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의 초록별 이야기]

양재천을 사이에 두고 도곡동 타워 팰리스 건너편에는 나즈막한 야산의 과수원이 있다. 복숭아, 배나무가 들어찬 이 동산은 지금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이다. 분홍과 하양으로 피어난 꽃잔치로 흥겹다.

양재천 뚝방을 걸어 과수원 속으로 들어가면 언덕배기 정상이 나온다. 언덕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이름 그대로 궁전인 타워 팰리스가 사방을 내려보며 위엄한 자태를 보인다. 그리고 주변의 저층 아파트와 수도공고 사이에도 배나무 과수원이 넓게 들어차 있어 여기가 강남의 금싸라기 땅이 맞나 싶다.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는 탓일 것이다.

어떻든 이 동네 사람들은 해마다 과수원 주위를 거닐며 옛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도화원기>에 머무는 듯 잠시 비몽사몽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도화원을 다녀온 사람이 꿈속에 일어난 일이었나 싶게 다시는 그 곳을 찾아가지 못하듯 이 강남의 무릉도원 건너편에는 타워팰리스의 위용을 부각시켜주는 빈민촌 구룡마을이 허름한 모양새를 드러낸다. 누구나 이곳에 서면 꿈속에 보이던 나비와 현실의 장자마냥 잠시 어리둥절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비닐하우스 구룡마을, 유령마을

대모산과 구룡산 자락에 위치한 구룡마을은 1980년대 중반부터 서울의 빈민들이 하나 둘 모여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서울 올림픽을 맞아 도시 미관을 해친다며 정부가 대대적인 빈민가 철거작업을 벌인 1988년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해, 현재는 17만여 평 9개 지구에 2천여 가구의 불법 비닐하우스 촌이 들어서 있다.

이 마을 분들은 개인 사유지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살다보니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으로 올리지 못하고 인근 교회나 자신이 일하는 음식점, 친척집 등으로 ‘위장전입 아닌 위장전입’을 하고 살아 '유령마을'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구룡마을은 자연녹지 지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제한돼 왔지만 2007년 말로 개발제한이 끝나, 강남의 마지막 재개발 ‘바람’을 맞고 있다. 이곳은 산록에 위치한 터라 아파트를 짓는다면 건너편 타워 팰리스보다 더 효용가치를 지닌 명품 아파트가 될 것이다.

이러한 여건이 조성되자, 소위 물딱지라 불리는 신축아파트 입주권이 매매되며 혼란을 일으킨다고 한다. 기존 입주자들에게서 물딱지를 사들이는 투기꾼들이 드나들며 구룡마을은 건너편 타워 팰리스 못지않은 자본의 위력을 보여주는 곳이 되었다.

원래 빈민으로 들어와 살아온 원주민들은 물딱지를 받았다 하더라도 입주하며 내야할 돈을 융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투기꾼들은 이런 형편을 이용하여 입주권을 사들여 한몫 챙기려는 것이다. 그리고 물딱지를 노리는 가짜 입주민들이 많아 소란스럽다고 하니 이 모두가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한바탕 봄꿈이 아닌가 싶다.
구룡마을과 타워 팰리스 사이에서 봄꿈에 젖어

구룡마을과 타워 팰리스 사이에서 과수원은 꿈이 현실로 곤두박질치는 걸 막아주기 위해 거기 존재하는 것만 같다. 옛어른들이 시대의 흐름에서 빗겨나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접는 방법 중의 하나가 은일지사(隱逸志士)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몸을 감추어 끝끝내 사대부로서 지조를 지켜내던 분들의 삶이 타워 팰리스와 그 건너편 구룡마을 사이 과수원에서 꽃으로 피어나 꽃잎이 바람에 날리고 물에 떠내려가며 삶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전해주는 것만 같다.

도연명(陶淵明, 365년~427년)은 중국의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220년~589년) 시대의 사람으로 동진(東晉) 말기부터 (유)송에 걸쳐 생존했던 인물로 그의 가문은 원래부터 남방에서 터를 잡고 살던 호족(豪族)이었다고 한다.

