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름 그륀 신부님이 쓰신 “인생이라는 등산길에서”(김기철 옮김, 생활성서사, 2021)는 등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산행을 하는 순간, 그리고 정상에 오르고 마지막 하산을 하기까지 신앙인이 등산길에서 겪는 다양한 순간을 어떻게 묵상하며 자아성찰의 계기로 삼는지 잘 설명해 준다. 필자도 순례길을 걸으며 얻은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지난 5, 6월 두 달 동안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이어 가려고 한다.

순례길 준비는 먼저 자신의 일정에 맞추어 경로를 정하고 준비가 부족해 보여도 머뭇거리지 않고 하느님의 도움과 자신을 믿고 떠나는 데에서 출발한다. 평소에 조금씩 걷고 신발과 배낭에 익숙해진 다음, 15에서 20킬로미터 정도를 연이어서 걸어 보는 것도 좋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한 가지를 택한다는 것은 결국 그 한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다른 길에서는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하나의 길을 선택하여야 하며,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내가 선택한 길을 걸을 수 있다.”("인생이라는 등산길에서", 이하 같음)

순례자들은 피레네 산맥 아래 프랑스 남쪽 마을 생장 피에드 포르에서 시작하는 프랑스 길과, 프랑스 국경으로부터 다리 하나를 두고 맞닿아 있는 스페인 북부 마을 이룬에서 시작하는 북쪽 길을 걷기 위해서 파리로 가는 경우가 많다. 파리를 처음 방문하는 이들은 며칠 더 머무르면서 시내 관광을 하고 순례의 출발지로 이동하거나, 두세 번 방문하는 이들은 비행 시간과 열차이동 시간이 운 좋게 연결이 되면 바로 이동하고, 딱 들어맞지 않을 경우 하루 이틀 머무른다. 필자도 두 번째여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퐁피두 센터와 피카소 미술관을 둘러보며 하루 더 머무르고, 북쪽 길을 시작하기 위해 프랑스 고속열차 떼제베를 타고 파리 시내 몽파르나스역에서 프랑스 남쪽 끝 앙다이역으로 이동했다.

보르도를 지나 심심한 경치가 끝나고 바욘부터 대서양을 오른쪽으로 보며 눈 호강을 하다 보면 마침내 앙다이역에 도착한다. 역에서 3킬로미터 걸어서 다리를 건너 스페인으로 들어가 북쪽 길 시작점인 이룬에 다다랐다. 크레덴시알이라고 부르는 순례자 여권은 공립 알베르게 하코비에서 숙박하며 구매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공립 알베르게에 숙박하려면 순례자 여권이 필요하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해서 순례자 인증서를 받으려면 이 순례자 여권에 거쳐 가는 마을마다 세요라고 부르는 스탬프를 찍어야 한다. 오후 4시 등록 시간에 맞추어 입구에서 참을성을 키우며(기부제로 운영하는 이 알베르게는 봉사자 한 분이 순례자를 한 명씩 직접 침대까지 안내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순서를 기다려 침대를 배정받아 짐을 풀었다.

첫 구간은 이룬에서 산세바스티안까지 25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가파른 산 두 개를 넘기 때문에 프랑스 길 첫 구간 피레네 산맥을 넘는 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힘들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면 대서양의 멋진 풍광을 볼 수 없어서 더욱 힘이 든다. 다행히 파사이아(17킬로미터 걸어서 도착하면 잠시 배를 타고 건너 산세바스티안으로 갈 수 있다)에 도착할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아 힘들지 않게 넘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려니 비가 퍼붓기 시작해서 산길 대신 우회도로로 사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파리에서 같은 기차를 타고 같은 숙소에서 만난 프랑스 순례자(충동적으로 별 준비 없이 첫 순례를 나섰다)와 좋은 동반자가 되어 순례를 이어 가고 싶었지만, 첫 고비를 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해서 많이 아쉬웠다. 중국 속담에 ‘연이 있으면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만나게 되며, 연이 없다면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도 만날 수 없다’고 했는데 다시 한번 실감했다. “동반자는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동안 줄곧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게 됨으로써 누구보다도 나를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다. 즉, 함께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각자 자기 내면과 마주하는 동시에, 서로를 위한 도움이 되어 주는 것이다.”

