치하는 상황에서 북풍 공작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지금처럼 남북 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 남북 간 군사 충돌은 국지전에 머물지 않고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전쟁은 속성상 일단 발발하면 확전되기 마련이고, 시작은 쉽지만 끝내기는 어렵다. 북한이 핵무장까지 한 상황에서 전쟁은 우리 민족의 절멸을 의미한다. 북풍 공작은 민족공동체의 안위와 관련되기에 무겁게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97년 ‘총풍사건’ 3인방(오정은, 한성기, 장석중)에 대해 법원이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위반죄를 적용해 징역 2-3년에 집행유예 3-5년을 선고하는 등, 솜방망이 처벌한 게 이번 북풍 공작으로 연결됐는지 모른다. 국방부장관, 방첩사령관, 정보사령관, 드론작전사령관 등 핵심 안보 관계자들이 관련된 이번 북풍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발본색원해야만 안보가 튼튼해진다.

백장현
정치학 박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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