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충렬 신부

"첫째, 가난한 사람을 찾아간다. 둘째, 가난한 사람의 공동체 형성을 지원한다. 셋째, 가난한 지역별로 교육과 홍보를 실천한다. 넷째 재개발 철거 현장에 대한 대책 활동을 한다. 다섯째, 초본당적 차원에서 정책적이고 환경적 대안을 마련해 제시한다. 여섯째, 가난한 사람의 영성을 계발한다. 일곱째, 전문적 연구로 사회 정책과 빈민사목 방침을 마련한다."

1987년 4월 28일 서울대교구가 도시빈민사목위원회(현 빈민사목위원회)를 설립할 당시 정한 활동 방향이다.

빈민사목이 공식 출발하기 전, 모태가 된 정일우 신부, 제정구 선생은 1973년 청계천과 양평동 판자촌에서 사목한 당시 모습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활동과 사목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전, 한국전쟁 직후에는 빈민 구제 성격이 강했다면, 1970년대 중반부터는 가난한 사람들이 운동 당사자가 되기 시작했다.

빈민사목위원장 나충렬 신부는 당시 빈민운동의 원칙은 “가난한 사람을 대상으로 삼아 물질을 끌어들이거나 돈 중심으로 활동하지 않으며, 그냥 주민 속에서 산다. 이웃으로 살되 필요로 할 때 앞장선다. 주민 스스로 하는 일에 함께하고 거든다”였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난한 사람이 주인이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자촌 거주자들 그리고 올림픽을 앞둔 1987년 명동 성당 들머리에 천막 친 철거민들, 그 뒤로 무수한 삶들이 쫓겨나던 시절의 가난은 명확했고, 해야 할 일도 그랬다. 그것은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의 시작이기도 했으며, 권리를 무참히 빼앗긴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왜 가난한가, 빼앗긴 권리가 무엇인가,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가”를 알려 주는 것, 그 곁에 공소를 꾸리고 탁아소를 운영하며 함께 정착하고 존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빼앗긴 이들이 자리잡았던 공간의 풍경과 선교 본당(성당)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졌다. 먼저 정착해 살았던 이들은 나이 들었고, 민간 아파트와 빌라촌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주민들이 유입했다. 지역 자활, 실업자 일자리 상담, 공부방 운영을 하던 자리는 하나씩 비워지고 이제 이 달라진 곳에서 무엇을 해 나가야 할 것인가, 달라진 지역 안에서 어떻게 빈민사목을 해야 할지가 과제이자 고민이라고 나충렬 신부는 말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충렬 신부 ⓒ정현진 기자<br>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충렬 신부 ⓒ정현진 기자

과거를 경험한 이들 역시 무엇을 시도하기에 앞서 “예전 같지 않다”는 마음을 먼저 겪는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기보다는 바뀐 환경과 현실이 만든 벽이 높고, 과거 경험에서 비롯한 기준이 높기도 하다. “20년이 지난 지금, 여기에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사제로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도 고민이다. 가난과 함께하는 사제의 의미, 역할은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할까.

나충렬 신부는 “다시 현장”을 말했다. 이른바 이동하는, 현장 중심의 ‘천막 사목’이다.

“한 곳에 안주하고 정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현장을 찾아서, 유목을 해야 하는데, 농경 문화인처럼 살려고 해요. 양을 찾으러 나가야 하고, 풀이 많은 곳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머무르거나 대외적인 것에 치중하게 된다면서, 있던 지역과 조직, 하던 일들을 벗어나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선교 본당을 베이스캠프 삼아 여전히 서울 곳곳에 있는 쪽방촌, 산동네, 노숙인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선교 본당 같은 거점들을 만들자는 것보다 현장 곳곳을 찾아가고 주민들을 만나면서 함께하는 기반을 만들고, 그러면서 당사자들이 활동가, 스스로 주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고, 공동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빈민사목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는 게 나 신부의 생각이다.

