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고 담대하게 말하기’는 제16차 세계 주교 시노드의 지역 교회 단계에서 경청을 위한 10개 대화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편집자 주 : 시노드는 일반적으로 주교들의 모임인 교회회의를 가리킨다. 제16차 세계 주교 시노드는 2021년 10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3단계로 진행한다. 이번 시노드에서는 평신도와 수도자, 성직자가 모두 함께 걸어가는 여정을 뜻하는 '시노달리타스'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성령 안에서 교회 모든 구성원이 만나 상호 경청하며, 대화하고 식별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난해 본당(성당) 경청모임과 시노드 여정의 교구 경청 단계에 동반할 교구시노달리타스팀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여러 경청모임에서 이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대체로 최근에 세례받은 신자들은 용기 내어 말했다가 상처가 된 경험이 많았다. 세례받은 지 오래된 교우들은 할 말이 있어도 입을 다무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은 듯 보였다. 오히려 본당보다는 본당 이외의 경청 그룹들, 정의평화 활동에 참여한 신자, 수도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성소수자 부모와 당사자, 이주민 활동가, 여성과 청년들에게서 용기 있고 담대한 말들이 나왔다. 

지난달 말 발표된 시노드의 아시아대륙 회의 최종문서에도 용기 있고 담대하게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 주고 있다. “많은 이들은 비판이나 논평보다 칭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경청이 어려운 일이라고 언급합니다. 감히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그들의 논평과 의견이 주류 사상이 아니거나 교회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여겨져 공동체의 특정 부분에서 적대자로 간주되었습니다.”(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아시아대륙 회의 최종문서 53항)

세계 주교 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대륙별 회의들 모습. (사진 출처 =  synod.va)
세계 주교 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대륙별 회의들 모습. (사진 출처 =  synod.va)

국가 단계의 시노드 여정에서 용기 있고 담대하게 말하기

2022년 끝자락이었던 지난 12월 30일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한국 교회 단계 자료집'을 묶어 각 교구에 배포하면서 누리집 자료실에도 공개했다. 대부분 자료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진 내용들이다. 그중 ‘한국 교회 단계 주교회의 역할에 대한 성찰’은 한국 교회 시노드 여정에서 주교회의의 역할에 대한 ‘용기 있고 담대하게 말하기’의 좋은 예라 생각한다.

자료에 따르면, 주교 시노드 한국 교회 단계에서 주교회의 차원의 "국가 시노드팀의 부재는 시노드의 취지와 어울리지 않게 소통과 협력의 어려움이 가장 먼저 부각되었다"(72쪽)고 전하고 있다. 주교회의와 달리 전국 16개 교구 가운데 12개는 시노드팀을 구성했다. 내가 속한 의정부교구만 하더라도 총 13명(사제 7, 수도자 1, 평신도 5)으로 구성했고, 교구 내 총 85개 본당 가운데 72개 본당에서 본당시노드팀을 꾸려 경청 과정을 진행했다. 이는 교구의 약 5500명 신자를 직접 만나는 경청 과정을 동반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최소한의 팀이었다.

한 개 교구의 사정이 이럴진대, 16개 교구의 경청 과정을 통해 올라온 교구별 종합보고서를 묶어, 한국 교회 종합보고서로 정리하는 일을 몇몇 실무 책임자들이 진행하기란 시작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만약 과거 세계 주교 시노드 의견 수렴 과정과 마찬가지로 주교회의와 교구별로 소수 몇몇이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한 관행을 반복하려 했던 것이라면, 이번 세계 주교 시노드의 취지를 주교회의가 크게 곡해한 것이다.

교구 단계에 대한 지원, 조정, 동반 제공에 대한 아쉬움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의 ‘주교회의를 위한 자료’는 특히 시노드에서 개별 교구의 직권자로서 주교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주교회의 차원에서 주교들에 대한 양성과 도움을 제공할 것을 권고하였지만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주교시노드 개막 직전에 있었던 2021년 추계 주교 연수의 주제가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것이었지만 당시에 이미 시노드의 전체 일정과 공식 문서로서 「예비문서」와 「편람」이 발표된 상황이었음에도 구체적인 시노드 실천에 대한 논의보다 시노달리타스의 개념적 용어 사용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신학적 논의에 머문 것은 아쉬움이 크다. 이것 역시 한국 주교회의가 이번 주교시노드를 어떻게 전체적으로 준비하고 실천해야 했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비전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73쪽)

물론 한국 주교회의가 '예비문서'와 '편람' 등의 공식 문서를 번역해 교구에 전달하는 역할은 비교적 충실하게 진행했다고 할 수 있다. 교구별 시노드 책임자 전체 모임이 꾸려지기는 했지만 행정 업무 연락 창구 수준이었지, 교구별로 처음 시도해 보는 경청 과정의 고민과 아이디어들을 나눌 수 있는 자리는 마련된 적이 없었다. 인용문에 적힌 것처럼 2021년 추계 주교 연수에서 시노달리타스를 중심 주제로 다루었지만, ‘공동합의성’을 ‘시노달리타스’로 고쳐 사용한다는 결정 외에 교구별로 진행될 경청 과정과 한국 교회 단계에 대한 세부 실행 계획이 나오지 못한 것은, 이번 주교 시노드에 대한 주교회의의 비전 부재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어 보인다.

