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과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가 오고 곧이어 노벨 문학상이 찾아왔다
사실 한강 작가의 책은 구경조차 못했는데, 지난 10월 9일 누군가 밖에 내놓은 책 무더기 속에서 “소년이 온다”를 발견해 챙겨 두었다. 그랬는데 다음 날 긴급 속보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정말 깜짝 놀랐다. 수상 사유는 이렇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 강렬한 시적 산문을 남긴 한국 작가 한강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다.”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했다.”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고리에 관한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다.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
안데르스 올손 스웨덴 한림원 노벨위원장은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비중 있게 소개했다. 특히 ”소년이 온다“에 대해 “역사 속 피해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함으로써 증인 문학(witness literature)이라는 장르에 접근해 간다”고 평가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노벨 문학상에 우리의 위대한 역사의 순간이 탑재해 더욱더 의미심장한 노벨 문학상이 되었다.
이 소식은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정말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린 소식이었는가 싶다.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으리라는 전망이 무성하고, 누가 받을 수 있을까 설왕설래했는데 계속해서 받지 못하니 이야기가 수그러드는 듯했다. 그런 와중에 한강 작가가 기습적으로 이 상을 받았으니, 그 기쁨이 더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절대 공동체 광주는 우리 모두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북한군 개입설을 비롯해 5월 광주를 둘러싼 온갖 왜곡된 이야기를 흘리는 이들이 있다. 북한군이 도왔기에 시민군이 무장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는데, 한국 사회에서 웬만한 성인이 병역 의무를 마쳤다는 사실은 모르고 하는 말인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1980년 5월 광주는 우리 역사의 정통으로 우뚝 서 있다.
1993년 학술고적답사 때 비장한 마음으로 광주 망월동을 찾았다. 그리고 그사이 전두환과 노태우가 구속됐다. 1997년 다시 망월동을 찾았다. 민주 열사들은 구묘역에 그대로 묻혀 있고 5․18 때 스러져 간 이들은 잘 단장된 신묘역으로 옮겨졌다. ‘사태’는 ‘항쟁’으로 바뀌었다가 ‘민주화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1984년 김원중 가수가 부른 '바위섬'은 매우 서정적인 곡으로, '가요톱10'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상위권에 오를 만큼 인기 많던 노래다. 훗날 이 곡은 고립된 5월 광주를 상징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실제로 김원중은 그때 광주에 있었고, 계엄군을 향해 돌을 던졌다. 하지만 계엄군이 무서워 도망가 숨은 일이 마음속 빚이 되었다고 한다. 광주 학살 원흉 전두환의 힘이 가장 막강했던 그 시기에 검열을 피했을 정도로 광주는 깊게 숨겨져 있었다. 누군가 그렇게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누가 광주를 바위섬으로 알았겠는가?
“아버지는 그 책을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안방의 책장 안쪽에, 책등이 안 보이게 뒤집어 꽂아 놓았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 앉아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199쪽)
초등학생이던 한강에게 다가왔을 그 충격이 느껴진다. ‘광주 사태’로 부르던 그 시절, 광주라는 말을 입에서 꺼냈다가는 누군가에게 제지를 당했다. 자칫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는 말을 들었다. 5월 광주에 관한 이야기는 형들을 통해 여러 차례 들었는데, 그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한 것은 1987년 어느 봄날이었다. 같은 반 친한 친구가 학교 근처에 있던 아현동 성당에서 광주항쟁 사진 전시회가 있다고 해서 같이 갔다. 끔찍한 여러 사진과 비디오를 보면서 정말 피가 끓었는데, 한마디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며칠간 힘들었지만, 그때 충격은 정신을 깊게 각성시켰다. 한 청소년에 불과했던 나 또한 우리 역사 한가운데에서 서 있으며,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각오를 다지게 했다. 곧 6월항쟁을 거쳐 16년 만에 대통령 직선제를 앞두었다. 학교 앞 한 집 담벼락에 붙은 노태우 포스터(당시 대중 집회를 홍보했던)가 보이자 막 달려가서 얼굴 부분을 발바닥으로 찼다.
