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토니오 레데스마 전 필리핀 카가얀 데 오로 대교구장

필리핀에서 사회 정의, 평화, 종교 간 대화 및 환경에 대한 옹호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안토니오 레데스마 대주교(Antonio J. Ledesma, 전 카가얀 데 오로 대교구장). 지난 12일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이 주최한 심포지엄  '21세기 아시아 종교와 시노달리타스'의 기조 강연자로 초대돼 한국을 방문했다. 2004년 대전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회의연합 정기 총회 참석 차 온 것을 포함해 이번이 네 번째 방한이다.

14일 합정동 전진상센터에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우리신학연구소(이하 <지금여기>, 우신연)가 안토니오 레데스마 대주교를 만나 그가 분쟁 지역인 필리핀 민다나오의 평화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4일 합정동 전진상센터에서 인터뷰 중인 안토니오 레데스마 대주교. (사진 제공 = 우리신학연구소)<br>
지난 14일 합정동 전진상센터에서 인터뷰 중인 안토니오 레데스마 대주교. (사진 제공 = 우리신학연구소)

<지금여기>, 우신연 : 1973년 사제로 서품되고, 민다나오 지역에서 행한 원주민, 농민 사목이 사제 생활의 초석이 된 것으로 안다. 이 지역은 빈곤과 무력 충돌,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간 종교 갈등으로 고통받는 곳이고, 여기서 평화와 종교 간 대화를 촉진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셨는데, 사례를 통해 그간의 경험을 나눠 달라. 

레데스마 대주교 : 최근 일이다. 2023년 12월 3일 민다나오 주립대학교 체육관에서 가톨릭 학생들과 지도교수들을 대상으로 주일 미사를 시작할 무렵, 폭탄 테러가 일어나 4명이 죽고 50여 명이 다쳤다. 이 사건은 다수 무슬림과 소수 그리스도인 학생 사이에서 종교 간 화합을 실현하는 공동체로 인식돼 왔던 민다나오 주립대에 큰 충격을 주었다. 2024년 1월에 나를 포함해 가톨릭 주교 4명이 코타바토시에서 무슬림 민다나오 방사모로 자치구(BARMM)의 이슬람 지도자들과 함께 “종교는 평화를 위해 존재한다”는 이름의 테러 규탄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2017년에도 마라위에서 훨씬 큰 규모의 사건이 있었다.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으로 전투원이 천 명 이상 사망하고, 수많은 민간인이 다치고 난민이 발생했다. 이 당시에도 카가얀 데 오로 교구에서 가톨릭 주교 12명과 무슬림 종교 지도자 12명이 모여 재건 지원을 촉구하고, 폭력을 규탄한 바 있다. 종교간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평화를 구축하려는 노력인데, 이러한 시도는 매우 중요한 사례다.

<지금여기>, 우신연 : 이번에 열린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심포지엄에서 대구 지역 주민들과 이슬람 유학생들 사이에 이슬람 사원 건축을 둘러싸고 5년여에 걸친 갈등과 반목이 점점 심해지는 사례가 있었다. 세계화에 따른 이주민, 특히 이주 노동자가 늘어나 한국에서도 이슬람 신도들이 더 확산되고, 또 이와 비슷한 갈등이 더 빈번히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문화는 현실이지만 문화 사이의 교류, 대화, 조화와 상생은 아직 한국 사회에 자리 잡기가 요원한 것 같다. 

레데스마 대주교 : 우선은 지역 주민 대표와 무슬림 학생 대표가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교종께서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도 이슬람 대이맘이 나와서 환영했던 일은 상징적 행위였지만, 그런 것을 격려하고 고무하는 차원에서 그걸 본받아 대화를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종교 근본주의적 입장이 깔린 문제라면 단순히 지역 주민과 학생들의 관계로만 풀기는 어려울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지방 정부나,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중재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14일 합정동 전진상센터에서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우리신학연구소와 안토니오 레데스마 대주교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우리신학연구소)
지난 14일 합정동 전진상센터에서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우리신학연구소와 안토니오 레데스마 대주교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우리신학연구소)

<지금여기>, 우신연 : 시민 사회와 종교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특별히 종교가 어떤 태도와 지향으로 시민 사회와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레데스마 대주교 : 교회나 종교도 시민 사회 영역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일반 시민 사회 그룹과 종교를 기반으로 한 그룹 사이에서 분쟁이 있거나 경쟁 관계에 있기보다, 오히려 지구를 돌보는 생태나 사회 정의 문제에 대해 함께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 지점에서 협력하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점이 제일 중요한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에서도 정치 공동체, 경제 공동체와의 협조와 협력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교회 자체를 완벽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고, 세상의 변화나 흐름에 대해서도 교회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 사목헌장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여기>, 우신연 : 주교님은 프란치스코 교종의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대해서도 적극 옹호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기후 변화와 환경 보호를 위한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셨는데, 주교님의 대표적인 활동을 소개해 달라. 나아가 한국을 포함해 기후 변화를 해결하는 데 교회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보는가.

