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연, 5월 줌 세미나

우리신학연구소(이하 우신연)가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5월 31일 온라인으로 열린 세미나에는 성소수자부모모임(이하 부모모임)에서 활동하는 오은지 씨(안나)와 홍정선 씨(세실리아), 다큐 영화 ‘너에게 가는 길’(성소수자 자녀를 둔 두 엄마의 성장 이야기)을 연출한 변규리 감독 등 50여 명이 함께했다.

먼저 홍정선 씨는 '부모모임'에 대해 2014년 자조 모임으로 시작됐으며 자녀의 커밍아웃으로 힘들어 하는 부모는 물론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소통과 성장, 연대의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부모모임은 자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회의 혐오에 맞서 함께 싸우며 고통을 나누고 위로를 얻는 자리가 됐다.

그는 “3년 전부터 매달 정기 모임에 신부, 수녀님들이 번갈아 찾아오신다. 모임에 나온 뒤 밝아지고 불면증이 낫고, 자녀와 완전한 화해를 이루는 모습이 매달 모임에서 펼쳐질 때마다 사회적 약자,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이들의 중심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역시 자녀의 커밍아웃으로 2년 넘게 괴로워했고, 그 과정이 얼마나 고독한지 체험했다. 그래서 그는 고통을 나누고, 우리 아이들이 잘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소통의 장이 부모와 당사자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부모모임이 이어져 온 이유라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이미영 소장(우리신학연구소), 홍정선 씨, 오은지 씨, 변규리 감독. (사진 제공 = 우리신학연구소)
(왼쪽부터) 이미영 소장(우리신학연구소), 홍정선 씨, 오은지 씨, 변규리 감독. (사진 제공 = 우리신학연구소)

“이제 살겠다, 나 같은 이가 또 있구나”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로 도서출판 한티재를 운영하는 오은지 씨는 “커밍아웃 스토리”,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등 여러 책을 내면서, 성소수자 당사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는 데 작으나마 보탬이 된 것 같아 매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저나 남편은 아이를 퀴어문화축제에 데려가곤 했고,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있었는데도, 아이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깨달은 뒤에 부모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을 매우 망설였다고 했다. 굉장히 마음이 아팠고, 아이 권유로 부모모임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의 커밍아웃, 부모모임과의 만남은 그에게 “안다고 했지만 몰랐던 것들”, “전혀 몰랐던 세상”을 알게 해 주고 깨닫게 했다. 부모모임에서 자신의 고통을 나눠 준 당사자들과 부모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이 이야기들이 서점만이 아니라 전국 도서관에도 꽂히고, 검색으로도 나오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청소년기 성소수자들은 특히 자신이 잘못 태어난 것이 아닐까, 그들의 부모는 우리 아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며 매우 힘들어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길 바라 만든 책이 “커밍아웃 스토리”다. 이 책에 실린 부모들과 당사자들의 글에 담긴 내밀한 이야기들이 매우 가슴에 와닿았고, 만들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 그는 여러 책을 냈지만 부모모임과 함께 만든 이 책만큼은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오은지 씨는 망설임 끝에 성당 지인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던 경험도 소개했다.

그는 “본인도 그렇지만 가족도 평생 커밍아웃 하고 산다. 성당 지인들에게 어떻게 말할지 망설여졌다. 성가대 활동을 했는데, 친한 단원들도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싶어 다른 데보다 말하는 걸 뒤로 미루다, 번개 모임을 마련해 커밍아웃 하고 책도 홍보했는데 뜻밖에 다들 매우 힘들었겠다며 격려와 위로를 해 줘서 좋았다”고 말했다.

특히 모임 뒤 한 자매가 자신의 자녀도 최근 커밍아웃을 했다며 이제 살겠다고, 나 같은 이가 또 있구나 싶어 굉장히 용기를 얻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는 “좀 더 일찍 이야기했으면 고민하는 당사자나 가족에게 힘이 됐을 텐데 괜히 망설였구나 싶었다”면서 그를 부모모임에 초대했다. 동네 사람들도 아무 편견 없이 받아들여 줬다. 더구나 연로하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시어머니는 이야기를 듣자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하느님이 견딜 만하니 주신 것이라고 하셔서 지레 걱정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무지개길 찾기',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과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2018. (사진 출처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홈페이지)

성소수자들과 그 부모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이날 ‘너에게 가는 길’에 출연한 나비와 비비안 씨 등 성소수자 자녀를 둔 다른 부모들도 함께했다. 이들은 자녀의 커밍아웃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그 과정에서 깊은 성장을 체험했음을 고백하며, 지금 어려움을 겪는 성소수자와 그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너에게 가는 길’ 연출자인 변규리 감독은 선거철만 되면 반복되는 성소수자 찬반 논쟁 등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차별하는 방식으로 성소수자 이슈가 논의되는 것이 안타까워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특히 부모들은 부모로서 커밍아웃 해야 하는 등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혐오의 현실을 비슷하게 경험한다. 이전에는 자식을 두고 가볍게 했던 “남친, 여친 있냐, 되게 예쁘더라” 같은 이성애 중심적 대화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홍석천 씨나 하리수 씨 등 성소수자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리는 등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상의 표현들이 당사자들에게 주는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부모는 성소수자인 자녀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 나갈까 고민한다.

