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가톨릭평론> 45호(2024년 가을, 우리신학연구소) ''찬미받으소서' 살아가기' 쪽에 실린 글입니다.

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와 둘째의 친구들과 함께 여의도 샛강에 다녀왔다. 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달마다 한 번씩 만나 박물관이나 유적지 같은 곳을 다녀오는데, 6학년이 되고선 국회, 4·19기념탑, 난민인권센터, 전태일기념관 같은 곳을 방문했다. 6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민주주의, 정치, 평화, 환경 같은 내용을 배우기 때문이다. 7월엔 환경단체에 가 보기로 하고 어떤 곳을 갈지 고심하다 선택한 곳이 바로 여의도 샛강이다. 그곳엔 샛강을 돌보는 단체 ‘사회적 협동조합 한강’이 있다.

여의도 샛강은 1997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생태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그런데 ‘생태’라는 말을 그냥 ‘생긴 대로 내버려둔다’라는 말로 오해했는지 생태 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오랫동안 이곳은 방치되어 왔다. 만약 도심 한가운데 있는 공원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내버려둬도 얼마든지 많은 생명이 찾아와 스스로 살아가는 생태 공원이 되었겠지만 아시다시피 이곳은 여의도 한복판이다. 도로변의 모든 오염 물질이 흘러들고 비가 오면 물에 잠기고 자주 강바닥을 파헤치는 준설 작업이 이뤄지고 여기저기 어지럽게 난 산책로로 생물들만의 공간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곳이다.

자연을 돌보는 사람들 

그런데 ‘한강’이 2019년부터 샛강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3년 만에 이곳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동물인 수달이 사는 곳, 서울 최고의 ‘냇가식물생태계’로 불리는 곳이 되었다. 어릴 적 시골 냇가에서나 봤던 길게 잎을 늘어뜨린 버드나무를 만나고, 가로수 씨앗이 날아들어 싹튼 팽나무, 뽕나무, 참느릅나무, 양버즘나무가 우거진 지금의 샛강은 ‘한강’의 자원봉사자 1000여 명이 뿌리가 드러난 나무 위로 흙을 지고 날라 둔덕을 만들어, 더는 홍수에 휩쓸리지 않게 해 준 덕분이다. 샛강 옆을 지나는 88도로 4킬로미터의 타이어 가루와 먼지를 쓸어내고 그 자리에 2만 그루 넘는 사철나무를 심어 도로의 오염 물질이 강으로 흘러들어 가지 않게도 하니 물이 맑아졌다. 야생 생물들이 서식하기 좋을 만한 곳에 적절한 경계를 만들어 주자 모습을 감추던 생물이 돌아와 수달을 비롯해 맹꽁이, 꺽정이, 큰오색딱따구리, 황조롱이, 수리부엉이 등 보호종 20여 종이 사는 곳이 되었다.

가장 좋은 환경 교육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때마다 무조건 자주 자연에 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네 뒷산이든 하천변이든 한 뼘만한 작은 공원이든 자연을 자주 접하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 교육은 없다. 샛강처럼 들어선 순간 여기가 도심 한복판인지도 잊게 하는 자연이라면 말해 뭐할까? 자연에 자주 들어야 자연을 느낄 수 있고, 소중히 여기고 지키고 싶은 것에 ‘자연’이 자리 잡게 된다. 그런 경험 없이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절로 되지 않는다. 아이들과 샛강을 찾은 건 한 번이라도 더 ‘자연’에 들게 하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 이곳이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환경 생태 교육. (사진 제공 = 정명희)
아이들과 함께하는 환경 생태 교육. (사진 제공 = 정명희)
아이들과 함께하는 환경 생태 교육.&nbsp;(사진 제공 = 정명희)
아이들과 함께하는 환경 생태 교육. (사진 제공 = 정명희)

이날 한강의 대표님들은 어린이들에게 ‘한강’이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샛강을 돌보는지, 샛강에 어떤 생명이 살고 있는지, 인천 앞바다 바닷물이 샛강까지 올라오는 놀라운 자연 세계에 대해 들려주시고, 어린 나무 한 그루를 옮겨 심는 작업을 아이들의 손으로 직접 하게 해 주셨다.

