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몬드라곤 기업의 모범 사례

지금까지 회사원과 사회교리 실천에 대해 5편의 칼럼을 썼다. 두 편은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어떤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사회교리 실천에 도움이 될지, 또한 사원으로 생활하며 사회교리 실천에 도움이 되는 비폭력 대화에 대해 썼다. 세 편은 과장, 부장 시절에 중요한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을 실천하기 위한 평화 워크숍과 팀장, 임원으로서 사회교리를 실천하는 리더십 그리고 퇴직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썼다. 현대를 살아가는 회사원이 회사 안에서 최선을 다해 신앙인으로서 사회교리를 실천하는 방법에 대한 글들이었다. 그런데 회사는 사회교리를 실천하는 장으로서 최선의 선택일까? 회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PR컨설팅 기업인 에델만의 ‘2024년 에델만 신뢰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26개국 국민들의 기업, 정부, 미디어, NGO에 대한 평균 신뢰도 중에, 기업에 대한 국민 신뢰도(59퍼센트)가 정부 영역에 대한 신뢰도(50퍼센트)보다 높다. 한국도 기업에 대한 신뢰도(45퍼센트)가 정부에 대한 신뢰도(41퍼센트)를 앞질렀다. 2020년에는 정부 신뢰도가 기업에 대한 신뢰도보다 10퍼센트포인트 더 높았다. 2021년 처음으로 역전하더니 이제는 더 멀리 따돌렸다. 기업이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다양한 홍보 활동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기업을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고 있는 오너의 전횡으로 인해 기업은 아직도 감시 대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전문경영인들이 중심이 된 이사회로 회사를 경영하면 오너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한양행과 풀무원이 그 사례다. 창업자의 고귀한 결단으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루어졌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최근 <한겨레> 신문의 보도(곽정수 기자, 2024.4.2.)는 이 같은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유한의 경영권 사유화 논란은 재벌이 아닌 소유-경영 분리 기업도 지배구조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 준다. 주인 없는 회사도 전문경영인이 가짜 주인 행세를 할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지배주주가 있는 재벌, 소유분산기업, 소유-경영 분리기업 모두 지배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이사회의 감시·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게 중요하다.” 이사회에 아무리 사외 이사 수가 많아져도 회사의 이익과 배치되는 소수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무엇이 옳은 길일까?

신앙인들은 올바른 판단을 위해 회사의 소유와 경영에 대해 사회교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공동선과 필연적 관계가 명백한 사적 소유권은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기능이 있음을 인정하기를 요구한다.” 설령 자신이 설립하고 평생을 바쳐 일구어 낸 회사라 하더라도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외적 사물을 자기 사유물만이 아니라 공유물로도 여겨야 하며, 그러한 의식에서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회사를 구성하는 인적 요소를 제외하면 모두 재화라고 말할 수 있고 이는 재화의 보편 목적에 대한 사회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재화가 창조주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동선을 위하여 이 재화를 사용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물질 재화는 개인과 민족을 성장시키는 유용한 도구로서 올바로 기능할 수 있다.” 사회교리의 내용은 동의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이런 회사 형태를 찾기는 쉽지 않다.

스페인 기업 몬드라곤은 거대한 규모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사회교리에 충실한 여러 원칙을 지키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이들이 빈곤 종식, 건강과 복지, 양질의 교육/일자리와 경제 성장,  불평등 감소, 책임 있는 생산과 소비, 환경, 에너지, 기후변화 대응, 지속 가능한 도시와 지역사회, 평화, 정의, 견고한 제도, 목표 달성을 위한 동맹 등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몬드라곤 홈페이지)
스페인 기업 몬드라곤은 거대한 규모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사회교리에 충실한 여러 원칙을 지키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이들이 빈곤 종식, 건강과 복지, 양질의 교육/일자리와 경제 성장, 불평등 감소, 책임 있는 생산과 소비, 환경, 에너지, 기후변화 대응, 지속 가능한 도시와 지역사회, 평화, 정의, 견고한 제도, 목표 달성을 위한 동맹 등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몬드라곤 홈페이지)

