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심포지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심포지엄을 열었다.

20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가톨릭교회와 평화교육'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는 '가톨릭 시민 교육과 평화'(가톨릭대 김남희 교수), '청소년과 가톨릭 평화교육'(가톨릭교육학 손서정 박사), 토론은 김선 교수(카이스트)와 조정아 교수(통일연구원)가 맡았다.

가톨릭 시민 교육, 교인을 넘어 성숙한 ‘시민’ 양성이 목적
퀵보른, “정신적 강인함을 지닌 한 인간이자, 성숙한 가톨릭 신자”로

김남희 교수는 가톨릭 시민교육과 평화에 대해 독일의 ‘퀵보른 가톨릭 청소년 운동’(이하 퀵보른)의 사례와 로마노 과르디니(1885-1968)의 사상을 소개했다.

2010년 독일 가톨릭 성인교육국 인턴 시절, 단순 신앙, 종교교육을 넘어선 가톨릭 성인 교육을 접한 그는 “(독일의) 가톨릭 성인 교육은 신자들을 독실한 교인으로만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시민으로 양성하는 것을 우선시했다”고 설명했다.

또 성 요한 23세 교종 회칙 ‘어머니요 스승’, 베네딕토 16세 교종 서한에도 ‘가톨릭 시민’을 언급하고 있다면서, 교회 문헌 속 ‘가톨릭 시민’은 “교회와 정치, 사회와의 유기적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모든 민족의 발전을 위하여 불평등에 저항하고, 평화와 일치를 지향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했다.

김남희 교수는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위축되고 사사화된 한국 상황에서 가톨릭 시민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가톨릭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논의의 강조점을 ‘시민 교육’이 아닌 ‘가톨릭 시민’에 두고, 이를 위해 교육 방법이나 내용보다는 교육의 본질을 우선적 논의한 사례로 독일 청소년 운동을 제시했다.

이어 가톨릭 시민 교육과 평화의 접점을 퀵보른과 이에 영향을 미친 과르디니의 인간학적 개념인 인격, 만남, 봉사와 헌신을 통해 들여다봤다.

퀵보른은 20세기가 도래하던 시기,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교육 개혁 움직임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기존 사회와 교육체제에 저항하면서, 금욕적이고 고유한 자신의 삶을 구축하고자 했던 독일 청소년 운동의 흐름에 종교 계열 청소년들도 동참하면서, 신자라는 자각을 신앙생활로 승화시킨 대표적 청소년 운동이 ‘퀵보른’ 가톨릭 청소년 운동이다.

'생동하는 샘, 활기차게 끓어오르는 분수'라는 의미를 가진 퀵보른은 교육개혁 움직임이 있던 1909년 베른하르트 슈트렐러 신부 주도로 시작한 ‘금욕 학생회’로 출발했다. “무기력한 교육 현실에서 탈피해 금욕을 통한 새로운 삶의 양식을 강구”했던 금욕학생회 활동은 과르디니에 의해 “정신적 강인함을 지닌 한 인간이자, 성숙한 가톨릭 신자를 양성하는” 퀵보른 운동으로 나아갔다.

과르디니는 가톨릭 청소년 운동의 고유성을 “권위에 대한 문제 제기, 가톨릭 청소년의 삶의 양식은 무엇인가에 대한 비전 제시”고 고찰하면서, 권위는 타당성을 근거로 매번 바뀌는 것이 아니라 순종해야 하는 진리로 봤으며, 그리스도교적 삶의 양식은 ‘진리’라는 권위에 대한 순종에서 시작해야 하고, 그 순종은 ‘창조적’이어야 한다고 봤다.

과르디니에 따르면 “하느님을 향한 주관적 길을 간다는 것은 궁극적 자아와 연결된 개인의 고유성(자아)을 키워 내는 길이며, 개인의 고유성을 토대로 그리스도교적 삶이 발현되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교적 삶은 완전히 해방된 창조력을 지닌 삶”이다.

김남희 교수는 이러한 과르디니의 인간에 대한 이해 위에서 그리스도교의 평화를 모색했다.

