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청년들과 찾는 '평화의 경로들'

올해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이 16-20일 한국, 영미, 일본 청년들 참여로 진행됐다.

의정부교구와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피스모모가 함께 마련한 이번 포럼은 연구소가 2017년부터 해마다 진행한 학술대회이자, 2022년부터 한국, 미국, 일본 교회와 도모한 세 번째 포럼이다.

그동안은 청년 참여와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 비중이 높았지만, 올해처럼 온전히 청년들의 나눔과 체험, 대화의 장으로 마련한 것은 처음이다. 미국과 영국, 일본, 한국 청년, 사제와 수도자 40여 명이 참여했다.

포럼 일정은 17일 의정부교구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개최 환영사와 피스 게임(평화 놀이)으로 시작했다. 18일에는 군산, 교동도, 소성리, 대전, 삼척, 철원에서 현장 학습을 하고, 19일에는 현장 경험을 나누고 공연과 다큐멘터리를 감상했다. 마지막 날은 프로그램에 대한 정리와 나눔 뒤에 JSA 성당에서 미사 봉헌으로 마무리했다.

JSA 성당에서 봉헌한 미사. (사진 제공 = 가톨릭동복아평화연구소) <br>
JSA 성당에서 봉헌한 미사. (사진 제공 = 가톨릭동복아평화연구소) 

첫 프로그램인 피스 게임은 ‘동북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협상과 합의 시뮬레이션으로 2000년 10월 31일 유엔 안보리에서 채택된 결의안(UNSCR) 1325호와 2020년 여성평화안보를 위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결의안 1325호는 분쟁 예방과 해결, 평화 협상, 지속적 평화 구축, 인도주의적 대응 제공에서 여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든 안보리 회원국이 모든 유엔 평화 및 안보 노력에 여성 참여를 늘리고, 성인지적(성평등) 관점을 포함시킬 것을 요청한다.

한, 미, 일 청년들에게 협상과 합의를 위해 제시한 시나리오는 중국과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서 1325호의 4가지 축(여성 참여, 전시와 난민 발생 상황에서 여성 보호, 여성에 대한 폭력 예방, 젠더 관점에서 국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구호와 복구)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다.

참가자들은 각각 남한, 북한, 미국, 중국, 일본의 대표단이 되어,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졌던 여성에 대한 전쟁 범죄와 폭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예방할 것인지 토론과 협상을 펼쳤다.

모든 과정이 끝난 뒤, “자신의 입장을 매끄럽게 표현하는 것, 다양한 국가의 정세와 분위기 속에서 태도를 정하는 것, 국익과 개인의 신념이 다른데, 국가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협상 경험을 통해, “정말로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과 동시에 열린 마음으로 소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다. 국가는 국민 여론에 민감하기 때문에 평화와 관련된 시민의 감수성이 중요하다. 자신의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생산적인지 알게 됐다”고 밝혔다.

또 “힘으로 얻는 평화를 바라지 않지만, 막상 협상자 역할에 몰입하다 보니, 힘이 주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느끼게 돼 생각이 많아졌다”는 현실적 문제를 체감하기도 했다.

군산 평화박물관에서. (사진 제공 =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br>
군산 평화박물관에서. (사진 제공 =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평화에 이르는 경로, 역사에서 배운다
폭력 현장에서 길어 올리는 평화의 길들

셋째 날 청년들은 6개 조로 나누어 군산 새만금과 하제 마을, 실향민들의 섬 교동도, 소성리, 대전 골령골과 대전형무소 터, 삼척, 철원에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에 벌어진 폭력과 학살 흔적, 사드 미사일 설치로 고통받는 지역, 탈핵과 탈석탄 운동 현장, 비행장 건설로 뭇생명이 쫓겨나는 곳, 한반도 분단의 현장을 찾았다.

