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에서는 또다시 병아리들이 태어나고 있고 고양이들도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았다. 우리 집이 그야말로 생생불식의 현장이 되어 기쁨과 부담감을 한꺼번에 느끼고 있는데 이 와중에 이웃집 강아지 세 마리까지 틈만 나면 우리 집에 놀러 온다.

“안 가냐? 얼른 가, 얼른!!!”

볼 때마다 작대기 들고 달려 나가 쫓아내고 있지만 맹랑한 녀석들이 말을 안 탄다. 달아나는 척하다가 내가 등을 돌려 집 쪽으로 돌아서면 다시 내 뒤를 쫓아 졸졸 따라오고 있으니 나중에는 내가 먼저 지쳐서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임인년에는 내 사주에 큰 물(임수)이 하나 들어오니 그게 넘치는 동물 복이 되었을까? 꼬물거리고 발발거리는 것들에 온통 둘러싸인 아이들은 날마다 신바람이 나는 듯하지만, 나는 삐질삐질 진땀이 난다.

이렇게 꽉 차 있는데, 그래서 더 들일 게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다나가 쥐똥보다 작은 달팽이를 하나 데리고 와서 묻는다.

“엄마, 나 달팽이 키워도 되지?”

“새끼 고양이들로 충분하지 않니? 달팽이까지 키운다고?”

“너무 귀여워서 키우고 싶어.”

생각해 보니 둘째 다랑이도 다나 나이 무렵부터 달팽이, 파리, 방아깨비 같은 걸 키우겠다 나섰던 것 같아서 잘 키워 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작은 녀석이니까 크게 부담을 느낄 것도 없고 하루 이틀 키우다 말겠지 싶기도 해서.

요즘 다나의 그림 주제는 온통 달팽이. ©박다나 그림<br>
요즘 다나의 그림 주제는 온통 달팽이. ©박다나 그림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다나는 달팽이 집부터 마련해 주었다. 뽕잎 카펫을 깔아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뽕잎 하우스다. 뿐만 아니라 모르는 글자를 오빠들에게 물어가며 달팽이 집 간판도 만들고 어떤 이름을 지어 줄까 고민도 한다.

“달팽이 집에 점 같은 무늬가 있으니까 점박이 어때?”(다랑)

“점박이는 느낌이 좀 그렇다. 점점이가 낫지 않아?”(다울)

“오, 점점이 괜찮은데? 점처럼 작기도 하고 앞으로 점점 커질 거니까.”(나)

다나도 점점이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다나의 첫 달팽이 이름은 점점이가 되었다. 정말 너무 작아서 눈을 씻고 여기저기 들춰 가며 찾아내야 보이는 점점이. 다나는 “아이구, 우리 점점이 밥 먹었어요?”, “점점이 어디 갔니? 재미있게 잘 놀았어요?” 하고 인형 아기 대하듯이 점점이에게 말을 걸며 아낌없는 사랑을 보냈다. 내가 보기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넘치는 사랑을....

그런데! 역시 넘치는 것은 화를 부르는 걸까? 점점이와 함께 지낸 지 사흘째 되던 날 밤, 다나는 점점이를 위한 노래를 만들어 불러주고 있었는데, 점점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것 같다. 달팽이 집을 내게 들고 와서 달팽이를 보여주며 물었다.

“엄마, 점점이 죽은 거 아니지?”

“에이, 설마....”

설마 했는데 이상했다. 건드려도 반응이 없고, 달팽이 집 입구 쪽에 젖는 휴지를 뭉쳐 놓은 것 같은 몸체가 튀어나와 있었다.

“진짜 죽었나 보다. 어쩌지?”

내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다나가 흐느껴 운다. 점점이를 부르면서 하염없이, 밤새도록 울 것 같은 기세로. 그깟 달팽이 하나 죽었다고 저렇게나 슬픈가? 다나가 적당히 울고 넘어가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슬슬 내 심기가 불편해지고 있는데 그 사이 다울이가 달팽이의 사망 원인을 밝혀냈다.

“맞다! 다나가 아까 과자 먹은 뒤에 손 안 씻고 달팽이 만졌잖아. 달팽이는 소금기가 묻어 있는 손으로 만지면 안 돼. 그러면 삼투압 작용에 의해 체액이 빠져나와 몸이 흐물흐물해져 죽는다고 했어. 그러니까 과자 양념이 잔뜩 묻은 손으로 달팽이를 만진 다나가 달팽이를 죽게 한 거지!”

다울이의 말에 다랑이가 깔깔 웃으며 “다나가 달팽이를 죽였대요” 하고 놀려댔다. 그러자 다나는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자기 때문에 달팽이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못 견디게 괴로운 모양이었다. 아, 점입가경이라고, 불난 데 부채질까지 했으니 이 불을 어찌할꼬.

점점이가 떠나고 지금은 점점점이가 살고 있는 달팽이 집. ©정청라

(2편에 계속)

정청라
흙먼지만 풀풀 날리는 무관심, 무 호기심의 삭막한 땅을 
관심과 호기심의 정원으로 바꿔 보려 합니다.
아이들과 동물들의 은덕에 기대어서 말이죠.
무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명랑한 어른으로 자라나고 싶어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