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사회 모든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미래에는 어느 일자리가 유망할까 또는 어느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축소될까로 모인다. 국내외 주요 경제 관련 기관들도 해마다 이 부분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연초에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직업의 약 40퍼센트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보다 더 높은 60퍼센트에 달할 전망이다. 또한 특정 직종에서 인간 노동력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제조, 운송, 사무직 등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결론 부분에서 미리 대처하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계 다국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미래 일자리 전망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컴퓨터 관련 일자리의 최대 29퍼센트, 의료 종사자 및 의료 기술 업무의 28퍼센트, 행정 분야는 46퍼센트, 법률 분야는 44퍼센트가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골드만삭스는 IMF와 다소 다른 예측을 하고 있다. IMF가 제조, 운송, 사무직 등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직종들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지만, 골드만삭스는 오히려 의료, 법률 업무 등 고급 전문직 영역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예측한다.

두 기관의 예측이 다르다고 해서 어느 한 기관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둘 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수준 높은 전문가들에게 집필을 의뢰해서 나온 결과물이므로 나름대로 설득력이 분명히 있다. 예측이 다르게 나온 이유는 분석 대상이 미래라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관한 이야기라면 있었던 팩트를 적절한 서사로 포장해서 스토리를 구성하면 되지만, 미래는 불가사의한 요소들로 둘러싸인 공간이라서 한두 개 열쇠로는 들어갈 수 없다. 실제로 예측 보고서가 나온 이후에 다시 그 예측을 수정 보완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보자. 8년 전인 2016년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대국한다고 발표했을 때, 당시 전문가 대부분은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견했다. 체스와 달리 바둑의 경우, 수가 많아서 미리 프로그램된 알파고가 경험 많은 프로 기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알파고가 3승 1패로 이겼고, 이세돌은 인공지능을 한 번이라도 이긴 유일한 인간으로 기록됐다. 이세돌 이후 알파고를 이긴 기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불과 8년 전 일이다.

(이미지 출처 = kr.freepik)
(이미지 출처 = kr.freepik)

이세돌 이후 사람들은 인공지능 발전 속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고,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또는 오랜 시간 후에 대체가 가능한 분야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창의성(Creativity)에 관련된 업무 또는 직업이었다. 인공지능 발달로 수많은 업무와 직업이 대체된다고 해도 인간의 창의성만은 살아남을 것으로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은 수집된 데이터에 기초해 지시받은 업무를 수행하는 일종의 프로세서라서 분석적이고 반복적인 일에는 적합하지만, 예술 작품 창작과 같은 창의적인 일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창의적인 일은 향후 오랜 기간 인간의 독점 영역으로 남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이런 예측 역시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 온 창의성마저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포섭됐다.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고 작곡하고 영상을 제작한다. 미국 인공지능 연구기관 오픈AI가 개발한 텍스트-비디오 모델 소라는 텍스트 몇 단어만으로 바로 동영상을 제작해 준다. 동영상의 수준도 높다.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즉, 자기 학습을 하게 되면 그 수준은 더 높아지게 된다. 많은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 작가조합(WGA)과 미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의 조합원 수십만 명이 영상 제작에 생성형 AI가 이용되는 것에 반대하면서 오랜 기간 파업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몇 년 전 예측도 맞지 않는 상황에서 미래 일자리를 전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는 늘 미래에 관심이 많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부단히 미래를 준비해 왔다. 신앙이 있는 이유 중 하나도 미래에 대한 준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인공지능은 성직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직자의 업무를 분석해야 한다. 주 업무 중 하나인 설교문 작성은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다. 성경 구절과 절기와 같은 몇 가지 일반 상황, 최근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일 등을 알려 주고 설교문 작성을 지시하면 무난하게 만들어 준다. 변호사들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의견서 초안을 작성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수많은 판례를 학습한 인공지능은 변호사 요구에 1분 안에 대답한다.

성경 연구나 신학적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데이터 학습량에 따라 답변의 수준과 정확도 등이 결정되기 때문에 사람이 인공지능보다 더 뛰어나기 힘들다. 데이터 학습을 통해 보편적이고 적절한 답변을 작성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 힌트가 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학습해도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개인별 특수한 상황들이다. 경제적 어려움, 질병으로 인한 고생, 가정 문제 등과 같은 일반적 문제 말고도 개인들이 겪고 있는 특수한 상황들은 데이터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없다. 학습할 수 없으니, 해결책을 제안할 수도 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신의 피조물이면서 동시에 진화의 결과물이다. 육체와 정신 안에는 태곳적 신비와 역사의 모든 과정, 종말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고스란히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집합적이면서 동시에 개별적이다. 이 사피엔스가 실존적 고민과 현실적 어려움이 교차하는 곳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그 손을 잡아 주고 위로하면서 기도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체는 같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 대중 설교가 아니라 공감과 위로가 주요 업무라면 그 역할의 주체는 분명하다.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의 본질이 여기 있다. 네가 하는 일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김홍열

연세대 졸업. 사회학 박사. 미래학회 편집위원.
저서 "축제의 사회사", "디지털 시대의 공간과 권력"
공저 "뉴사피엔스 챗GPT", "시그널 코리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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