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여성을 공부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

‘예수님과 여성을 공부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이하 예여공)이 2023년 첫 모임을 27일 진행했다.

지난해 8월 모임을 시작한 예여공은 교회 안팎의 여성 문제에 대해 신앙과 성경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성경과 신학 공부, 독서 토론 등으로 모임을 이어 왔다. 현재 30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 합정동 마리스타교육회관에서 공부 모임을 한다.

올해 첫 모임은 지난해 '윤리적 생애사건으로서의 임신 중지 - 한국 여성 가톨릭 신자들의 경험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강석주 씨(카타리나, 서울대 여성연구소)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로 마련됐다.

“임신중지는 일회성의 단지 부정적 사건이 아니라 온 생애를 관통하는 윤리적 사건”
“낙태는 죄”라는 교회 안에서 신자 여성들은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극복하는가?

논문을 쓰는 과정과 그 결론에 대해 이야기한 강석주 박사는 “한국 가톨릭 신자 여성들의 임신중지 경험과 목소리를 깊이 탐구함으로써, 임신중지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 사건이 여성의 생애를 관통하는 윤리적 사건임을 드러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여성 개개인이 임신중지를 경험하는 양상과 의미를 설명하며, 그 경험이 생애 안에서 지속적으로 고투와 성찰을 만들어 내는 내용을 언어화하며, 이를 통해 계속되는 임신중지 경험자들을 향한 우리 사회의 도덕적 비난과 낙인을 돌파하고자 한다”고 했다.

“가톨릭 신자 중에도 임신중지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많지만,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의미화하는 방식이 어떠한지 거의 알 수 없다. 여성 가톨릭 신앙인의 임신중지 경험은 자신의 종교뿐 아니라 페미니즘 담론 속에서도 소외된 주제였다.”

강석주 박사는 이 연구의 배경에 대해, 신자이자 여성학도로서 교회 내에 분명히 존재하는 임신중지 당사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이 과연 신앙을 어떻게 유지하고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가시화할 필요를 느꼈다고 설명했다.

또 교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 영역 역시 여성의 권리운동의 언어에 매몰되어 있다고 평가하면서, “여성의 마땅한 권리와는 별개로 임신중지라는 경험은 여성의 낙태 권리만이 아니라 여성의 삶에서 계속 이어지는 경험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데 여력이 부족하거나 여성이라는 존재를 오해하게 만드는 수많은 담론을 적극적으로 돌파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운동이 진행되는 것에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이 연구는 ‘임신중지’를 반대하는 종교 운동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나, 반대로 교회의 현재 생명운동 방식에 근거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둘 모두를 탈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1월 27일, 예수와 여성을 공부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에서는 강석주 박사가 임신중지가 여성들의 삶에 어떠한 사건인가에 관해 이야기했다. (사진 제공 = 예여공)
1월 27일, 예수와 여성을 공부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에서는 강석주 박사가 임신중지가 여성들의 삶에 어떠한 사건인가에 관해 이야기했다. (사진 제공 = 예여공)

임신중지를 경험한 가톨릭 신자 여성 15명의 목소리
“내가 기도할 자격이 있나?”, “고해성사를 마구마구 봐요”

연구 방법은 여러 경로로 지원한 임신중지 경험자 15명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었다. 20대 후반부터 60대 후반의 미혼/기혼 여성들은 임신 상황, 각자의 대응, 임신 중지 이후의 상황 등에 대해 자기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 과정에서는 자신의 행동과 선택,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자기 해석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례자들의 임신중지 경험은 가깝게는 2-3년 전, 멀게는 30여 년 전이다. 이들은 경험했던 시기와 관계없이 자신이 결정하고 겪어야 했던 일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성찰하는 ‘전 생애의 사건’으로 겪고 있었다.

