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가소비녀회 이나경 수녀
이 인터뷰 기획을 통해 회칙 '모든 형제들'이 제시하는 '길 위의 이방인'들에게 손 내미는 연대, ‘더 좋은 정치’를 위한 대화, '사회적 우애’, ‘봉사하는 종교’로 나아가는 삶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숨은 가톨릭 일꾼들을 소개합니다.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 ‘피정’은 용어부터 낯설다. 그럼에도 기후·생태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청년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돌봄 피정이 4년째 이어지고 있다.
교회에 속한 사회사목 활성가이건 시민단체 활동가이건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이상은 높아도 현실은 고달프다는 사실이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움직일 사람이 없다 보니 활동에 치이면서, 처음 시작할 때의 호기로운 열정은 어느새 다 타버리고 재가 된다.
이렇게 소진되기 쉬운 활동가들을 위해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의 JPIC(정의 평화 창조 보전) 담당 이나경 수녀(사도 요한)를 비롯한 수도자 세 명이 이번 돌봄 피정 '숲, 그리고 고요'를 준비했다. 이나경 수녀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고민한 결과가 활동가들을 위한 쉼과 돌봄 피정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청년 활동가들을 위한 피정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으며, 돌봄 피정 안에서 청년 활동가들은 무엇을 받아 안고 다시 삶으로 나아가는지, 이나경 수녀와 나눈 물음과 답변을 싣는다.
<지금여기> : 피정이 대략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는가?
이나경 수녀 : 2박3일의 느슨한 프로그램이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먼저 갖고, 그다음에 여러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만나기 때문에 이 공간을 안전하게 만드는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가 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 온전한 돌봄을 받기 위해 필요한 내용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꼭 갖는다. 그다음에 우리는 이걸 ‘체크인’이라 부르는데, 매일 아침 시간에 식사하고 모여 그날 하루에 나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는 간단한 나눔을 한다. 3일 일정 중에 둘째 날은 침묵 시간을 주로 갖는다. 피정 기간에는 핸드폰이나 전자기기도 잠시 내려놓도록 초대하고 있고, 나를 돌아보는 말랑말랑한 부드러운 공간과 시간으로 채우고 있다. 프로그램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많은 걸 담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피정 후반부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니 펼치고 싶은 꿈이나 비전을 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서로를 축복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금여기> : 처음 피정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4년간 진행하면서 얻은 보람이나 아쉬움이 있다면?
이나경 수녀 : 우리 수도회는 2013년 총회부터 고통받는 인간뿐만 아니라 피괴되어 가는 피조물의 절박함에 주목했다. 특별히 2021년부터 ‘통합생태적으로 대전환한다’는 총회 방향에 맞추어 회원 전체가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장의 연대도 더 많아지고 활동가들을 만나는 기회도 늘어났다. 2019년 이후는 기후위기 문제가 세계적으로 더 쟁점이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활동가들이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특히 청년 활동가들이 활동으로 삶의 균형을 잃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활동 수도자인 우리에게 활동과 관상의 조화가 중요하듯, 그들에게도 활동을 오래 지속하기 위한 삶의 균형이 중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에 쉼과 재충전의 시간과 더불어, 서로가 돌보는 자리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지향으로 시작했다. 2019년 영국에서 시작한 '멸종반란'(Extinction Rebellion)이란 단체 안에, 활동가들을 위한 ‘정서 지지’ 그룹이 활동하는 것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수도회 차원에서는 돌봄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현장에서의 연대를 넘어 함께 선의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들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확장한 범위에서의 연대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가진 영적, 공간적 자원이 있다면 필요한 이들과 나누자는 마음들이 모이면서 피정이 시작됐다.
피정을 하면서 우리도 많은 걸 배운다. 보통 피정을 하면 준비하는 측에서 시켜 준다는 인식들이 있는데, 이런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다. 서로가 만나 잘할 수 있는 걸 내어 놓고, 반대로 취약함이나 약함을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서로를 보듬어 안는 그런 시간과 여정 자체가 보람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금방 인원이 차서, 홍보도 많이 하지 못하고 마감했다. 또 정작 왔으면 하는 친구들은 활동이 바빠서 오지 못하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지금여기> : 신자가 아닌 활동가에게 다가간 계기가 무엇인지, 이들과의 피정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떠했는가?
