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 극복과 화해를 위한 교회의 역할' 세미나 - 1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산하 평화나눔연구소 9주년을 맞아 '한반도 분단 극복과 화해를 위한 교회의 역할' 세미나를 마련했다.
세미나는 세 주제 발표에서 분단이 한국 사회 정치 지형, 사회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교회의 역할을 제시했다. 발표는 정욱식 대표(평화네트워크), 남경우 연구원(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전임연구원), 임을출 교수(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맡았다. 토론에는 서정배(전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장,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김종곤 교수(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도지인 교수(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최현아 연구원(한스자이델재단), 이보나(이문동 성당, 전 청년연합회) 씨가 나섰다.
'남남 갈등'보다 '남남 합의'에 주목해야
첫 주제 발표에서 정욱식 대표(평화네트워크)는 분단이 한국의 정치 지형과 구조, 사회와 문화에 침투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우리의 의식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폈다.
그는 한반도 분단이 정치 지형과 정책에 미치는 영향으로 ‘남남 갈등’에 주목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남 합의’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분단으로 인한 긴장과 위협은 남한 내 이념 갈등과 정치적 양극화를 유지시키고 있으며,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대립 구도 역시 격화하고 있다. 정 대표는 이런 상황은 한반도 평화 앞에 오히려 우리 사회가 반평화의 방향에 합의하도록 만들며, 이는 “분단 체제가 다양한 변형을 거쳐 고착화되고, 적대성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초당적 무언의 합의”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정치의 ‘남남 갈등’과 양극화에 초점을 맞추면, 대북, 외교 정책에 있어서 이 초당적 협력과 국민적 정서(합의)를 상당히 강조하게 된다면서, 엄연히 존재하고 중요한 문제지만 외면하고 있는 친미주의와 군사주의에 주목했다.
그는 친미주의는 역대 정권에서 미국에 맹목적이거나 두려워하는 입장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며, “미국과 마찰을 일으킴으로써 당할 불이익, 보수 진영의 정치적 공세에 대한 두려움 또는 중도와 진보 세력에 반미 혐의를 씌워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행태 둘 중 하나였다”고 덧붙였다.
정욱식 대표는 친미주의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군사주의에 대한 국민적 합의라고 강조했다. 이 무언의 합의는 모든 정권이 ‘힘에 의한 평화와 안보’를 추구하고 국민들은 군사 강국을 원하는 상황을 만든 결과, 2024년 한국은 세계 군사력 순위 5위에 올라섰다.
그는 이런 합의는 남북화해협력과 비핵화, 평화체제를 추구하면서 군사력 증강과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모순된 인식을 만들어 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군사 문제이고, 대북 정책의 목표는 (핵을 포함한) 군사적 위협을 줄이는 것이라면서, “군사력을 강화하는 한편, 북한과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 수 없을 때,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그런 방식으로는 남북 관계 회복과 한반도 평화를 도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대한 위기 앞, 우리 사회의 ‘선택적 변화’ 필요
"유사시 무력통일론 배제"
정욱식 대표는 “외부 침략을 억제하고, 유사시에 북한을 조선을 무력으로 점령해서 통일 달성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황당한 이야기”라고 일축하면서, “일반적 대처법으로 해결 불가능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선택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며, 이는 바로 “유사시 무력통일론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력 통일론은 북한의 상황과 미국의 판단이 달라진 상황에서 아무 실익이 없고, 병력과 국방비 감축, 모병제 도입, 군비 증강과 군사 훈련으로 생겨나는 막대한 탄소량 감축을 통해 남북관계와 한반도 위기, 다방면의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며, “묻지마식 억제력 강화는 유비무환을 넘어 어리석음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분단 트라우마, 서사, 체제 간 역동성
우리 안에 내재한 사건이 아닌 지금의 현상
“분단을 과거의 어떤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만, 분단은 모습을 바꿔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지금도 우리에게 상당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남건우 연구원은 '한반도 분단이 우리 사회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두 번째 주제 발표에서 한반도 분단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인문학적으로 들여다보고, ‘분단 트라우마’, ‘분단 서사’, ‘분단 체제’가 어떻게 우리 사회 구조와 문화, 인식 체계에서 작동하는지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분단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건이다. 개인의 트라우마와 구별되는 역사적 트라우마는 집단에 남겨진 무의식적 트라우마이며, 이는 삶을 구조하고 질서를 부여하던 사회의 질서, 삶을 지탱하는 근본 신념 체계를 와해시키고, 사회 구성원들의 결속이나 공동체 의식에 손상을 가한다.
