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지구의 날과 겹친 올해 세계군축행동의 날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동시에 올해 4월 22일은 세계군축행동의 날(GDAMS)이다. ‘골든 크로스’처럼 지구 환경과 평화 군축의 날이 올해는 겹쳤다. 지구의 날 행사의 정점은 저녁 8시부터 10분간 전국에서 동시에 조명을 끄는 소등 행사다. 이에 비해 세계군축행동의 날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오전 11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이다. 

우연 같지만 필연을 내포한 지구 환경과 평화 군축의 연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최근 ‘기후평화’란 용어가 자주 언급된다. 기후평화에 대해 평화단체는 ‘기후위기가 새로운 평화의 위협 요인이 되었다’고 이해하는 반면 기후환경단체는 ‘평화가 없으면 기후위기가 더 악화된다’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의 사례로는 기후위기로 국가 자체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투발루 같은 태평양 섬나라, 그리고 늘어나는 기후재단과 난민 등이다. 후자의 사례로는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무력 충돌 그리고 한반도 주변에서는 군사훈련으로 인해 과도하게 생겨나는 이산화탄소 문제를 들 수 있다. 

두 관점 모두 평화운동과 기후환경운동이 연계 협력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야 기후와 평화를 둘 다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최근 평화와 기후환경운동에서 동시에 주장하는 ‘군사비를 축소해서 기후위기 극복하는 재원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용산에서 오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내 평화단체는 “모두를 위협하는 군사비, 1초에 1억 너무 많아! 사람과 지구를 위해 지금 당장 군비 축소!"를 주장하였다. 

올해 4월 22일 세계군축행동의 날을 맞아 국내 평화단체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출처 = 참여연대) 
올해 4월 22일 세계군축행동의 날을 맞아 국내 평화단체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출처 = 참여연대) 

지구의 날은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일어난 해상 기름 유출 사고를 계기로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 아래 1970년 4월 22일 시작한 민간 주도의 세계 기념일이다. 지구 시간(Earth Hour)이란 이름의 소등 행사는 2007년 호주 시드니에서 시작하여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환경 캠페인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부터 지구의 날을 전후한 일주일을 기후변화 주간으로 지정, 기후변화 심각성을 인식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범국민 실천 운동이 매년 펼쳐 왔다. 환경부는 올해도 지구의 날 당일인 22일부터 28일까지 '제16회 기후변화 주간'을 운영한다. 이번 기후변화 주간은 22일 오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개막식으로 시작해 △미래세대 기후·환경 영상 공모 발표전 △탄소중립 명사 강연회 △지자체별 기념 행사로 꾸몄다.

지구의 날은 시민 주도의 민간 행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정부도 적극 참여하는 공공 행사로 자리 잡았다. 지구의 날의 취지는 ‘기후변화와 자연파괴의 심각성을 알리자’는 데 있다. 그러나 정작 왜 수많은 기후캠페인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지적이 별로 안 보인다. 따라서 기후위기 해결에 큰 책임을 지닌 정부와 기업도 큰 ‘부담 없이’ 참여하고 있다. 이른바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라고 하는 ‘녹색분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정부는 지구의 날 이외에 6월 5일을 세계 환경의 날로 기념하고 시민단체 및 기업과 함께 다양한 행사를 조직한다. 이 세계 환경의 날은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 인간환경회의(UNCHE)를 계기로 제정되었다. 또 이 회의를 계기로 1973년 유엔환경계획(UNEP)이 만들어졌고 이후 1992년 리우 환경과개발회의(UNCED)로 이어졌다. 유엔은 이후 2002년 ‘리우+10’ 그리고 2012년 ‘리우+20’ 회의 과정을 거쳐 2015년 유엔 총회에서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한 기후변화(13번)를 포함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7개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4월 22일 지구의 날이 민간 주도로 시작한 반면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은 관 주도의 행사지만 현재는 민관이 함께 추진하는 연례 행사로 자리 잡았다. 

4월 22일 저녁 8시부터 10분간 불을 끄고 지구를 밝히는 전국 소등행사 웹자보. (이미지 출처 = 대한민국 환경부)
4월 22일 저녁 8시부터 10분간 불을 끄고 지구를 밝히는 전국 소등행사 웹자보. (이미지 출처 = 대한민국 환경부)