도연명이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쓴 이 시기는 오호(五胡)-흉노, 선비, 갈, 강, 저-들이 장안과 낙양 주변에 저마다의 나라를 세워 중원에 자리잡고 있던 한족(漢族)의 나라 서진(西晉)을 남쪽으로 내몰았던 시대이다. 처음으로 오랑캐가 중국의 헤게모니 중원지방에 나라를 세워 한족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이들 유목민족들은 중원지방을 차지한 것에 그치지 않고 남쪽으로 내려간 한족의 나라 동진(東晉)을 쳐서 천하를 잡아 천명(天命)이 유목민족에게도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거친 북방 초원생활이 고달팠을 것이고 화이(華夷)사상-중국 민족이 스스로를 중화(中華)라 하여 존중하고 주변 민족을 이적(夷狄)이라 하여 천시하던 사상-에 자존감을 다친 그들은 천하를 쟁취하여 존재감을 드높이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위진남북조시대는 여러 명문가와 세력가들을 왕조에 대한 충성 정도와 능력을 평가하여 가문의 격을 매기는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를 근거로 왕조의 권력을 나누는 신분제사회였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몰락한 사족(士族)들은 민중 속에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신분에 의해 귀천이 갈리고 빈부에 의해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면서 이들 몰락 사족(士族)들은 처음으로 일반 필부필부들의 아픔을 알게 되었으며 평등(平等)에 대해 깊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도연명의 도화원

이민족과 한족간의 전쟁, 그리고 중원지방의 한족들이 북방유목민족에 밀려 남방으로 내려와 동진을 세우자 남방의 토호세력들은 권력에서 실추당한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위치에서 도연명을 비롯한 남조의 사대부들 사이에는 은일지사를 꿈꾸는 경우도 많았을 법하다. 도연명도 지방관리 정도에 머물렀지 높은 관직을 지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평등을 이루기도 어려운 일이고 숨어사는 것도 여의치 않은 일이라 그들은 픽션을 통해 평등이 구현된 이상향을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도연명의 <도화원기>는 그 시절 무릉 지역 및 곳곳에 떠도는 설화를 모아 도연명이 작가적 소신을 삽입하며 다듬어낸 작품이다.

작품 속 도화원에는 전쟁도 없고 나라에서 부리는 부역을 짊어지지 않으며 임금에게 바치는 세금도 없다. 함께 일하고 똑같이 나누어 먹으며 도화유수(桃花流水)의 선경 속에서 살았다.

<도화원기>를 보면 천육백 년 전, 위진남북조시대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바램이 무언지를 알 수 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아마도 토지가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게 골고루 분배되어 저마다 자급자족을 이루는 삶을 지향했던 것 같다.

소설 속 도화원(桃花源) 사람들은 진시황의 진(秦)나라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중국인들은 그들 역사 속에서 진시황과 그를 보좌하던 사람들이 주(周)나라가 시행하던 정전(井田)법을 폐한 것을 가장 큰 실책으로 여긴다. 정전법이야말로 민중들의 자급자족을 지탱해주던 토지제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진나라는 논밭 사이로 길을 내어 토지를 사유하고 매매하여 일부 사족(士族)들이 대토지를 소유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치의 결과로 땅을 잃은 빈민들이 살 길을 찾아 떠도는 유랑민으로 전락한 것이다.

도연명은 이러한 중국인들의 사상을 작품 속에 흡수하여 도화원에 사는 사람들은 출세와 권력을 탐하지 않고 자연에 귀의하여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반면 위진남북조의 혼란한 현실 속에서 권력을 탐하고 삶의 기반인 토지를 사유화하여 대토지를 소유한 일부 사족들을 경박한 무리하고 평하였다.

위로의 아들, 바르나바

<귀거래사>를 비롯한 도연명의 작품들은 어느 정도 그 시대 청담사상이 그러했듯 현실도피적인 시각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은일한 처사로서의 삶은 2008년 서울의 강남에서도 새삼 본받고 싶은 삶의 스타일이다. 지금도 부동산을 두고 다투는 빈부의 격차는 순박한 사람들을 경박한 물질다툼으로 내몬다.

복숭아꽃이 화사한 과수원을 거닐며 도곡동 타워 팰리스의 성채 안에 도사린 아픔과 오만(?)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반대편 구룡마을이 드러내는 헐벗은 삶을 가슴에 불러온다. 그 두 마음을 품어 안을 사랑을 갖추지 못한 채, 이천 년 전, 안티오키아와 타르수스 지방에서 그리스도교 사도로 살았던 바르나바 성인을 기억하고 그의 위로를 청해 본다.

바르나바 성인은 바울이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하다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지만 유대인 누구도 그의 변화를 믿어주지 않을 때, 바울을 유대교 공동체에 소개하고 자신의 동반자로 받아들여 함께 복음전도여행을 떠났다. 이러한 매개역할이 있었기에 바울은 초대교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 그의 믿음을 전도여행에서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지 않으며, 바르나바 성인은 다른 이들이 꿈을 펼칠 자리를 마련해주었기에 '위로의 아들'이라 불렸을 것이다.

 

/이규원 200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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