임신을 확인한 뒤, 임신중지를 결정해야만 했던 상황, 임신중지 이후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해 말했다. 또 이들은 임신중지라는 경험을 어떻게 자신의 삶에서 겪게 되었으며, 그 사건이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신에 대한 이해’의 틀을 깨트리기도 했다. 이를테면, 임신중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적극 알리려 했던 자신이 임신중지를 해야만 했던 딜레마를 극복하는 일이다.

특히 가톨릭 신자 여성들인 사례자들은 이 과정에 ‘자신의 신앙’과도 끊임없이 고투했으며, ‘교회의 태도’에 상처 입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례자들은 임신중지 경험을 자신의 삶 전반에서 의미짓고, 재해석하며, 교회와 사회 안에서 한 사람의 자아로, 여성으로, 신자로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강석주 박사는 다양한 처지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임신중지를 경험한 여성들은 임신중지가 좋은 결정이었는지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작업을 그 이후에 하게 되었다면서, “이들은 임신중지에 관한 복잡한 감정과 도덕적 갈등들을 덮어 두지 않고 생명, 삶, 관계, 고통 등의 개념들을 다원적인 가치체계를 동원해 다각도로 고찰해 냈다. 임신중지라는 사건 자체를 다시금 모니터링해 보는 것은 여성 주체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지고자 하는 도덕적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강 박사는 15명의 다양한 측면에 따른 구술을 통해 이들이 임신중지를 결정하고 그 경험을 살아내는 전체 삶의 과정에서 생명에 대한 지속적인 책임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론을 통해 “임신중지는 여성이 그것을 결정하는 상황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과 생애 안에서 여러 딜레마를 마주하게 만들고,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하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러한 인생의 여정에서 여성들은 윤리적 결단과 행위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 연구를 통해 여성들은 임신중지 경험에 대한 책임 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몸과 삶에 주체성을 발휘한다. 특히 신자 여성들은 이를 신앙과 통합시키고자 고투한다”고 썼다.

강 박사는 이 연구가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임신중지 경험을 한 여성을 태아에 대한 가해자 혹은 사회구조의 피해자/치유해야 할 수동적 존재로 드러내는 기존 담론을 넘어 스스로 결정하고 행위를 하며 자신의 상처와 맞서 싸우고 윤리적 성장을 이뤄 내는 자율적 힘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은 그간 홀로 간직한 경험과 극복해야 할 무엇 안에서 벗어나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바람이 컸다면서, 경험의 공유가 무엇보다 치유와 성찰의 큰 힘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동안 이른바 ‘낙태 정치’ 속에서 마치 태아의 생명과 대척점에 있는 여성이 고립된 상태에서 자신의 권리를 이기적인 방식으로 실현한 결과가 임신중지라고 많은 이들이 상상해 왔다”고 지적하고, “연구 결과는 이러한 담론 구도를 깨트릴 근거를 여성들의 실제 경험과 목소리를 통해 제공함으로써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의 윤리적 기초를 찾아낸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강석주 박사는 “여성이 결코 자기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윤리적 질문을 외면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분명히 하고, “재생산과 관련된 자기 운명을 결정하고 반추하는 여성의 성찰과 숙고의 과정을 풍부하게 담아내는 여성운동과 페미니즘 언어가 더욱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미영 소장(우리신학연구소)은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여성들의 경험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궁금하다며, 낙태를 죄로 보는 교리 안에서 가톨릭 신자의 경우 더 큰 죄의식과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낙태한 이들을 공격하는 것보다는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여성을 고려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문제”라면서, “여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구조 안에서) 여성과 태아는 같이 피해당한 생명이다. 이들의 고통을 서로 이해해야 하는데, 여성과 태아가 서로 싸우는 문제로 인식돼 왔다”고 말했다.

그는 “미혼모가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울 때 사회경제적 여건이 크게 작용하는데, 문제는 다양성이 존중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정상 가정, 정상적 삶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때, 더 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를 바꾸기 위해 교회와 여성이 함께 나아갈 수 있고 더 다양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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