이러한 역사적 트라우마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사건을 겪지 않은 후세대들도 유사한 증상이 발현된다는 점이다. 현재 세대는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았지만 일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그대로 전승된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 트라우마는 무의식적으로 사회에서 전승, 전이되고 어떤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분단이라는 역사 사건이 만드는 트라우마
남건우 연구원은 분단은 크게 이분법적 사고 방식, 적대성이라는 두 가지 큰 성격을 지닌다고 말하며, 분단 서사는 반공주의, 군사주의, 발전지상주의 등 다양한 양상으로 파생하면서, 무엇보다 이 서사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색출, 배제하는 기제로 작동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분단이 전쟁이라는 극단적 폭력에서 시작한 것인 만큼, 내 편 아니면 적이 되는 상황, 적이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가장 강력한 ‘내 편’인 국가에 반하는 것은 모두 적으로 취급하게 된다며,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에 대한 기억은 국가에 최고 권위를 부여한다. 여기서 생존을 위해서 국가에 반하는 세력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사회적 담론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이런 배제 논리는 한국이라는 국가, 사회뿐 아니라 소규모 집단에서도 그대로 반영되며, 국가의 의제에 반하면 '빨갱이'가 되는 것처럼 집단의 목적에 반하면 ‘우리’라는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우리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분단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일 수 있다. 뭔가가 왜곡되거나 한쪽 방향으로 흐르는 생각을 하는 경험을 만드는 분단은 하나의 현상이다.”
남 연구원은 분단 트라우마가 표현되는 모든 행동 양식을 ‘분단 서사’라고 부르고, “이는 사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의미를 사유하게 하고,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도록 유도한다. 그런 측면에서 ‘분단 서사’는 사회 규범, 일종의 사회 구조로 작동하며, 주요한 악영향은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을 색출해 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분단 트라우마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존 연구 결과를 보면, 현재 한국의 사회적 감정은 ‘분단 적대성’으로 가장 높게 드러나는 것이 혐오, 공포, 불안이라고 소개하고, 공포, 불안은 북한이 우리에게,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한국 사회에서 분단은 모든 것이 빨려들어가는 블랙홀이며, 북한에 대한 모든 인식, 느낌은 분단과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문제는 한쪽으로 치우친 분단 서사를 당연시하는 인식
남건우 연구원은 역사 사건을 기록하고 그 성격과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도 분단 서사가 작동하며, 역사를 분류하는 이들의 기준이 분단 서사적이라면 그 역사는 옳고 그름을 떠나 한쪽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것을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맥락에서 역사가 되지 못한 기억 역시 배제된다. 또 배제된 기억이 공적인 기억(기록)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적대적 배제가 일어나는데 그 예가 5.18민주화운동”이라고 말했다.
전쟁 불사론, 가장 비합리적이고 모순된 주장
토론에서 서정배 위원(전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장,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은 “친미주의와 군사주의는 한국전쟁 이후 오랜 한미 동맹의 전통적인 동맹 관계에서 국민들이 의심하기 어려운 전통적 사고 방식이 있다”면서도, 국민들의 안보 불안, 전시작전권 회수와 자주국방 실현 차원에서 판단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종곤 교수(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합리적 논리, 주장 중 하나가 전쟁 불사론인데, 전쟁이 끔찍하다면서도 북한을 없애기 위해서 전쟁도 불사한다는 모순을 겪고 있다”면서, “한국 사회에서 분단의 상처들은 적대적 에너지, 감정 에너지가 됐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를 질타하듯 상처를 적대적 에너지로 전환시켜 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안에 이분법적 사고와 냉전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게 만들었다는 것이 분단 체제의 가장 큰 맹점”이라며, “우리의 정치가 계속 보수화되는 것 또한 지난 20년 동안 겪어 왔던 불안과 공포가 우리 몸에 내재화하면서 진행된 것”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분단 서사의 논리들을 각자의 활동 영역에서 고도화하는 실체를 반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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