기후위기는 악화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지난 4.10 총선에서 기후위기를 앞세운 녹색정의당은 3퍼센트 득표에 실패해서 원내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에 대해 한국의 현실 정치에서 ‘기후정의’ 의제는 시기상조이고 ‘기후평화’는 언감생심이라고 자조적인 푸념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주변의 적지 않은 유권자는 기후에 관심이 있지만 ‘사회 정의’ 또는 ‘사법 정의’가 더 심각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투표 결과는 녹색정의당과 이 당에 투표한 유권자에게 단체에 큰 교훈을 준다. 기후를 기후 자체가 아니라 대다수 유권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공정과 상식’보다 구체적으로 ‘민생과 안전’과 연계되어야 현실 정치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록 극소수의 활동가가 참여한 기자회견이었고, 주류 언론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지만 4월 22일 세계군축행동의 날의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다가온다. 올해 세계군축행동의 날 캠페인은 4월 12일부터 5월 15일까지 한국을 비롯하여 필리핀,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전 세계 각지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 국제캠페인은 2014년 국제평화사무국(IPB) 주도로 시작했는데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세계 군사비 지출 보고서 발표 날에 맞춰 각국의 사정에 따라 약 한 달간 진행한다. 캠페인 제목이 보여 주듯이 모든 국가가 군사비를 줄여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것을 촉구하는 것이 취지다. 

특히 올해는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보복성 집단학살에 남북한이 만든 살상무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열리고 있다. 북한 등 주변 국가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자위 차원에서 시작한 한국의 방위 산업은 군사화된 자본주의 시장 체제 속에서 이제 강대국과 경쟁할 수 있는 지위에 도달하였다. 즉 해외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방위 산업에서 일자리 창출과 국내총생산(GDP) 상승으로 이어지는 군산 복합체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 정치에서 여당과 야당, 이른바 보수, 중도와 진보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국민 대다수가 ‘힘에 의한 평화’ 논리에 압도되어 그러한 현상을 용인 또는 지지하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한국에서 우리의 노동력과 기술로 만든 무기가 외국에서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 살상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실에서 군사비 감축 즉 평화단체가 주장해 온 ‘비폭력 수단을 통한 평화’ 또는 ‘정의로운 평화’ 주장은 공허하게 들린다. 대중적인 시민운동을 꿈꾸는 평화운동 단체의 고민과 딜레마가 깊어진다. 이 지점에서 종교 평화운동 또는 종교 지도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극소수 평화단체가 외롭게 수행해 온 예언자적 역할에 종교단체 특히 가톨릭교회가 더 적극 동참할 때가 되었다.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성명서와 자료가 있다. 그러나 ‘군축’과 ‘핵무기’를 검색어로 지정하면 교황청과 미국 주교단, 일본 주교단의 문헌만 나온다. 나의 무지이기를 바라지만 정작 한국 주교단에서 ‘군축’과 ‘핵무기’에 대해 공식 발간한 것이 거의 없다. 생태환경위원회는 ‘핵(원자력)발전소’에 대해 여러 번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핵무기’와 ‘핵군축’에 대해서는 마치 금기어처럼 침묵해 왔다. 정의평화위원회는 인권 문제 등 정의 관련 또는 사회적 평화 관련 성명서는 많지만, 국방비와 군비 축소 관련 명시적 발언이 없다. ‘평화’란 단어로 검색해도 대부분이 가톨릭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문 소개와 우크라이나와 중동 평화를 위한 기도 촉구 관련이 대부분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군축과 비핵화 문제는 외국의 일이거나 정부에 맡겨 두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현재 프란치스코 교종뿐만 아니라 이전 교종도 반복해서 강조해 온 핵 군축 포함 군비 축소 문제가 한국에서는 예외가 되어 왔다. 현재 세계 경제와 군사력에서 ‘선진국’ 위치에 있는 한국의 국제적 역할과 책임을 고려할 때 이제 주교회의는 구름 위의 추상적 평화에서 땅 위로 내려와 더 많은 예언자적 발언과 실천을 할 때가 되었다. 

내년부터는 한국의 평화군축행동의 날을 4월 22일로 고정했으면 좋겠다. ‘골든 크로스’가 올해 우연이 아니라 내년에도 이어진다면 지구의 날 10분 소등 행사 때 어둠 속에서 기후재난뿐만 아니라 전기가 끊어진 상황에서 살아가야 하는 전쟁 난민의 고통을 공감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가톨릭 주교회의 산하 ‘정의평화위원회’와 ‘생태환경위원회’ 그리고 ‘민족화해위원회’가 내년 4월 22일 공동으로 ‘기후 정의’와 ‘기후 평화’를 ‘한반도 평화’의 관점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실천하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성훈(안셀모)

아시아시민사회지속가능발전목표(SDGs) 파트너십 대표로 팍스크리스티코리아(PCK) 창립 및 제3기 상임대표(2024-25). 
서울대가톨릭학생회(울톨릭) 활동 경험을 계기로 홍콩(1988-91), 제네바(1997-04), 방콕(2005-08)에서 국제 가톨릭 및 아시아 인권 NGO에서 일하고 2008년 귀국. 약 30년간 인권과 민주주의, 지속가능발전과 개발협력 및 평화 분야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해 왔다. 최근에는 천주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으로 평화와 기후 및 SDGs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과 지식을 나누기 위해 경희대, 아주대, 성공회대 대학원에서 강의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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