사회교리를 실천하며 경제 활동을 영위하는 것은 꿈 같은 일일까? 그렇지 않다. 1956년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 몬드라곤에서 설립해 2022년 기준(몬드라곤 Annual report)으로 81개 협동조합과 약 7만 명의 고용을 책임지는 스페인 10위권(매출액 기준 약 15조 6000억 원) 기업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이 모범 사례다. 몬드라곤은 금융, 제조, 유통, 지식산업(대학 포함) 분야에 진출해 있고 12개의 R&D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어느 대기업 못지않게 거대한 규모를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회교리에 충실한 여러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인 해고 없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조합원 재배치를 81개 협동조합이 모두 수용하고 있다. 이 같은 재배치를 지원하기 위해 의료보험과 연금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라군아로 협동조합에서 지원금을 지급한다. 연대성의 원리를 충실하게 실현하고 있는 이익분배에 대한 원칙도 있다. 10퍼센트는 지역 사회에 기부하고 45퍼센트는 내부 유보하며 45퍼센트 이내에서 노동 배당을 하되 의무적으로 출자금으로 전환한다. 이사회와 위원회의 구성원을 선출하거나 조합의 규칙을 정할 때, 1인 1표를 실천하는 민주적인 운영이 또 하나의 중요한 원칙이다. 자본은 필요한 자원이지만 노동에 봉사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출자금에 대해 배당을 할 때에도 이자를 보상한다는 의미 정도이지 이익을 규모에 따라 출자자에게 성과 배당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자본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종속적인 도구라고 여기고 있다.

회사도 공동선과 연대성의 원리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례가 몬드라곤이다. 이러한 성공의 출발에는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2016년 가경자로 선포되어 시성 청원 중)가 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1940년 몬드라곤의 성 요한세례자 성당으로 부임한 이후, 청소년들을 위한 직업기술학교를 열었다. 1956년 제자들이 협동조합을 창업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1959년 금융 지원 없이는 기업이 성장할 수 없다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노동인민금고 설립을 추진했는데, 초기에는 창업자인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해 반대했다. 노동인민금고는 몬드라곤 협동조합그룹이 성장하는 데 큰 버팀목이 되었고 이후 라군아로라고 하는 사회보장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으로 발전했다. 이익이 크게 늘고 여러 사업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등 제자들이 세운 이상이 실현되어 가도 호세 마리아 신부는 이익을 나타내는 숫자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노동, 절제, 커뮤니티, 연대’를 강조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 깊은 내적 성찰과 반성에 기초하면서도 인간에 대해 무조건 낙관적이거나 낭만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진정 현실적인 대안들을 차곡차곡 기획하고 만들고 쌓아 갔다.("몬드라곤은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잡았나", 착한책가게, 2016.) 호세 마리아 신부야말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생활하며 사회교리를 실천하는, 현대의 성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회사원과 사회교리 실천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야기가 협동조합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생활인으로서 생계를 위한 직업을 선택할 때, 쉽게 찾게 되는 회사라는 형태보다 어렵지만 소중한 가치가 있는 협동조합의 길이 사회교리를 실천하는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는 두 달 동안 스페인 순례길을 걸을 계획이다. 세 번째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이지만 이번에는 호세 마리아 신부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도 거쳐 가고 몬드라곤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빌바오도 포함되어 있어 여러 가지 의미가 깊다. 기회가 된다면 몬드라곤 대학교도 방문하여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찾고 싶다.   

조은기(아우구스티노)

80년대 가톨릭학생회와 야학에서 20대를 보내고, 33년 동안 대기업, 중견기업, 소기업에서 사원, 대리, 과장, 부장을 거쳐 팀장, 임원, 대표이사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는 은퇴하여 국내외 다양한 순례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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