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 6월부터 서울 근교 농촌 마을에서 7개월 간 안식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안식년, 안식 학기라는 말은 사제나 수도자, 대학 교수, 드물게는 직장인들이 갖게 되는 특별한 멈춤과 쉼, 재충전 시기를 일컫기도 하는데, "천주교 용어 자료집"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7년마다 토지를 쉬게 할 목적으로 정한 제도”로 “토지가 하느님의 소유라는 개념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안식년에는 경작지에서 자생적으로 맺힌 열매는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 되게 했으며, 빚도 탕감”해 주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 안식년 전통이 사람뿐 아니라 땅에도 적용되어 땅을 경작하지 않고 쉬게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농경 시대도 아니고 농부도 아니면서 안식년, 안식 학기, 안식기를 갖는다는 것이 마음에 와닿지 않고, 그런 시간을 내고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제적으로나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호사로 느껴지기도 하리라 생각합니다. 타인이나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어 일을 쉬게 된 것과는 다른 의미로, 일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은 우선 식의주를 해결할 수 있는 여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니 말입니다.

저는 수녀원의 행정 일을 하면서 영적 갈증과 멈출 필요를 느꼈고, 입회 30년이 된 이 시기에 쇄신 시간을 갖는 것이 의미 있겠다 생각되어 쉼과 쇄신, 재충전 시간을 갖고자 안식기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사제나 수도자들은 안식년에 성지순례나 양성 프로그램, 긴 피정, 다양한 연수 등에 참가하기도 하는데, 사람마다 필요가 다르고 도움이 되는 방법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자연 안에서 더 단순하고 검소하게 그리고 흙을 가까이하며 지내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생각되어, 조용한 농촌 지역에서 안식기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제가 머무는 곳은 청량리역에서 한 시간가량 기차를 타고 와 역에서 25분 정도 걸어 들어오는 곳인데, 역에 내리면 그 흔한 편의점이나 구멍가게 하나 없습니다. 하루 4번 기차가 정차하고, 장을 보려면 꼬박 한 시간 반 정도 걸어 나가야 하는 곳이라 경기도에 속하지만 오지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매월리 자연. ©남궁영미
매월리 자연. ©남궁영미
노을. ©남궁영미
노을. ©남궁영미
노을. ©남궁영미
노을. ©남궁영미

여름인데도 오후 8시가 지나면 컴컴해지고 곧 한밤중처럼 느껴집니다. 불빛이 없으니 밤하늘 별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고, 주변이 고요하니 바람 소리,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등 갖가지 자연의 소리가 살아납니다. 고라니가 집 앞을 느긋하게 걸어 다니고, 여러 이름 모를 새들이 평화로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는 평화로운 곳입니다. 집 앞의 산 위로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이 하루 일과 중 하나인데, 마음이 참 평온해지는 시간입니다. 흙을 밟으며 소소하게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도 마음과 생각을 비우는 데 도움이 되어 물리적, 심리적 여유를 갖게 합니다. 자연 안에 있으니 많은 것이 저절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안식기를 시작한 6월에도 각종 내용의 집회를 알리고, 연대 서명을 청하는 카톡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집회나 연대가 필요하지 않은 집회가 없고, 마음 절절한 일들이 다급하게 요청하는 자리로 당장이라도 나가 함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안에 쉬고 있다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도를 할수록 지금은 이 안식 시간을 충실히 사는 것이 그 어떤 연대 행동보다 더 힘있게 함께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같은 공간에 함께 하는 것만이 연대가 아니라 같은 시간에 어떻게 현존하는가를 더 깊이 의식하게 됩니다.

©성심수녀회

유대교 랍비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안식"이라는 책에서 “안식(일)은 삶의 막간이 아니라 절정”이며 “문명을 뛰어넘는 기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해 목적한 바를 성취해야 삶의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에, 안식이 삶의 절정이라는 말을 흔쾌히 긍정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식은 무엇을 하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자신을 비우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안식은 그저 일에서 물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일상의 걱정과 근심, 일과 관계 그리고 세상의 부정의와 부조리에서 오는 긴장과 갈등, 각종 정보와 소리들이 가져오는 피로 등과 같은 세상의 것들에서 자기 자신을 비워, 비로소 하느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채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런 진정한 쉼을 통해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나 자신이 인간이란 것을 깊이 깨닫고 알아가며, 나와 이웃의 관계, 나와 자연의 관계 안에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진리 사랑은 거룩한 한적함(otium sanctum)을 찾고, 사랑의 필요는 마땅한 일(negotium iustum)을 맡는다”는 아우구스티노의 "신국론"의 생각처럼 거룩한 한적함이 될 쉼-안식의 시간을 갖는 자리야말로 제대로 일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 리듬 안에서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눈과 마음으로 하느님이 바라시는 일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안식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을 통해서 기쁨을 완성하고 새롭게 하는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안식(년) 전통과 제도가 우리 모두의 삶에 아주 중요한 정신을 일깨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루의 한순간, 한 주의 하루만이라도 멈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삶의 절정이며 문명을 뛰어넘는 기술이라는 것을 체험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남궁영미

성심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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