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창간 15주년을 맞아 응원하는 릴레이 기고를 진행합니다. 글과 인터뷰,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금여기>가 첫 마음을 잃지 않고, 한국 가톨릭교회의 공론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창간 15주년을 맞았다. 창간 준비 단계부터 우리신학연구소의 방 한 칸을 사무실로 꾸리고 객원기자로, 편집위원으로, 지금은 상임이사 역할을 맡고 있는 나는 특별히 감회가 깊다. 10주년을 보내던 2019년을 전후로 후원금이 큰 폭으로 줄고, 상근 기자들의 근무 여건이 어려워지더니, 이후 코로나 팬데믹은 앞으로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용케 15주년을 맞았다. 상업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매달 후원해 주시는 길벗들이 없었다면 맞지 못했을 15주년이다.

독립 진보 언론을 표방한 인터넷 매체들의 퇴조

<지금여기>를 비롯한 독립 진보 언론들이 처한 여건은 그리 녹록치 않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상업 광고 없이 ‘독립 진보 언론’을 표방한 매체들의 휴간, 제작 중단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2006년 창간 이래 진보 진영 담론을 이끌었던 <레디앙>(Redian)의 명맥이 18년 만에 끊겼다. <레디앙>은 이미 2012년 경영난 등을 이유로 제작 중단을 선언했다가 3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연바 있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지난해 무기한 휴간한 지 9개월 만에 재발간했지만, 외부 칼럼 등 중심으로 유지하는 중이다. <참세상>은 2020년 포털에 기사 콘텐츠를 제휴하고 수익을 받는 콘텐츠제휴(CP) 매체에서 검색 제휴로 강등된 것이 재정난 악화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참세상>이 2016년 창간해 7년여 간 발행했던 월간지 <워커스> 역시 지난해 7월호를 끝으로 발행을 중단했다. 충청 지역의 독립 언론이었던 <미디어충청>은 2016년 창간 10년 만에 폐간했다.('독립진보 언론은 가능한가, 20년의 물음', <미디어 오늘>, 2024.6.1. 참고)

앞서 언급했던 매체를 포함해 진보 인터넷 매체의 경영난은 하루이틀 일은 아니다. <지금여기>를 포함해 이들 매체의 공통점은 기자 수가 적고, 임금은 낮다는 사실이다. 기자 수가 적다 보니 노동 강도가 높고 기사의 질이 높아도 생산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기사 생산량이 제한적이다 보니 주요 언론처럼 사회적 이슈를 따라갈 수도 없고, 더 많은 이에게 노출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는 조회수 하락과도 연결되고, 후원회원 확장이나 광고 수주에도 어려움을 준다. 원인을 알면서도 개선 방안을 찾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7-23년 재정 상황. (단위 : 천 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7-23년 재정 상황. (단위 : 천 원)

천주교 사회운동과 <지금여기>의 함수 관계

독립 진보 언론들이 운영난을 겪는 데는 해당 언론사 기사 생산의 토대가 되는 진보 정치, 시민사회 운동의 침체 상황과도 관련이 깊다. 이번 22대 총선에서 원내 진입에 실패한 정의당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진보를 지향하는 운동의 어려운 여건이 결국은 독립 언론의 존재를 위협하는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천주교 사회운동이 처한 상황도 <지금여기>가 겪는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다. 공교롭게 올해는 1970-80년대 천주교 사회운동에서 사제와 평신도 그룹의 중심축 역할을 했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50주년,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창립 40주년을 맞는 해다. 50주년과 40주년이라고 하니 천주교 사회운동이 현재도 뭔가 거대한 조직으로 존재하리라 생각되지만, 오랜 전통과 달리 자발적 모임이나 조직으로 존재하는 천주교 사회운동은 후속 세대는 고사하고 겨우 명맥만 잇고 있을 뿐이다. 사회적 현안마다 천주교의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정의평화위원회, 생태환경위원회, 노동사목위원회와 같이 교회 공식 기구에서 내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는 상황이다.

교회 공식 기구가 사회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나, 이러한 목소리가 무슨 무슨 위원회 위원장 주교나 위원회 이름으로 나가는 것과 더불어 풀뿌리 조직의 현장 연대와 병행될 때 보다 진정성 있게 목소리가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오늘날 천주교 사회운동의 풀뿌리, 그중에서도 운동의 미래라 할 천주교 청년 운동은 지리멸렬의 단계를 지나 소멸 단계에 이른 듯한 인상이다. 또한 정평위를 포함한 교회 공식 기구가 주도하는 현장 소식은 <지금여기>뿐 아니라 기존 교계 언론들도 신속하게 보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여기>는 어떻게 차별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이미지 제작 : ChatGPT 4o)
(이미지 제작 : ChatGPT 4o)

결국은 <지금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기사에 집중해야

<지금여기> 창간 초기는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용산 참사를 비롯한 4대강 사업 등 교회와 사회의 갈등 이슈가 유독 많은 시기였다. 기존 교계 언론과 달리 <지금여기>가 현장에 상주하면서 소식을 신속히 전했던 점 등이 초기 독자와 후원자를 모으는 데 주효했다. 또한 ‘교회 언론 비평’ 코너 등 <지금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기사들이 넘쳤던 시기이기도 했다. 나아가 기사의 평균 조회수가 가장 높았던 시기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기였다는 점도 당시의 <지금여기>에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한 듯 보인다.

지난 주말 ‘함께 걷는 예수의 길’이 주관하는 월례 미사 후에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창립 40주년-역사와 의미 그리고 평신도의 역할’을 주제로 대화마당이 열렸다. 70, 8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사회운동에 몸담았던 중장년들이 모여 위축된 천주교 사회운동에 어떤 희망이 있는지, 찾을 수는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요즘 자발적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평신도 찾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평신도들이 의외로 과거보다 많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존의 천주교 사회운동 그룹들이 새롭게 등장한 평신도들을 담아 낼 그릇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 반대로 그분들은 어떤 그릇에 담기고 싶어 하는가, 혹은 그릇에 담기고 싶어는 할까에 대한 질문이다. 질문을 잘 준비하고, 찾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이 모색될 것이라고 보았다.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지금여기>의 역할과도 연결해 표현해 볼 수 있겠다. ‘교회에 약이 되고, 세상에 밥이 되는' <지금여기>가 되려면 현장의 소리를 단순히 전하는 전달자 역할을 넘어 그릇에 해당하는 천주교 운동의 담론 만들기와, 의제를 선정하는 언론의 기능을 더욱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톨릭 독립 언론으로 <지금여기>가 생존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결국은 <지금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기사에 집중할 때 독자, 후원자들이 반응하게 될 것이고, 그럴 때 여전히 <지금여기>의 충분한 존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15주년을 지내며 가끔은 비틀거릴 때도 있지만 마음을 다잡아 본다.

경동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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