이나경 수녀 :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 서로를 돌보는 인간종 한 사람으로 활동가들과 함께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활동가들과 ‘피정’이란 말속에 담긴 의미를 나누고 싶었기에 피정이란 단어를 일부러 사용했다. 종교와 관계없는 자리라고 알리긴 하지만, 간혹 피정이란 낯선 단어가 일부 참여자들에겐 장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활동가 피정은 활동가들과 함께 준비하고 진행하고자 했다.
첫 피정을 준비하면서 우선 활동가 몇 명을 피정이 열릴 수녀원 안으로 초대했다. 수녀원이란 낯선 공간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피정의 지향과 내용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 보니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보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피정의 경우는 '숲과 고요(침묵)'란 주제로 이루어져 수녀들만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동안은 활동가 친구들과 함께 기획부터 준비, 진행까지 함께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이 준비하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배우게 되기도 한다. 어느 날은 피정에 함께하는 친구가 큰 실내화는 남자, 작은 실내화는 여자로 구분한 신발장을 보고 여자도 발이 크고 남자도 발이 작을 수 있으니 여자 남자가 아닌 발 크기를 기준으로 재배치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런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세상을 보는 섬세한 눈을 가진 활동가들을 보면서 그들의 민감성과 감수성을 배우게 된다.
<지금여기> : 피정에서 만난 젊은 활동가들은 어떤 내적 상황에 처해 있는가, 또 그들에게 어떤 돌봄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느끼는가?
이나경 수녀 : 열정적으로 투신하고 열심히 활동하는 활동가가 많다. 그러나 외부의 많은 활동과 바쁜 일상 중에 간혹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소진되는 친구들도 보게 됐다. 지속적으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자기돌봄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나의 활동이 무엇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지 멈춤을 통해 여백을 갖는 고요한 내면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돌봄 피정에 왔던 친구들의 여러 피드백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통해, 나를 돌보는 쉼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는데 피정을 마치고 보니 침묵 안에서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는 친구,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 감당하는 삶의 무게와 괴로움에 대한 고민을 들으며 서로 닮아 있음에 용기를 얻었다는 친구, 일 없이 핸드폰과 노트북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친구,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친구들이었다. 맛있는 밥과 충분한 쉼의 시간 그리고 환대와 돌봄 속에 나와 우리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온전히 깨닫는 것이 중요함을 보게 된다.
<지금여기> : 한국 사회 시민사회운동에 연대하면서 생겨난 문제의식이 있는가? 이러한 연대활동에 가톨릭교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나경 수녀 : 과거 민주화운동이 활발했던 시기를 보면, 교회는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들을 품어 주는 최후의 피난처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머물 수 있는 안전한 공간과 같은 역할을 했는데, 지금도 그런 공간이 되어 주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그런 공간들이 다른 방식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갈 만한 곳이 없는 느낌이다. 세상의 여러 어려움 속에 실질적인 삶의 어려움과 더불어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고립되어 있고 어떻게 할 바를 모르는 단절된 상황에 처한 인상이다. 이 시기에 교회가 돌봄과 환대의 공간으로서 문을 열고 안전지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여기> : 돌봄 피정은 천주교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 양성에도 매우 필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천주교 활동가 대상의 피정을 기획해 볼 의향이 있는가?
이나경 수녀 : 현재까지는 가톨릭 활동가들만을 위한 피정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필요하다면 상황에 따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은 연대하면서 자연스럽게 구성된 자리였다. 이전에 (기자가) 천주교 활동가들을 위한 연수가 있었다고 했는데, 돌봄 피정은 연수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자리다. 본인이 원한다면 모를까 피정에서는 활동과 관련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멈춤을 통한 쉼의 자리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뭘 하기보단 오히려 뭘 안 하는 것을 선택한다. 온전히 본인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마침)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20여 년 전의 '천주교 사회사목 활성가 연수'가 떠올랐는데, 이제 교회 안에 평신도 활동가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젊은 활동가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4년간 열었던 그 연수회는 매년 참가자의 3분의 1이 새로운 얼굴로 채워졌다. 그만큼의 활동가들이 현장을 떠났다고 읽을 수도 있다.
일반 시민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사회참여 운동도 쟁점 중심으로 전개하다 보니 실제로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그동안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지 않았을까? 열정적인 활동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활동가 자신의 중심이 단단히 서 있어야 하고, 자기 내면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쉼의 공간을 청년 활동가 돌봄 피정이 제공하고 있다.
이번 돌봄 피정은 5월 24-26일 양평 도장리 내림의 집에서 진행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