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포커스 세미나 2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5일 포커스 세미나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긴장 상황을 인식하는 데 바로잡아야 할 개념들을 살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세미나는 이대훈 소장(피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이 '동북아 진영 대결과 전쟁 위기 예방'을, 백장현 운영위원장(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이 '왜 다시 민족주의인가'를 발제했다. 토론에는 남덕희 신부(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이규수 박사(성신여대 특임교원), 고민정(이화여대 북한학,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번역팀) 씨가 나섰다.
이대훈 소장의 '동북아 진영 대결과 전쟁 위기 예방'에 이어 백장현 위원장의 '왜 다시 민족주의인가' 발제 내용과 토론을 싣는다.
세미나 1 '전쟁 예방은 다양한 고충을 식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로가기
민족주의는 낡고, 폐쇄적이며, 억압적인가?
민족주의는 언제부터, 왜 왜곡되었나?
우리는 그동안 ‘한민족’임을 강조해 왔고, 남북 분단 상황에서 통일은 한민족의 다시 하나됨의 과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남북 간 관계 악화로 민족주의는 정치적 공방 속에서 왜곡되고, 축소, 폄하돼 왔다.
백장현 위원장은 발제에서 민족주의를 둘러싼 논쟁의 역사를 통해, 민족주의를 민족 정서, 국가주의, 순혈주의와 구분 지었다. 또 민족주의의 속성인 자주와 자결을 강조하고, “민족주의의 원천은 타인에 대한 배척, 억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협력과 교류를 통해 적대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면서, 민족주의를 통한 평화와 번영의 길을 모색했다.
그에 따르면 민족주의는 1990년대부터 시작한 세계화 열풍, 국내로는 이른바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한 세력의 담론으로 본질에서 멀어졌다.
백 위원장은 ‘탈민족주의자’들의 민족주의 비판은 민족 정서, 국가주의, 순혈주의를 제대로 구분 짓지 않고 뒤섞여 놓은 입장이며, 민족주의는 외세 의존적인 사대주의와 대척점에 있고, 민족의 자주, 자결이 기준이자 본질적 속성이라고 설명했다.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상으로서, 민족 구성원 간 연대 의식과 수호 의식, 민족 공동체의 발전과 번영을 추구하는 이념”이라는 정수일의 개념을 빌려 온 그는 “민족의 이익과 민족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하려면 중장기적 시야를 요구하기 때문에 민족주의는 이성적이고 전략적 차원의 사상”이라고 말했다. 이는 민족 국가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국가 간 연대와 협력을 추구하는 국제주의와 상호 보완적인데, 민족주의가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고 민족 공동체의 발전을 이성적, 전략적으로 추구한다면 국제주의 정신과 호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이성적’이라는 측면에서 민족 감정, 정서와 구분해야 한다. 자칫 제국주의, 군국주의로 극단화 될 수 있는 국가주의(반공으로 대표되는 박정희의 민족주의)와도 다르며, 민족은 혈통을 기반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혈통주의, 인종주의와도 다르다. 혈통주의와 관련해 민족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는 순혈이냐 혼혈이냐가 아니라 생활 문화나 의식 구조에서 얼마나 동질성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민족주의 첫 출발은 민족 정서와 구분 짓기
민족의 자존과 자립 위해 국제 협력과 연대가 필수
백장현 위원장은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를 이해하는 첫 출발은 민족주의와 민족 정서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반도에서는 이 둘 사이에 어긋나고 충돌하는 사건이 수시로 벌어졌다. 대표적이고 치명적인 것이 1945년 말의 신탁통치 찬반 논쟁과 그로 인한 일련의 사태들”이라고 말했다.
“민족주의 관점에서 볼 때 민족주의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민족 통합이라고 본다면, 민족 화해라는 것은 단순히 남북한 주민 간의 화해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내부 문제에서, 좌우 양극단을 제어 하면서 통합을 이끌어 가는 것이 정치 발전, 평화 번영으로 가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다.”
백 위원장은 “근대가 탄생한 이후 이 세계는 민족 국가의 시대다. 세계화가 진척되지만 민족 국가 단위로 영위되는 인간의 삶이 바뀌지는 않았다. 유엔 헌장도 민족 국가의 주권과 민족 자결을 천명한다”며, “다만 민족주의가 최선의 사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어떤 주의도 최선일 수는 없다. 운영하는 주체에 따라서도 그 성격이 달라진다. 민족주의가 현실적 중요성을 갖는 환경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깊은 연구와 바른 이해가 선용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 민족주의는 평화, 통일, 번영으로 가는 데 그야말로 필수적이고 불가피한 기제다. 민족주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통일이라는 것 자체는 논리적 근거가 없어진다”며, “민족주의를 이해하고 자주적 태도를 바로 세울 때 국제적 연대와 협력도 제대로 할 수 있다. 비정규직 차별 문제, 소수 집단의 인권 문제 등 내부 문제들도 민족주의와 같이 갈 때 해결이 용이하다”고 강조했다.