주교회의부터 시노달리타스를!

"특별히 교구 단계 경청 모임이 끝난 뒤에 이루어진 이른바 국가 시노드 모임은 주교회의 차원의 좀 더 면밀한 기획과 준비가 필요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지 못했다. (중략) 또 최종 식별 권한자들인 주교님들의 의견을 이번처럼 개별적으로 받는 게 옳았는지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하다. 본당과 교구의 하느님 백성이 여러 사정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함께 모여 경청 모임을 갖고 성령의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한 것처럼, 주교회의 역시 개별적인 의견 수렴이 아니라 함께 모여 식별 작업을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75쪽)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지 않은 2022년 1월 본당별로 경청모임을 진행한다고 하자, 감염이 확산되지 않을까, 특히 고령층 신자들의 우려가 컸다. 하지만 막상 대면 방식으로 경청모임이 진행되자, 지난 2년간 지속된 비대면 상황에 지쳐 있던 신자들은 대면 모임을 갖는 데서 오는 반가움과 기쁨이 참여를 촉진시켰다. 또한 코로나로 위축된 공동체와 신앙생활을 회복하는 데 경청모임이 유용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제와 신자들 간의 공감대도 커져 갔다. 무엇보다도 경청모임에서 가장 의미 있는 체험은 신자들이 늘 본당에서 만나지만 친교와 신앙 나눔이 부족했거나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점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서로서로 안에 살아 있는 ‘신앙 감각(sensus fidei)’을 확인하였고, 자신과 본당 공동체의 삶에서 시노달리타스가 중요하다는 점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점은 이번 경청모임의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로마의 시노드사무국이 여론조사 방식이나 소위 전문가를 활용한 의견 수렴 대신에, 어렵고 힘든 대면 방식의 경청모임을 택한 이유는 뭘까? 서로 만나 나누는 과정에서 생기는 뜻밖의 역동성과 이러한 나눔의 자리 안에 성령께서 함께 계심을 체험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 아니었을까? 의정부교구를 포함해 교구별 보고서에는 경청모임에서 얻게 된 이러한 통찰, 기쁨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위 인용문에 따르면, 이러한 통찰과 기쁨의 체험은 주교회의 종합 단계에서는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시노달리타스가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세계 주교 시노드 한국 교회 단계는 마무리됐지만, 이번에 제출한 대륙별 최종 문헌이 취합되면 의안집이 나오고, 오는 10월 1차 본회의에 이어 2024년 10월에 2차 본회의까지 2년 가까운 시노드 여정이 남아 있다. 개별 교회와 국가, 대륙회의를 통해 올라온 다양한 목소리들, 그 가운데에서도 세상과 교회 안에서 상처가 된 경험을 비롯해 교회 쇄신을 향한 다양한 발언에 대해, 교회 구조의 쇄신을 포함해 책임 있게 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이번 시노드 여정이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교구와 각 본당의 일상 안에서 사목 원리로 만들려는 노력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의정부교구가 지난해 한국 교회 시노드 단계가 마무리된 직후,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본당과 교구 차원에서 지속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시노달리타스위원회를 새롭게 재편해 출범한 것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

세계주교시노드 과정 2021-2024표. (이미지 출처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세계주교시노드 과정 2021-2024표. (이미지 출처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챗GPT도 알고 있는 시노달리타스의 중요성

요즘 뜨거운 화제로 부상한 챗GPT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유념하면서 공동의 집 지구를 구하기 위한 신자들의 기도 4개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거침없이 완성도 높은 기도문들을 작성해 주었다. 본당 생태평화분과장님에게 이 소식을 알려 주었더니 매달 진행하는 생태평화 미사 신자들의 기도 준비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좋아하신다.

이런 질문에도 답을 할까 싶어 또 물었다. "100년후 한국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기대하는지 알려 줘"라고 했더니, 4가지로 요약해 의미심장한 전망을 알려 준다. 세 번째로 답한 내용이 이번 칼럼의 주제와 직접 연결된 내용이라 인용해 본다.

"셋째, 평신도와 지역 공동체에 더 많은 참여와 의사 결정 권한이 주어지면서 교회의 지도력과 통치 구조에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교회 내에서 공동합의성과 분권화를 강조하는 결과일 수 있습니다."

AI 언어 모델로 챗GPT가 미래를 예측하는 일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현재의 경향과 패턴을 바탕으로 예측한 것이라 최근에 회자되는 시노달리타스를 챗GPT도 중요한 변수로 고려한다는 반증이라 생각돼 놀랍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하느님 백성인 교회 구성원들의 마음 안에도 시노달리타스의 씨앗이 뿌려져 잘 열매 맺기를 소망해 본다.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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