먼저 그는 과르디니가 이해하는 평화에 대해, “평화는 인간 본질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본질을 지닌 인격으로서 인간 이해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해하는 단초”라고 설명하면서, “각각의 인간에 내재한 자목적성과 자기 귀속성은 삶을 성장시키고 창조적으로 형성시킬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을 지니면서도, 자신은 옳고 타인은 옳지 않다는 배타성도 내재돼 있다. 이 배타성은 평화가 아니며, 만남과 대화가 평화의 시작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과르디니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평화는 “나와 너의 관계, 즉 인격의 만남과 대화의 속성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배타성이라는 속성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감정을 바로잡을 때, 비로소 평화를 향한 길이 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남이 다른 사람을 향해 나오는 인간의 말과 행동으로 성립한다는 측면에서 평화는 ‘타인은 적’이라는 본성적 말이 ‘타인이 바로 나’라는 고백으로 바뀔 때 시작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맥락에서 과르디니는 “자아 중심이 아닌 ‘대상’의 입장에서 보는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대상을 대상 스스로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인식하며, 그의 요구를 이해하고, 이러한 요구의 정당성에 근거해 대상의 요구를 들어주게 하는 교육이 대상의 교육학”이라고 규정하고, “내가 그 대상의 요구에 응할 때, 대상을 자기 세계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대상이 요구하는 것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 행위가 바로 봉사와 헌신”이라고 했다.

또 ‘나와 너의 관계’라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삶은 비인간적이고 비그리스도교적 개인주의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 인간 존재는 개별적 존재와 공동체적 존재의 상호 연계 속에서만 가능하다면서, “공동체로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뒤따르고 그리스도의 내재에 힘입어 인간 존재의 다양한 실존 양태가 드러나는 곳이며, 이 실존 양태를 통해 그리스도 자신의 모습을 늘 새롭게 세상에 보여 줘야 한다. 세상을 더욱 새로운 창조로 변형시켜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교육은 인간을 대상으로 인간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의 활동이며,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교육의 목적, 내용, 방법이 달라진다”면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며, 가톨릭 교육에서도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와 논의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첫 발제 토론을 한 김선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에 과르디니의 교육 사상이 많은 함의를 줄 수 있다는 의견을 밝히고, “기술 발전이 교육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지금, 과르디니의 ‘대상 교육학’은 인간 중심의 가치와 대화적 관계를 통해 평화와 사랑의 질서를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가톨릭교회와 평화교육'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정현진 기자<br>
지난 20일,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가톨릭교회와 평화교육'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정현진 기자

교회 담을 넘지 못하고 삶으로 연결하지 못한 ‘평화 교육’

이어진 발표에서 손서정 박사는 청소년의 ‘삶을 살리는’ 평화교육 모형을 제시했다.

손 박사는 관계의 파괴와 죽음, 폭력이 지배하는 교육 현실에서 “청소년 자신의 실질적 삶에서 스스로 평화를 만들고 확장할 수 있는 교육 모형을 개발하고자 했다”고 연구 목적을 밝히고, “기존 교육이 청소년들의 삶을 살리고 스스로 평화를 구현할 수 있는 평화교육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교육에 대한 근본적 점검과 열린 상상력으로 근원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가톨릭교회와 공동체의 평화를 향한 노력과 가르침에도 일반인들이 다가갈 수 있는 경로를 만들거나 대중적 언어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으며, 신자라는 경계를 넘어, 변두리로 나아가 모든 인간에게 다가가는 보편 교회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체계적 교육 시스템 구축과 학문적 연구 기반도 열악하다고 진단하면서, “가톨릭 사상의 근간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육학을 온전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행보에 따른 교육 내용뿐 아니라 교육 방식까지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여러 영역에서 평화교육을 적용했지만, 교육이 삶으로 연결해 삶에서 평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면서, “평화교육의 주체가 인지적이거나 정의적인 한쪽 부분에만 천착하거나 한반도 분단, 이념과 전쟁, 세계 평화 등 거대 담론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치우쳐, 학습자 개인의 삶과는 연관되지 않았고, 실질적 삶에서 평화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청소년 평화교육을 구성하는 데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삶 자체”라면서, “정책적 당위성, 교육자나 특정 주체 중심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고민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교육에 참여하는 청소년 중심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하며, “평화교육의 궁극 목적은 삶을 살리는 평화 문화 형성”이라고 강조했다.

“평화교육이 참여자들에게 매력적인가를 항상 점검해야 한다”는 그는 “청소년과 청소년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적 요구를 경청하고, 충분한 교감과 대화로 친밀감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전제돼야 하며, 흥미를 자극하는 가장 쉬운 방법 역시 그들이 가진 자원과 살아가는 자신들의 삶, 현재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삶에 실질적 평화를 불러오기 위한 교육은 “평화에 관한 지식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만들 수 있는 신념과 능력을 길러 주고, 실제 평화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존엄한 인격을 지닌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청소년 평화 교육의 조건이자 목표로 “인간 삶을 살리는 것, 비평화를 인지하고 삶 속에서 폭력을 제거해 나가는 것, 평화에 대한 각종 이슈와 문제를 촘촘히 엮어내고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학습 내용, 청소년의 경험과 삶을 적극 반영하고 서술하는 방법” 등을 제시했다.