우리는 자주 기후 위기를 일으키고 자연을 망가뜨리는 지구의 해로운 존재로만 ‘사람’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렇게 자연을 돌보고 회복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분들을 직접 만나 노력을 듣고 변화를 확인하고 작은 일 하나라도 거들다 보면, 아이들은 지구에서 사람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는 환경 책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별에 이로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생각대로 살려면, 환경 책을 읽는 것보다 먼저 샛강 같은 자연을 자주 찾고, ‘한강’과 같은 활동을 자주 접하고 샛강 같은 곳을 내 주변에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먼저고 진짜 ‘환경 교육’이라 생각한다. 

‘한강’은 샛강에서 수달학교, 샛숲학교, 샛강모니터링 같은 여러 환경 교육 프로그램들도 진행한다. 서울의 또 다른 하천인 중랑천을 가꾸는 활동도 시작했는데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도 자연을 돌보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고 온몸으로 환경교육을 배울 기회다.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

시베리아 선주민인 나나이족 사람 '데르스우잘라'의 삶을 다룬 같은 이름의 책을 보면, 그는 동물을 또 다른 ‘사람’이라 부르며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다. 물고기가 나를 비웃었다며 성질내고, 감히 물범이 사람 수를 센다며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수천 년 전 사람이 아니라 불과 100여 년 전 사람의 이야기다. 한때 지구에(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자연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이야기가 된 지금, 자연과 교감한다거나 자연을 느끼는 ‘생태감수성’이란 말은 누군가에겐 그저 수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교감하고 느낄 수 있어야 마음이 움직이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생태감수성도 어릴 적부터 자주 자연에 들며 키워야 하는데, 그런 시간을 충분히 누리며 자라는 사람이 드문 요즘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또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자연을 비롯한 세상을 바라보는 어떤 ‘생각’이 느낌을 방해하는지도 모른다. 사람과 자연을 분리해 자연을 사람을 위한 도구로만 여기며 끝없이 파헤치고 이용하는 대상, 경제 성장과 편리를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는 생각, 나아가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경쟁하고 배척하는 것을 자연의 질서처럼 여기는 생각들 말이다. 근대부터 지금까지 세상을 지배하는 이런 방식의 생각, 즉 세계관 속에선 우리는 자연을 제대로 느낄 수도, 제대로 알 수도 없다. 

이런 생각 말고 사람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꼭대기에 있지도 않고 중심도 아닌 한 부분이며, 모든 존재는 서로 돕고 나누고 협력해야 한다. 끝없는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삶을 성찰하고 지구 자원을 매우 신중하게 이용해야 한다. 당장 필요한 것보다 몇 세대 이후까지 내다보고 생태계 전체에 미칠 영향까지 생각하며 자원 이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를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생각을 ‘생태적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협동과 공생이 자연의 원리

무한경쟁, 승자독식, 적자생존, 약육강식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로 가득한 세계관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서로 협력하며 공존할 수 있는 생태적 세계관으로 전환하자는 움직임이 ‘생태 전환’이다. 그런데 특별한 계기로 자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런 전환이 저절로 이뤄지진 않는다. 사람마다 그 계기가 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몇 가지 새로운 배움이 전환의 계기였다. 

그중 하나는 출생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자와 난자의 만남으로 탄생했다. 그런데 이 만남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야기였다. 정자는 난자의 투명대를 통과하기 위해 정자 머리 첨체에 있는 분해 효소를 이용하는데, 정자 한 마리의 분해 효소로는 투명대를 뚫지 못한다. 한 마리가 조금 뚫고 나면 이어 다른 한 마리가, 또 다른 한 마리가 계속 분해 효소를 사용해 투명대를 뚫다가 어느 순간 투명대가 완전히 뚫려 정자가 난자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줄곧 가장 빨리 도착한 ‘1등 정자’가 난자에 들어간다며 우리는 탄생 순간에도 경쟁해 왔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는데 1등이 아니라고? 나는 마치 출생의 비밀을 새로 안 사람처럼 이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이 사실을 두고도 1등 정자가 아닌, 2등이다 3등이다 아니면 우연이다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나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선생님은 ‘정자들의 협동’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우리 모두 경쟁하며 태어난 게 아니라 협동의 산물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뿌리부터 흔들어 줬다.