레데스마 대주교 : '찬미받으소서' 회칙이 발표되기 전, 필리핀 바기오 지역에서 이미 20년 전부터 메리놀회 수녀님들을 중심으로 유기농 농장을 운영하고,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활동을 통해 생태 환경의 소중함을 알려 왔다. 또 내가 속한 교구에서 10여 개 본당이 지속 가능한 농업과 생태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교육을 하고, 관련 활동을 하는 단체를 조직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활동에는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함께 참여하도록 해서 자연스럽게 시민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했다.

또 중요한 사례로 소개하고 싶은 것은 민다나오 지역에서 탄소 흡수 효과가 뛰어난 왕대나무를 심는 운동과 맹그로브 숲을 조성하면서 어장을 보호하는 활동을 한 일이다. 이를 통해 2021년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어부이자 교회 환경 활동가인 로베르토 발론(Roberto Ballon)은 소감에서 “인간은 최악의 것을 자행할 수 있지만, 또한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정신적,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여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시 선을 선택하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며 '찬미받으소서'(205항)를 인용하기도 했다.

인터뷰 직후 팍스크리스티 코리아 관계자들과 파주 임진각과 도라산 전망대를 방문했다. (사진 제공 = 팍스크리스티 코리아)<br>
인터뷰 직후 팍스크리스티 코리아 관계자들과 파주 임진각과 도라산 전망대를 방문했다. (사진 제공 = 팍스크리스티 코리아)

<지금여기>, 우신연 : 가톨릭 국제 평화운동기구인 필리핀 팍스 크리스티의 공동 대표이시기도 하고, 인권과 사회 정의를 옹호하려는 활동도 적극 해 오신 것으로 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가톨릭교회가 불평등과 인권 침해와 같은 오늘날의 도전에 직면해 어떻게 정의, 평화에 대한 사회 쟁점에 더 잘 참여할 수 있다고 보는가?

레데스마 대주교 : 수도자들의 국제 네트워크인 ‘탈리타쿰’을 소개하고 싶다. ‘탈리타쿰’은 인신매매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09년 세계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UISG)가 공동 설립한 국제 네트워크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도 초창기에는 여성 인권과 관련해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수도자들 중심으로 운동한다. 이러한 특정 쟁점의 운동은 궁극적으로 사회 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더구나 오늘날 아시아에서는 군부 쿠테타 등으로 독재 국가들이 다시 생겨나는 상황에서 민주화를 위한 사회 정의 운동이 중요해졌는데,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므로 그에 맞춰 펼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여기>, 우신연 : 지난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50주년 총회가 시노드적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총회 최종 문서에서는 교종이 말한 교회 개혁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고, 시노드가 추구하는 평등의 교회상,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성직자의 파트너로서 평신도의 지위 보장, 또 평신도의 교회 의사결정 과정 참여와 관련해서도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참여와 평등의 교회로 가기 위해 지역 교회에서 시급히 해 나가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또한 이번 시노드 여정이 아시아 교회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가.

레데스마 대주교 : 교회 개혁이라는 표현이 쓰이지 않은 건 맞지만, 내용으로는 개혁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전체적으로 인도의 달리트나 필리핀의 토착민처럼 아시아의 소외된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특별히 카자흐스탄이나 몽골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교회에 관한 이야기들이 새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총회 몇 달 뒤에 최종 선언문이 나왔는데, 모든 사람의 의견이 들어간 것이 아니고, 모두가 본 것도 아니다. 가령 한국 교회에 대해 최종 선언문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한국 교회에서도 읽고 계속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시노드 경청의 순환 과정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지난번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세미나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 인구 대비 11퍼센트 신자 비율인 한국에서 선교사 천 명을 약 70개 나라에 파견했다고 들었는데, 매우 존경스럽고 놀라운 일이다. 친교의 의미를 아시아 차원으로 넓혀서 본다면, 이러한 선교 활동을 통해서 친교의 사명을 해 나가는 게 한국 교회라는 생각이다. 이번 주교시노드 역시 친교, 참여, 사명, 세 주제를 강조하는데 그 연장에서 한국 교회의 역할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여기>, 우신연 : 이번 한국 방문에서 인상적이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눠 주시고, 향후 구상하는 계획이 있다면 듣고 싶다.

레데스마 대주교 : 어제 수원교구의 성당 주일 미사에 참여했는데 아주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필리핀의 미사 분위기는 성당에 닭, 강아지 등 가축들이 돌아다니고, 성가도 성가대 중심으로만 부르는데, 그와 달리 한국 교회는 사제와 전체 회중이 함께 성가를 부르고 참여하며 친교를 이루는 전례 분위기여서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는 해외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밖을 지향하는 모습을 본 것도 고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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