이를 위한 평화교육 모형 개발에 교육자이자 신학자인 토마스 그룸(1945-)의 교육 사상을 접목시킨 손 박사는 그룸의 “나눔의 프락시스(실천적 삶)”를 바탕으로 한 “삶-앎-삶 교육 접근”과 유동적 교육활동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룸의 프락시스(Praxis)는 성찰하는 삶을 배운다는 것과 더 광범위한 이론에서부터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 주된 개념으로, 바라는 결과를 위한 성찰과 알아가는 행위 사이에서 이론과 실천을 결합시킨다.

이 개념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현재 나의 상황과 행동, 비판적 성찰 그리고 대화”다. 그룸이 교육 모형에서 제시한 5가지 초점 활동은 이미 일상적인 것이면서도 상황에 따라 변형할 수 있다. “현재 자신의 삶의 주제 표현, 주제와 삶에 대한 대화와 비판적 성찰, 주제와 관련한 이야기와 비전이 만나도록 재현하기, 진리와 지혜를 삶에 내면화하기, 결심 또는 가르침에 어떻게 응답할지 스스로 결정하기”로 구성한 각 활동은 손 박사의 연구에서 두 가지 모형으로 재구성, 적용됐다.

두 가지 모델로 한 고등학교 평화교육과 평화센터 프로그램에서 실행한 평화교육 모형 결과와 참여자 면담 분석을 통해 교육 모형의 주요한 요소로 “둘러앉기, 상기하기, 관계맺기, 참조하기, 논의하기, 성찰하기, 활기찾기, 요청하기, 재창조하기” 등 9가지가 도출됐다. 그는 이 9가지는 다시 크게 “현재의 삶, 심층적 앎, 나아가는 삶”의 세 단계로 연결해 선순환하는 과정을 반복함에 따라 평화의 삶과 실천으로 더 가깝게 접근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 세 단계의 의미에 대해 “동료와 함께 둘러앉아 자신의 삶을 상기하고, 동료와 관계를 형성하며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학습 동기를 확장시키는 단계, 이어 심층적 앎의 단계로 들어가 이론과 지식을 참조, 습득하고, 토론하고 논의하는 탐색, 내재된 앎을 성찰하고 내면화하면서 삶으로 연결시키는 두 번째 단계를 지나 삶의 활기와 생명력을 되찾고 스스로의 목소리로 창의적, 변혁적 요청을 함으로써 평화로운 삶과 평화의 문화를 스스로 재창조하는 나아감으로 마무리된다”고 정리했다.

손서정 박사는 청소년 평화교육에서 “가르치는 주체는 교육 내용과 방식을 다룰 실질적 역량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평화를 가르치면서 무의식적으로 비평화적 언행을 하지 않도록, 진심으로 청소년과 공감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평화를 외치는 이들이 평화롭지 못한 모순”을 경계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그는 “가톨릭 사상에 근간을 둔 교육 모형이 교회의 시스템, 지지와 맞물려 평화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며, “평화를 향한 참된 복음적 식별을 실천하기 위해, 시대의 표징에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확장할 수 있도록 가장 구석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닳을 수 있는 매력적 평화교육 네트워크 구축을 당부”했다.

토론에서 조정아 교수는 그동안 이뤄진 평화 교육이 “분단, 이념과 전쟁, 세계 평화 등의 거대 담론을 주입하는 방식에 치우쳤다는 지적”에 동의하면서, “공교육 내에서 평화교육의 문제의식을 통일교육과 접목하려는 시도가 정부 정책이나 남북 관계에 좌우돼 온 것은 평화통일 교육이 교육의 아니라 정치와 정책의 대상으로 다뤄져 왔다”는 점도 지적했다.

조 교수는 “평화 관점의 통일교육 목표,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면서, “평화 관점의 통일 교육은 한반도라는 공동 생존의 장에서 나의 위치, 나와 북한 주민을 포함한 타인의 관계를 돌아보고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도록 활력화하는 것을 목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서로를 적대적 타자로 여기는 현재의 분단체제를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남북한 주민들 간의 동질성 공유와 차이 인정 문제, 공동과 연대 문제”라면서, “이는 팬데믹 이후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한 반성과 연결되기도 한다. 타자와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하는 평화적 관점의 통일교육은 어쩌면 통일교육이라는 이름을 떼어버릴 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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