또 한 가지 배움은 과학자 린 마굴리스의 ‘공생’에 관한 것이다. 린 마굴리스는 세균과 고세균의 ‘공생’으로 진핵세포가 등장했다는 걸 밝힌 분이다. 40억여 년 전 세균과 고세균만 있던 지구에 어느 날 세균과 고세균이 합체해 한 몸이 되어 각자의 특성을 그대로 발휘하면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산소호흡을 할 수 있는 세균은 다른 고세균과 한 몸이 되어 세포에서 산소 호흡을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가 되고, 광합성을 하는 세균은 고세균과 결합해 세포에서 광합성을 하는 엽록체가 되는 식으로. 이렇게 진핵세포가 등장해 지구의 다양한 생명으로 진화해 갔다는 이 가설은 처음엔 학계의 외면을 받았지만, 전자 현미경 발달로 실제 자연에서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와 유사한 세균을 관찰하게 되면서 이제는 정설이 되었다.

공생을 통해 유기 호흡을 하는 세균은 동물 세포로, 광합성을 하는 세균은 식물 세포가 되어 생명 진화를 밟아 갔다는 이 이론은 우리에게 생명의 작동 원리가 다름 아닌 ‘공생’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과학자들은 최초의 진핵세포를 LECALast Eukaryotic Common Ancestor라 하는데, 이 진핵세포는 지구 모든 생명체의 공통 조상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이 공통 조상을 갖고 있고 모든 생명은 드러난 차이가 크더라도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진화를 밟아 온 유사한 세포라는 건 우리가 다른 생명들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며, 나아가 다른 생명을 존중하고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으로도 이어지게 한다.

린 마굴리스는 저서 "공생자 행성"(사이언스북스, 2007)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은 똑같이 진화를 거쳤다. 모두 공통의 세균 조상으로부터 30억 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진화하여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고등한 존재도 하등한 동물도 천사도 신도 없다. 산타클로스와 마찬가지로 악마도 나름대로 유용한 전설일 뿐이다. 고등한 영장류인 원숭이와 유인원도 그 명칭이 어떻든 간에 남보다 더 고등하지 않다. 
우리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와 영장류 친척들 역시 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진화라는 무대에 최근에야 등장한 신참이다.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이 훨씬 더 많다. 기나긴 지질 시대를 거치며 맺어 온 깊은 관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다른 생물들에게 혐오감이 아니라 경외심을 보여야 마땅하다."

최근에 ‘종차별주의’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종간의 경계에 대해 성찰하자는 움직임도 있지만, 현실에선 같은 종인 인류 ‘호모사피엔스’들끼리도 수천 가지 이유로 서로의 다름을 먼저 찾아내 구별하고 차별하고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린 마굴리스의 저작을 읽으며 공생 이론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이런 일이 생명의 역사에서 보면 얼마나 하찮은 일일까?’ 하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엄마의 환경 수업", 정명희, 북센스, 2024. (표지 출처 = 북센스)
"엄마의 환경 수업", 정명희, 북센스, 2024. (표지 출처 = 북센스)

생태적 전환 위한 환경 수업 

우리의 탄생이 협동의 산물이었다는 것, 거슬러 올라가 생명의 진화도 공생의 결과라는 이 배움이 나에겐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만들어 준 생태적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상호 부조, 협력, 공동체, 돌봄, 나눔 같은 공생의 가치를 일상에서 사회에서 더 자주 실현하고 경험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가 되도록 스스로를, 사회를 계속 일깨워야 한다는 다짐으로도 이어지게 해 줬다. 

올해 초 펴낸 책 "엄마의 환경수업"(북센스, 2024) 첫 장에도 이 이야기를 담았는데, 대부분 처음 접한 이야기라고 한다. 정자들이 협동해 난자를 만나는 과정에 나처럼 감동하고 세상을 좀 다르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만나고, 린 마굴리스의 공생 이론을 아니 다른 존재에 대해 더 마음을 열어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찾았다고 하는 이들도 만난다. 독자들을 만나며 몇 가지 배움만으로도 우리의 관점과 가치가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환경 수업은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 인류세라고 일컫는 이 시대의 문제를 알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와 세상을 바꿔가는 긴 과정이다. 문제를 일으킨 기존의 세계관 속에선 답을 찾을 수 없다. 우리를 지배해 온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어야 우리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세계관을 갖고 사는가’,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계관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가’ 같은 질문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걸 독자들과 만나며 새삼 깨닫는다.

정명희

녹색연합, 알맹상점, 수리상점 곰손에서 활동하는 환경운동가. "인류세를 사는 10대를 위한 엄마의 환경수업", "기억해야 할 환경사건,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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