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이태원 특별법 심의 조차 요원
가족들, "300일이 아직도 부족한 시간인가"

빗속에서 진행된 둘째 날 삼보일배. 앞에는 유가족과 종교계 대표들이 뒤에는 시민들이 따랐다. ⓒ정현진 기자
빗속에서 진행된 둘째 날 삼보일배. 앞에는 유가족과 종교계 대표들이 뒤에는 시민들이 따랐다. ⓒ정현진 기자

8월 24일 이태원 참사 300일을 앞두고, 유가족과 종교계가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300일을 추모하는 삼보일배를 진행하고 있다.

22일 오전 삼보일배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 뒤, 10시 29분 서울광장 분향소 앞을 출발한 참가자들은 첫날 서대문 충정로역 인근까지 삼보일배를 이어갔으며, 둘째 날에도 10시 29분부터 출발해 마포역에 도착했다. 마지막 날이자 300일을 맞는 24일에는 마포역에서 국민의힘 당사 등을 거쳐 국회 정문에 도착한 뒤, 문화제를 연다.

300일 추모 삼보일배에는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위, 천주교 남녀수도회 정의평화환경위원회를 비롯한 4대 종단 종교인들이 동참했다.

이들은 300일 추모를 위한 삼보일배가 무엇보다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책임자들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고, 이상민 행안부 장관,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는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것이 특별법 제정이라는 입장이다.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지난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됐지만, 여전히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법안심사 2소위)에 계류돼, 심의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가족과 대책위, 종교, 시민사회계는 “참사 뒤 300일이 되도록 사건 수사, 책임자들의 책임 있는 행위 등이 실종된 상황에서 특별법이 왜 제정되어야 하는지 절박한 호소를 국회에 전달하기 위해 삼보일배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하였고,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직접 해결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특별법이었습니다. 이렇듯 중요한 특별법 통과를 위해서 전국을 돌며 호소하였고, 폭염 속 아스팔트 위에서 땀과 눈물을 쏟으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정부는 없었고, 우리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첫날 기자회견에서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100일, 200일을 거쳐 300일이 다 되었어도 어느 것 하나 밝혀지거나 이뤄진 것은 없으며, 참담하고 억울한 마음을 호소하기 위해 용산 대통령 집무실, 국회로 달려가 외치고 있는 현실을 토로했다.

그는 “여전히 법안은 국회에 머물러 있고, 국회 행안위조차 통과하지 못한 실정이다. 아직도 우리의 300일이 부족한가, 도대체 유가족이, 피해자가 몸부림치며 호소해야 하는 시간은 얼마나 더 필요한가”라며, “차라리 500일, 1000일이든 견디고 버티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를 토할 정도로 외치고 또 외쳐도 우리의 아이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남아 있는 가족들은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우리의 염원을 위한 마지막 보루가 이태원 특별법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우리가 지키고 이뤄내야 할 특별법을 위해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담아 국회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왼쪽)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라는 가족들의 염원을 위한 마지막 보루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왼쪽)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라는 가족들의 염원을 위한 마지막 보루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둘째 날 삼보일배 참가자들은 애오개역을 지나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서부지방법원은 이태원 참사 관련 책임자인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송병주 전 용산서 112종합상황실장, 최원준 전 용산구 안전재난과장 등 6명의 재판이 진행된 곳이며, 이들이 보석으로 석방된 곳이기도 하다. 이들 6명은 현재 모두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고 있다.

법원 앞에 선 이정민 위원장은 현재 참사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1심 판결조차 나지 않고, 꼬리자르기식 수사로 실무자만 구속된 현실을 지적하고, “유가족, 피해자들은 폭우 속에서 애끓는 마음으로 아스팔트 위를 기어 왔지만, 참사의 주범들은 보석과 구속 만기로 풀려나 편하게 재판받고 있다. 이것이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은 “법적 책임이 없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에 대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어떻게 책임 유무를 가릴 수 있는가”라며, “이런 현황을 봤을 때, 특별법을 통해 밝히지 않는다면, 영원히 이태원 참사는 묻히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안전을 위해서 책임과 원인을 명백히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뒤따르는 시민과 종교인들. 수도자들은 유가족들도 입지 않는 우비를 입기 미안하다며 수도복이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현진 기자
뒤따르는 시민과 종교인들. 수도자들은 유가족들도 입지 않는 우비를 입기 미안하다며 수도복이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현진 기자

23일 삼보일배에 참여한 김정대 신부(예수회)는 “이번 삼보일배는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고 진상규명을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인간이기 위해서 참여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김 신부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외침을 외면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삼보일배는 인간이기 위한 몸부림”이라며, “나 역시 이곳에 보속을 위해 참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보일배 마지막 일정은 24일 오후 1시 59분부터 시작된다. 전날 도착지인 마포역을 출발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사를 거쳐 국회 앞에서 300일 추모문화제로 마무리된다.

뒤따르는 시민과 종교인들. ⓒ정현진 기자
뒤따르는 시민과 종교인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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