“감춰졌던 학살 현장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의 역사를 몰랐고, 북한 역시 민간인 학살의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도 안타까웠습니다. 피해자들의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공원이 만들어진다면 그곳에서 다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대전 골령골에서, 미국 크리스티나 씨)

“참가하기 전, 사진으로 봤던 삼척 맹방해변의 모습은 이미 없었습니다. 발전소로 인한 수많은 파괴 때문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님이 말했던 것처럼 망가진 땅을 되살리는 것은 오늘의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열어 가는 동시에 오늘을 만들어 가며 살아야 합니다.”(삼척에서 일본 요셉 신부)

“한강 하구 중립 수역의 ‘평화의 섬’ 교동도는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선택한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남북 상황에 따른 불안감과 전쟁 상흔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상처가 보이지 않는 곳은 시장이었는데, 그곳에는 폭력과 이념이 아닌 ‘사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지구상에서 폭력을 없앨 수 없더라도, 전쟁의 참혹함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교동도에서 한국 박병주 씨)

삼척의 연대자들. (사진 제공 =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br>
삼척의 연대자들. (사진 제공 =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평화의 정신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본성을 지니며, 평화운동가는 그 책임과 공동체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 우리 모두에게는 평화운동의 책임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평화의 정신은 다양한 영성 전통을 실천하는 영성과 닮았습니다. 종교적 믿음이 평화에 대한 확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힘을 통한 평화에 익숙했지만 평화를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철원 비무장지대에서 한국 정종석 씨)

“소성리는 평화에 대한 논리와 신념이 일상화된 투쟁 지역이었습니다. 사드 설치는 불법과 불평등, 비논리적인 일이었습니다. 일본 역시 사드가 배치되어 있고 이는 세계적 문제입니다. 평화를 위해 삶을 희생하는 주민들에게 많은 감화를 받았습니다.”(소성리에서 참가자들)

“인간보다 자연이 더 오래 살아남을 것입니다. 군사화에 맞서는 가운데 자연을 지켜야 합니다. 이 땅, 이 지구는 한국의 것도 미국의 것도, 인류만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의 필요로 선을 긋고 자연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새만금의 새들이 경계 없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선을 긋지 않고 자유롭게 교류하길 바랍니다.”(군산에서 일본 토모키 씨)

각기 다른 현장을 다녀온 참가자들 한국와 미국, 일본이라는 각기 다른 국적과 입장에도 현장의 역사적 의미를 짚으며,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 땅과 사람들을 통해 평화에 이르는 길을 찾고 나눴다.

청년들과 함께한 이기헌 주교. ⓒ정현진 기자<br>
청년들과 함께한 이기헌 주교. ⓒ정현진 기자

이 자리를 내내 함께한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 전 교구장)는 “오늘이 제일 기쁘고 행복하다고 할 만큼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주교는 “굉장히 무겁고, 어둡고 또 아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인데,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연대이고, 평화의 가장 큰 조건 역시 연대에 있는 것 같다”면서,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열심히 사는 청년들이 평화를 위해서, 여러 생명을 위해서 연대하는 모습에서 최근 세계 정세를 보며 아프고 무거웠던 마음에 희망이 느껴졌다. 연대의 힘을 느끼며 기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날 프로그램은 청년들의 발표와 함께 ‘캄캄밴드’, ‘모레도 토요일’의 공연, 서한나 감독(샬롬회)의 다큐멘터리 '지금 기도에 초대해도 될까요(CINAP)' 상영으로 이어졌다.

포럼 셋째 날, 각 지역 현장 탐방을 다녀온 뒤,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며 평화의 경로를 찾아가고 있는 참가자들. ⓒ정현진 기자
포럼 셋째 날, 각 지역 현장 탐방을 다녀온 뒤,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며 평화의 경로를 찾아가고 있는 참가자들. ⓒ정현진 기자

마지막 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미국 펜실베이아대 학생 이한나 씨는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위치와 직업, 국적을 가진 이들을 통해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정말 좋았다”면서, “최근 종교적 회의감이 있었는데, 이번에 평화에 대해 종교적으로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개인적인 치유 시간이었다. 또 한반도 평화 문제를 직접 보고 대화하고 배웠던 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한국 이정심 씨(의정부교구 문산 성당)는 프로그램 내용이 빡빡해서 지치거나 힘들수도 있었지만, 그 안에서 서로 화합하고 정말 좋은 추억과 경험을 만들었다면서, “평화에 대해 관심 갖고 공부한 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런데 평화란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인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미, 일 참가자들이 서로 언어 장벽이 있었지만 서로 대화하려고 노력했고, 언어 장벽 때문에 서로 여러 방법을 동원하고, 온 마음으로 귀 기울이면서 오히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됐다. 그 자체가 평화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요시키 마사오카 씨는 간호사로서 환자들과 평화를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는 양국에서 서로 사랑받으라는 의미로 “김서로”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는 “역시 언어적 소통이 어려웠다”면서도, “말을 온전히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함께하는 이들의 눈에서 슬픔을 보고, 분노와 안타까움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느낌을 공유하면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무척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사과, 사죄라는 것을 말로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편안하게 한 공간에 머물 수 있는 것 또한 화해가 되고 사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정현진 기자<br>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정현진 기자
영국 뉴몰든 한글학교의 평화 실험
이향규 교장의 '평화' 이야기