“평화는 평화주의가 아닙니다. 평화는 비겁하고 게으른 삶의 모습을 감추는 일이 아니라 가장 고귀하고 보편적인 삶의 가치 즉 진리 정의 자유와 사랑을 선포하는 일입니다.”(교종 바오로6세 첫 평화의 날 담화 중)
토론에서 남덕희 신부는 앞선 두 발제에 대해 신앙과 영성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갈등과 분쟁 예방이라는 말이 새롭고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전쟁의 결과는 파괴와 공멸이 분명한데도 이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이들을 보는 상황에서, 예방을 위한 주도권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1968년부터 시작한 평화의 날 담화문은 평화를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공통 지향으로 두고 있다면서, “교회의 가르침에서 평화에 대한 담론 역시, 갈등 예방을 위한 주된 요소를 담고 있다”고 확인했다.
민족주의 발제에 대해서 남 신부는 “오랜 시간 다른 체제와 이념 속에서 분단된 남과 북의 민족주의는 어쩌면 반쪽짜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한쪽의 민족주의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민족주의에 대한 극단적 담론이나 민족 개념을 배제하는 탈민족적 담론은 민족 공동체의 분열을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규수 교수는 최근 북한의 민족 개념 폐기와 두 국가론 제기 상황을 언급하고, “이에 대한 정보의 객관성, 북한 내부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남북 간의 적대 심화와 양대 진영의 대결 속에서 민족 개념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모험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제기했다.
그는 “그런 맥락에서 다양한 경로의 정보를 확보할 필요가 있고, 언론 보도나 공식 문건 외에 객관적 사실을 입증할 자료 확보를 선택해야 한다”며 문제를 접근하는 태도의 문제를 말하고, “근현대 문명과 지구화의 근원적 폭력성을 성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적 의제, 규범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긴 호흡으로 시대 과제에 부응하는 인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역사적 좌절이 반복되지만 새로운 형태로 나아가며, 섣부른 좌절은 금물이다. 역사적 교훈을 통해서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세워야 한다. 이것이 내제적 발전”이라며, “이는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기 위한 자세이자, 한국 사회의 주체적 발전을 추구하는 시각, 한반도 화해 협력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역사 인식”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고민정 씨는 북한학을 전공하고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번역팀에서 활동하는 청년으로, 여성이자 수술실 간호사라는 정체성을 통해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먼저 군축과 관련해, “군비에 들어가는 비용은 너무 아깝다. 그 무엇도 재생산하지 못하며, 기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국제관계에도 부정적인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군사 산업은 징병제와 맞물려 군사주의 문화, 여성 배제로 인한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고 씨는 이런 문화는 두려움을 만들고, 평화로 가기 위한 길고 복잡한 과정보다는 폭력이라는 단순하고 비가역적 선택지를 고르게 만든다며, 그 대안으로 수술실과 병원의 안전 문화, 방법론을 들었다.
그는 수술실에서는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긴 시간, 많은 의료진이 헌신하고, 의료진뿐 아니라 병원이라는 인프라 전체가 작동한다며, “군비 축소라는 상당히 복잡하고 큰 문제에 대해서도 큰 작업, 다양한 인력, 장시간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병원의 안전 문화에는 환자들에게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사전 예방하는 시스템이 갖춰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개인을 비난하거나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기”가 있다며, “담당자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 쉽지만, 그로 인해 그 한 사람은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말할 수 없게 되고, 예방 조치에 대해 논의할 여지가 사라진다.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문제로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고민정 씨는 군축 문제에서도 개인을 비난하지 않고, 함께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누가 주체가 되어야 하느냐, 언제 어떻게 군축이 주요 의제가 될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며, “평화로 가는 길에 나서고, 주체가 될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민족주의와 관련해서도 그는 “한국 사람, 북한학을 공부한 사람, 간호사, 여성, 청년 등 여러 정체성 가운데 어느 하나만이 나의 정체성이기는 어렵다. 이렇게 다양하고 변화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볼 때, 민족주의가 한 의제로 통일을 이끌어 내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통일을 이야기하면서 하나가 된다면 자원과 인력, 선진기술이 합쳐져 더 부강해질 수 있다는 담론은 상당히 위험한 것 같다. 우리를 더 잘 살게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지만, 통일 과정에서 차이로 비롯되는 문제는 반드시 생겨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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