날은 점점 더 추워지고 선거는 훨씬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절두산 순교기념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신부님이 강론 중에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가 저 잔악한 군사 정권을 합법적으로 인정해 주는 꼴이며, 역사를 후퇴시키는 일이라며 노태우 집권을 막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펴낸 광주 5.18 사진 자료집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을 구입해 주위 사람과 돌려 보라고 했다. 그날엔 사지 못했지만, 조금 고민하다가 다음 주 미사 뒤에 책을 샀다. 그런데 괜스레 겁도 나서 가슴에 꼬옥 품고 집으로 급하게 향했다. 빨간 표지를 넘기는데, 아주 끔찍한 사진 한 장을 보고는 바로 덮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그 사진을 못 본다. 나중에 주황색 표지로 나온 자료집에선 그 사진이 빠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맨 끝 모서리에 있는 사람의 상태가 가장 나쁘다. 처음 네가 보았을 때 그녀는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자그마한 여자였는데, 썩어가면서 이제는 성인 남자만큼 몸피가 커졌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 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 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소년이 온다", 11-12쪽)
고통의 영매, 우리 공동체의 신원을 향해
“소년이 온다” 이 짧은 소설을 읽어 가는데 그해 겨울 자료집을 넘기기 힘들었던 심정과 거의 같았다. 소설의 중심 인물 중학생 동호는 실제 인물 고등학생 문재학 씨를 모델로 한다.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는다. 그날 돌아오라는 엄마 그리고 형과 누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동호는 도청에 남는다.
“억센 엄마의 손가락을 마침내 다 떼어냈다. 너는 날쌔게 강당 안으로 도망친다. 뒤따라 들어오려는 엄마를, 집으로 관을 옮겨가려는 유족들의 행렬이 가로막는다.”(42쪽)
소설은 다양한 시점을 가로지르며 그날 광주의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동호의 친구 정대의 영혼은 말한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57쪽)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135쪽)
5월 광주는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이 땅의 많은 사람에게 깊은 슬픔이었고, 깊은 미안함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향한 선배들의 목숨 건 투쟁은 그런 광주에 대한 마음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최정운은 “1980년대 어두웠던 시절 우리의 민주화 투쟁은 민주주의 이념의 힘이라기보다는 5․18의 처절한 경험”(“오월의 사회과학”, 오월의봄, 2012, 114-115쪽)이었다고도 말한다. 그 힘으로 1980년대 내내 민주화 투쟁을 했으며, 일정한 성과를 이루어 냈다. 그랬기에 5월 광주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아시아 여러 나라 시민의 희망이고 모범이었다. 2021년 미얀마 쿠데타 이후 광주는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지원했다.
에릭 홉스봅은 지난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규정했고, 철학자 홍윤기는 ‘최고의 악’과 ‘최고의 선’이 공존한 시기라고 했다. 5월 광주는 ‘최고의 악’에 ‘최고의 선’이 맞섰던 공간이었다. 광주는 처절하게 패배하고 잔혹하게 학살당했지만, 더욱더 깊게 되살아나고 한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그 자체가 되었다. 하여 광주는 우리 현대사에서 ‘부활’의 의미를 힘차게 내뿜었다.
소설을 읽어 가면서 작가가 느꼈을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한강은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고통을 끌어안고 그대로 고통을 독자에게 전해 준다. 한강은 고통의 영매가 되어 신원(伸冤)을 이끌어 간다. 소설 한 편을 읽어 가면서 우리는 역사의 한복판에 깊게 개입하고, 같이 아파하고, 한을 풀어 가는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다.
사실 한강 문학 활동에서 고통의 증언은 종교가 수행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5월 광주를 널리 알리고 그 한을 풀고자 한 데 모범을 보였다. 그러했듯 우리 역사 곳곳의 신원에 교회는 더욱더 매진하길 바라는데, 역사와 공동체 속 깊은 상처를 끌어안고 치유해 가는 역할만으로도 한국 교회는 엄청난 존재감을 남길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가 출간될 무렵 <채널예스>와 인터뷰 끝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젊은 독자, 어린 독자들이 많이 읽어 주면 좋겠다. 광주가 이제 점점 언급이 안 되고 있다. 교과서에도 자세한 정황이 나오지 않고 교육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모두가 모르게 된다. 유년 시절에 조금이라도 경험을 했으면 그래도 알 텐데, 지금 사회는 이런 걸 알리려는 분위기 자체가 아니니까. 왜곡된 이야기를 듣기 쉬우니까 자라나는 세대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한강 “벌 받는 기분으로 책상에 앉았다”')
5월 광주를 두고 분탕질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활개치는 형국이니 더더욱 이런 바람일 듯하다. 하지만 난 사실 주저된다. 누군가에게 흔쾌히 이 책을 권할 수 있을까? 다행히 노벨 문학상 열기는 그러한 주저함을 떠올릴 겨를 없이, 많은 이에게 “소년이 온다”를 권하고 있다. 누군가는 냄비 근성으로 비하할지 몰라도, 한국인의 활활 타오르는 이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가. 이 물결 위에서 더욱더 많은 사람이 함께 이 짧고 강렬하고 처절한 소설을 읽어 간다면 참으로 고무적일 일이다. 그렇게 이 땅의 많은 이가 우리 역사와 공동체의 신원에 함께한다면, 한강의 노벨 문학상은 더욱더 큰 의미를 만들어 내리라.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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