가난한 이들은 형태를 달리해 곳곳에서 생겨나고, 본당은 그런 지역마다 있다. 그런 맥락에서 나 신부는 본당과 본당의 조직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포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빈민사목위원회가 아니라 본당 중심으로

“빈민사목의 정체성과 뚜렷한 목적의식을 위해서라도 빈민사목위원회는 없어져야 해요. 실질적이고 일상적인 ‘빈민사목’은 각 본당을 중심으로 지역별로 이뤄지는 게 맞습니다. 그렇게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지금 주어진 교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신부는 “각 본당에는 많은 조직과 단체가 있고, ‘자선비’ 명목의 예산도 있다. 가장 좋은 것은 교회의 세포와 같은 지역구, 반장 조직을 통해 본당 지역 주민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초대하고, 함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본당 사제의 마인드도 중요하지만, 가난,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신자들이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열심한 신자들 중에서도 왜 쓸데없이 사람들에게 밥을 공짜로 줘서 버릇을 나쁘게 하느냐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말을 신부 앞에서 한다”고 안타까워하며 교회 공동체 내 인식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마련한 사회주택 축복식. 기증을 받거나 교회가 가진 유휴 부동산을 주거 약자를 위해 지원한다. (사진 제공 = 빈민사목위원회)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마련한 사회주택 축복식. 기증을 받거나 교회가 가진 유휴 부동산을 주거 약자를 위해 지원한다. (사진 제공 = 빈민사목위원회)

신부들이 “와서 보시오”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이 사제 앞으로 오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어떤 사목을 하든 정체성과 목적의식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신부들이 움직여야 한다"는 나충렬 신부는 “신부들이 움직이는 시스템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면, 각 본당이 선교 본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부가 아니면 누가 현장을 살 수 있는가”라며,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와서 보라’는 것은 머리로만이 아니라 직접 행동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하는 내내 나충렬 신부의 입에서는 다녀야 할 동네 이름, 관련 단체, 지나치면서 봤던 거리의 장면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주거 취약, 홈리스, 무연고자 장례, 보호종료아동, 최근에는 전세 사기 피해 문제 등 현재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연대하는 일들이기도 하다.

그는 연대는 “우리 교회가 세상 안에 살면서 사회와 함께하기 위한 것이고, 교회 혼자 할 역량도 없을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끝나고 말 문제들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서, “시민사회와 함께한다는 것은 세상과 함께 연대할 힘을 모으고, 교회가 가진 힘을 더함으로써 더 큰 시너지를 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빈민사목은 ‘위원회’만의 일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빈곤’은 경제 문제만이 아니며, 그 형태와 이유, 존재는 다양하고 구체적이며 넓게 흩어져 있다. 그것은 ‘착취’와 ‘폭력’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빈곤’이 특수한 어떤 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문제라면 이에 대응하는 형태도 ‘위원회’가 아니라 교구, 나아가 한국 교회의 사목 정책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교회가 정책으로 제시해야 해요. 그 이유는 교회 구조상 결정권자인 교구장의 의지가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대림 즈음에 사목교서가 발표되는데, 상당히 매번 추상적이에요. 더 구체적인 방침이 제시되었으면 합니다. 위원회만의 행동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데, 정작 안에서는 울림이 없어요. 물론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간접적으로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게 숫자거든요. 참여율.”

홈리스 지원과 연대, 무연고자 장례 지원 등도 빈민사목위원회가 함께하는 주요 활동이다. 홈리스 추모 기간에 함께한 빈민사목위원회 나승구 신부. ⓒ정현진 기자
홈리스 지원과 연대, 무연고자 장례 지원 등도 빈민사목위원회가 함께하는 주요 활동이다. 홈리스 추모 기간에 함께한 빈민사목위원회 나승구 신부. ⓒ정현진 기자

교회 내에 있는 공식적 사목국(사회사목국)이 하는 일에 대한 홍보물이 본당에서 외면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나 신부는 세포처럼 본당 조직들이 사제들의 관심과 연대를 통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꿈꾼다.

그럼에도 지금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위해서는 눈 앞의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 먼저 빈민사목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교육’의 방식을 고민하고 진행할 예정이다. 또 이슈에 대한 시의적절한 대응, 주거권 권리를 함께 지키기 위한 활동도 이어 갈 것이며, 특히 어려운 청년들을 위한 활동을 확대 편성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나충렬 신부는 인터뷰를 할 즈음 읽고 있는 책을 통해 주거권, 사회주택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했다며 소개했다. ‘임대주택’이라는 획일화되고 구분 짓는 주거 공간, 심지어 ‘낙인’이 되는 한국 사회와 달리, 프랑스는 정부와 기업, 지자체가 함께 사회주택에서도 주거권을 입체적이고 섬세하게 보장하는 사례를 접한 그는 “부럽다”면서, “집 없는 이들, 쪽방촌에 사는 이들을 ‘게으르다’고 규정하는 인식을 바꾸는 것부터, 국민 대다수가 사회주택으로 주거를 보장받으면서 삶의 질을 충족할 수 있는 사회를 바라보며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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