산타이고 순례길 첫째 날. ©조은기
산타이고 순례길 첫째 날. ©조은기

첫째 날을 수월하게 마쳐서 둘째 날, 비가 오는 산길을 22킬로미터 걸었어도 힘들지 않게 사라우츠에 도착했다. 60대 한국인 부부 순례자와 두런두런 지나온 순례 경험을 나누어서 더 좋았다. 셋째 날은 선착순으로 50명만 숙박할 수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여유 있게 도착하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데바를 향해 가는 길은 고개에서 고개로 이어져, 내리막길 땅만 보고 걷다가 이정표를 놓쳤다. 길 잃고 헤매고 있는 순례자에게 이층 창문을 열고 소리쳐 친절하게 알려 준 현지 주민 덕에 무사히 도착해서 11번째로 등록했다. 넷째 날은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님이 태어나고 자란 마르키나까지 걸었다. 순례자들은 내부에 커다란 바위 세 개가 있는 산 미겔 성당을 인상 깊게 보지만, 필자는 신부님의 흔적을 좇아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으나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며칠 후 빌바오에 도착해서 쉬어 가며 들른 몬드라곤 대학 교정에서 신부님의 동상을 보고 아쉬움을 달랬다.

몬드라곤 대학 교정에 있는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nbsp;신부 동상.&nbsp;©조은기<br>
몬드라곤 대학 교정에 있는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 동상. ©조은기

다섯째 날, 마르키나에서 게르니카 지나 순례자들에게 맛있는 식사와 친절한 응대로 유명한 사립 알베르게가 있는 포수에타까지 30킬로미터 정도를 걸어야 해서 우체국을 통해 배낭을 보내고(아침에 출발할 때 목적지 주소와 이름을 적어 배낭에 붙여 놓으면 된다) 홀가분하게 출발했다. 피카소의 그림으로 유명한 게르니카 청사 앞에서는 독일군에게 무참하게 폭격당한 당시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5킬로미터 반, 더 산길을 올라야 예약한 알베르게에 도착할 수 있어서 하염없이 발길을 옮기는데 문득 한용운의 시 '나룻배와 행인'을 읊조리게 되었다. 나룻배는 순례길, 행인은 순례자.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섯째 날, 빌바오까지 24킬로미터를 비를 맞으며 걸었다. 어제 늦게 도착해서 예의 없이 행동하던 누추해 보이는 스페인 순례자 부부가 빗속에서 묵주기도를 드리며 열성을 다해 걷는 모습을 보고 반성했다. "칠극"에서 왜 교만을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죄목으로 여기는지 절로 이해가 되었다. 석양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사람들의 모자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처연하게 아름다웠다.

구겐하임 미술관.&nbsp;©조은기
구겐하임 미술관. ©조은기

빌바오에서 하루 쉬어 가며, 한 사람의 영향으로 50년대 낙후된 시골 마을에서 모두가 평안히 노후를 보내는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한 몬드라곤 시와 영화 ‘왕좌의 게임’ 촬영지라고 알려진 가스텔루가체, 해안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외딴길 작은 섬 위의 성당을 구경했다. 두 달 동안 매일 걷는 순례길에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 쉬어 가면 도움이 많이 된다. 친구와 함께 프리미티보 길을 걷기 위해 오비에도로 이동해야 해서 가는 길에 빼놓을 수 없는 피코스 데 유로파(유럽의 지붕이라는 의미의 산맥) 속에 자리 잡은 코바동가 성당과 에르시나 호수와 에놀 호수를 들렀다. 오월에도 산 위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고 맑은 고지대의 호수는 청량해서 좋았다. 홀로 걸으며 순례의 의미를 되새겼다. “길 위를 걷는 것, 그것은 하느님과 이웃들을 향한 올바른 길은 무엇인가라는 나 자신의 질문을 향한 발걸음이다. 생명과 자유,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한 길을 걷고 싶다.”

가스텔루가체, 섬 위의 성당 ©조은기<br>
가스텔루가체, 섬 위의 성당 ©조은기
피코스 데 유로파. ©조은기<br>
피코스 데 유로파. ©조은기

조은기(아우구스티노)

80년대 가톨릭학생회와 야학에서 20대를 보내고, 33년 동안 대기업, 중견기업, 소기업에서 사원, 대리, 과장, 부장을 거쳐 팀장, 임원, 대표이사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는 은퇴하여 국내외 다양한 순례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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