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은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대중적 지지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82-92퍼센트까지 매우 높다. 긍정의 강도도 2020년 조사를 보면 24.4퍼센트가 ‘매우 긍정’, 67.7퍼센트도 ‘대체로 긍정’이었다. 국민들이 건강보험제도를 이토록 지지하는 이유는 직접 체감이 되는 사회보험이기 때문이다. 본인이나 가족이 아플 때 건강보험이 있어 비용 걱정을 줄이고 의료 이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긍정 반응에는 실제로는 역사적 세계적 맥락도 있다.
사랑받는 여러 이유
한국은 1988년까지는 전국민건강보험이 없었다. 현재 고령층은 건강보험이 없던 시절을 살면서 의료비 걱정으로 병원 이용을 자제해 본 세대다. 여기다 1977년 도입한 직장건강보험과 전국민건강보험 사이 10여 년간은 보험증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의료 이용을 결정했다. 그래서 옆집 보험증을 빌려 병원에 가는 경우도 생겨났다. 즉 건강보험 적용 국민과 아닌 국민의 차별이 있었고, 이 때문에 혹자는 87년 민주화 투쟁의 가장 큰 성과가 실제로는 전국민건강보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는 국민과 아닌 국민의 차별은 어떤 차별보다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강보험제도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으로 얻은 것이다. 최근 들어 1977년 직장건강보험 도입을 박정희 정부가, 1988년 전국민건강보험을 노태우 정부가 한 것을 들어 보수 정부가 건강보험제도 같은 복지제도 도입에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역사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상은 4.19혁명으로 건강보험 도입이 결정됐던 법안 이행을 무려 16년간 지연시킨 것이 박 정부였고, 끝까지 직장조합 형태의 건강보험만 인정하려 했던 것이 노 정부였다. 둘 모두 정부 재정을 한 푼도 건강보험에 보태려 하지 않으려 해 보험 보장 범위와 적용 대상이 축소된 바도 있다. 현재의 건강보험이 가진 고질적 병폐인 낮은 보장율과 비급여 문제는 이들 보수 정부의 책임 방기 때문에 야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미국의 엉망진창 의료 제도 때문에 한국 건강보험의 상대적 우수성이 크게 알려졌다.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지원을 받고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주요 엘리트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재미교포도 260만 명을 넘는다. 개발도상국 시절 최대 교역 국가도 미국이었다. 이처럼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는 밀접한 연관을 가져 왔다. 그런데 알다시피 미국의 건강 보장은 국제적으로도 최악이다. 미국은 민영의료보험제도와 영리병원제도가 있어 오바마케어가 발동되기 전까지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국민이 전체의 30퍼센트가량 되었다. 보험이 있더라도 영리병원과 민영보험사의 복합체 기업으로 의료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다.
이런 미국에서 살았거나 살고 있는 유학생, 친인척, 친구들의 무서운 의료 비용도 한몫했다. 유명 연예인이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뇌수술 비용이 4억 원이었다는 보도 등도 뉴스에 나오곤 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엉망진창 의료 제도 자체가 한국 건강보험의 우수성을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만들었다. 여기다 오마바 대통령조차 한국의 건강보험을 칭찬하고 부러워했다. "오마바도 부러워한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이란 책도 나왔을 정도다.
끝으로 한국은 교육, 주거, 연금, 돌봄, 수당 등 여타 사회복지제도가 매우 낮은 보장과 선별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이 시장에 맡겨져 있어 유럽 국가들처럼 사회복지 전반을 체감하지 못한다. 유일하게 보편적인 사회보장 제도로 체감이 가능한 사회보험이 건강보험이라고 부를 만하다. 즉 한국의 낮은 사회복지 수준 때문에 건강보험에 대한 대중적 사랑이 더 커진 면도 있다.
사실상 국민건강보험 완성을 선언한 정부
이런 맥락으로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제도이다 보니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모두 건강보험제도를 자신의 성과로 만들거나 더욱 발전시키겠다고 밝히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 이런 방향과 달리 건강보험제도가 더 이상 발전이 필요없고 다른 패러다임으로 보완하면 된다는 정부가 윤석열 정부다.
대통령 본인이 직접 2022년 12월 국무회의에서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 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인기 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은 재정을 파탄시켜”라는 발언을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였고, 2024년 2월, 5년 중기발전계획인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는 ‘주요 질환의 건강보험 보장율이 이미 70퍼센트를 크게 상회하여.... 기존 방식에 의한 보장률 개선에 한계’가 왔고, ‘의료비 부담 완화’의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곤란하다고 밝히며, 추가적인 보장성 강화 계획을 전혀 발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충분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데이터를 보면 한국은 입원 기준 67퍼센트로, 일본 92퍼센트, 독일 97퍼센트, 프랑스 96퍼센트, 이탈리아 97퍼센트, 캐나다 91퍼센트에 비추어 너무나 낮다.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멕시코, 그리스, 브라질밖에 없다. 즉 한국의 건강보험의 보장율은 OECD 꼴등 수준이다. 다른 보건지표는 평균을 지향하면서 왜 보장율은 꼴등인데 충분하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또한 한국은 상병수당 제도가 없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상병수당이란 아파서 노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소득을 보존해 주는 제도다. 상병수당이 없는 국가는 미국, 이스라엘, 한국 정도다. 이 또한 주요 국가들과 형평에 맞지 않다.
끝으로 한국은 건강보험이 있지만, 급여와 비급여 진료를 혼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건강보험이 있다면 비급여 진료를 건강보험 진료를 할 때 섞을 수 없어야 환자의 실질적인 선택권이 보장된다. 그런데 한국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제도도입 초기부터 정부가 재정투입을 방기해 필요한 의료서비스의 상당부분을 급여화 하지 못해 비급여 혼합진료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정부는 이를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비급여 중 필요한 의료 서비스는 급여 서비스로 바꾸고 혼합진료 금지를 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향후 비급여의 급여화는 불필요하다고 윤석열 정부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건강보험제도를 현재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고령화 및 민간 중심 공급구조에 대한 대응을 낮은 급여 범위에서 해결하려는 국가책임 방기다. 그 고통은 모두 우리 국민들이 떠안게 된다. 현재도 주요 국가보다 높은 수준의 직접본인부담으로 4000만 명 이상이 실손의료보험이라는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상태다. 국민건강보험이 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민간의료보험을 가입하는 이유도 앞서 말한 보장 범위와 보장율이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의 개혁과 발전을 철회한다는 뜻은 민영보험 시장 확대를 뜻하게 된다. 민영의료보험이 건강보험보다 낫다는 것인가? 윤석열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을 ‘개인’ 건강보험으로 전락시키고, 미국식 의료제도보다는 낫지만, 유럽 국가나 일본보다는 못한 상태에서 만족하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제도에서 지불 능력이 없는 저소득, 취약계층, 고령층이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워진다. 다시 말해 의료 불평등이 가속화된다. 때문에 주요 선진 국가들이 보건의료 서비스 보장을 90퍼센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공적 건강보장율이 60퍼센트대인데 만족하자는 주장의 이면은 불평등을 부추기고 국민들을 선별적으로 대우하겠다는 뜻의 다름 아니다.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주요 언론의 찬양도 이젠 과도하다. 우리의 눈높이가 언제까지 개발도상국에 머물러야 할까? 국민건강보험은 결코 완성되지 않았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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