이번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에는 영국 뉴몰든에서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이향규 교장이 특별한 손님으로 참여했다. 그는 남한 주민과 북한 주민이 함께 살아가는 지역에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한 경험을 통해 얻은 ‘평화’의 의미를 나눴다.

여러 삶의 자리가 모인 공간 평화

영국 런던에서 서남쪽,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뉴몰든은 남한 사람 2만여 명, 북한 사람 1000여 명이 함께 살아가는 코리아타운이다. 한반도와 중국을 제외하면 북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제3국인 영국이지만 남한과 북한 거주자들은 여전히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북한 공동체는 훨씬 취약하다. 뉴몰든에 정착한 북한 주민들은 2000년쯤 이른바 ‘탈남한’ 현상, 즉 한국에 정착하지 못한 북한 주민들이 다른 나라로 다시 이주하면서 영국이 받아들인 이들이다.

이후 새로운 북한 주민들이 들어오기보다는 정착민들의 후손이 계속 생겨나는 상황이며, 소수로서도 개방된 생활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향규 씨는 “어쩌면 통일이 된다면 이런 형태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안의 삶들을 관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로 적극적으로 삶을 공유하거나 개방적 태도를 취하지 않지만, 뉴몰든의 남한과 북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서로 의존하고 있다면서, “소비자와 판매자,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형태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현재는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북한이 가진 문화적 가치가 한국보다 주목받고 있고, 북한 사람들은 서로 구체적으로 서로를 돕고, 개인사에 대한 존중을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무엇보다 뉴몰든에서는 북한 사람들이 북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향규 씨는 탈북민이 만든 한글학교에서 자원 교사를 거쳐, 교장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고, 현재는 다른 한글학교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북한 주민 부모를 둔 아이들과 남한 주민 부모를 둔 아이들이 함께 교육을 받고 있다.

다른 문화, 정치, 이념, 자존심 넘어서기
일상의 평화를 사는 ‘좋은 공간’으로서 학교

그는 뉴몰든에서도 남과 북 사이의 긴장과 차이가 여전한 상태에서 무엇보다 양국이 함께 공감할 평화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면서, “남북이 통일된 국가의 국기를 만들어보자는 수업을 하고 아이들과 국기를 그리면서, 스스로 반공 기재가 작동하고 처벌이 두려웠던 경험을 했다. 그러나 그 국기에 대한 아이들의 고민과 생각은 정말로 훌륭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사건을 겪으면서 기존의 한글학교를 나와 새로운 학교를 만들었다. 새 학교를 만들면서 그에게 남은 질문은 “남북한이 서로 협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였다고 말했다.

지난 경험을 통해 그는 남북한 협력이란 매우 위티로운 실험이며, 주도권과 자존심, 젠더갈등 등을 어떻게 지혜롭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전 학교의 구성원보다 더 다양한 이들이 다니기 시작한 학교에서 그는 한반도를 넘어선 아시아의 범위에서 보다 역량을 발휘하고 자유롭게 됐다면서, “남북 문제, 통일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학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글을 잘 가르치는 것,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하는 것, 자폐와 난독증을 지닌 아이들이 필요한 것을 주는 것,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이 학교의 가치는 남북한이 서로 마주보고, 남북한이 함께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향규 교장은 “특정 실험이나 프로젝트가 아니라 일상의 평화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남북한의 요소들을 기계적으로 고려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서, “남한 사람이 교장이고, 학부모 회장은 북한 사람이 맡는다는 결정을 같이 해 나가는 것, 그러면서 남과 북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양질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바로 ‘학교’가 가진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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