이러한 부모들의 모습을 눈여겨본 변 감독은 “성소수자 부모모임과 부모들의 성장 과정을 담아보는 것이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고, “당사자들이 가장 커밍아웃 하기 어려운 존재가 부모이기도 해서 그런 이야기를 담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비 씨는 “생각보다 성소수자는 우리 주변에 많다. 인구의 5퍼센트만 잡아도 성소수자는 250만 명 정도로 이는 우리 나라 공무원과 군인 수를 합한 만큼이라 어떤 형태로든 가시화가 필요하다고 봤다”면서,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에게 가시화하는 것 외에 공개적으로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었다”며 영화에 출연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이어 그는 “영화가 많은 이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고 국회의원, 판사 등 사회의 영향력 있는 이들이 영화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는 반응, 부모님에게 커밍아웃 하고 싶은 당사자들이 영화관에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이야기에 많은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2016년 아들의 커밍아웃으로 충격을 받았던 비비안 씨는 아들이 건네준 부모모임의 인터뷰 책을 길잡이 삼게 됐다. 그는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성소수자와 그 부모들에게 매우 희망적인 길이 되겠다 싶어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인간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영화에서 많이 우는데, 처음엔 슬퍼서 울었다면 나중에는 자신이 성숙해 가는 과정에 굉장히 감동해서 울었다”면서, “종교계에서 마음을 열어 주고 성소수자에 대해 알아보고 연대하자는 움직임이 인다는 것, 함께해 주는 종교인들이 많아지는 것이 영화를 만든 가장 빛나는 순간이자, 보람”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살며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하는 심영주 씨는 “미국에 온 지 50년이 됐고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들도 많아 다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아들이 게이인 걸 알게 되자 매일 울었다”면서, “지금은 가끔만 운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나가면서 제가 많이 바뀌었고, 편견이 없는 사람이 돼 갔다.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안아주고 싶고 모두 내 자식 같다”고 말했다.

아이를 통해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메이 씨(성소수자 부모모임)는 분명 존재하는데도 성소수자들이 주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라면서, “누군가를 배제하고 안전한 사회가 아닌 우리 모두가 안전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에게 커밍아웃을 받았다면 그것은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으로 잘 살아왔다는 뜻이며 성소수자들은 특별하지 않다, 색안경 끼지 말고 당사자들을 만나보라고 권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예수회 등 수도회를 포함해 전국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교육하고 있는 심리상담사 지인 씨 역시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다. 그는 가족의 거부가 성소수자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문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율은 47퍼센트로 2명 가운데 1명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시도한다고 설명했다. 친구들은 물론 학교, 교사에게도 온갖 혐오와 차별을 겪는 이들은 부모가 알게 되면 자신을 안 좋게 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부모에게도 커밍아웃 못한다. 성소수자 가운데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비율은 80퍼센트에 달한다. 대부분 부모는 자녀가 성소수자임을 모르고 산다는 것이다.

지인 씨는 전체 인구에서 성소수자 비율은 적게 잡아도 평균 5-10퍼센트에 이른다면서, 이는 20명 가운데 1명, 학교 한 반에 1명 꼴로 성소수자가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즉 어디, 어느 집단에나 성소수자가 있는데도 우리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커밍아웃을 못 해서다.

그는 성소수자가 커밍아웃을 할 때나 학교 등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지침들을 안내하는 책자들을 꼭 읽어 보라고 권했다.

먼저 '동성애혐오성 괴롭힘 없는 학교'다. 이는 유네스코에서 만든 교사, 학교 지침서로 외국의 경우 전국 학교에 배포돼 있으나 한국에서는 번역돼 100부만 출판됐고, 학교 현장에는 배포되지 않은 상태라 시중 서점에서 구할 수는 없고 피디에프(PDF) 문서로 볼 수 있다. 

'동성애혐오성 괴롭힘 없는 학교' 피디에프(PDF) 문서 바로 가기

다음은 '학교에서 무지개길 찾기'로, 학교에서 성소수자 학생들을 만나 그들을 잘 돕고자 하는 교사들을 위한 안내서다. 이 책에는 학생이 교사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 혹은 우연히 학생이 성소수자임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구체적 멘트까지 안내돼 있다.

'동성애혐오성 괴롭힘 없는 학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2013. (이미지 출처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홈페이지)<br>
'동성애혐오성 괴롭힘 없는 학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2013. (이미지 출처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홈페이지)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날 성소수자들과의 연대를 위해 가톨릭교회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의 정기 모임에 참여하고, 성소수자들과 성경 나누기, 미사 등을 함께하는 등 사제, 수도자, 신자 개인 간 연대는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제도 교회의 역할은 미약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성소수자들과의 관계 맺음을 돕는 안내서, 성소수자 사목부 설치 등을 제안했다.

경동현 씨는 “개인 간 연대는 좋은 첫걸음이 될 수 있지만 교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도 성소수자 사목을 위한 메뉴얼 같은 장치들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정선 씨도 유럽 교회 등에는 이미 성소수자에 대한 안내서가 갖춰져 있다면서, 한국 교회에서 성소수자는 여전히 투명인간이다. 한국 교회도 소외된 이들을 찾아다닌 예수의 마음으로 성소수자 친화적인 안내서를 만든다면 교회가 성소수자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사인이 될 것이고, 성소수자 당사자들도 뿌듯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동일 신부(의정부교구)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고 성소수자 사목부가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신학교 교육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가 매우 적어 신부들이 잘 알지 못한다”면서, “신학교에서부터 체계적 교육과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 또 교구별로 관심 있는 사제들부터 협력하면서 인식 전환을 위한 작업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서시몬 신부(마산교구)는 “성소수자들의 입장에서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크지만 동시에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위로나 죄인이 아니라는 확신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면서, “이제서야 성소수자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아는 것이 없지만 이 자리를 통해 알게 된 것처럼 좋은 영상자료나 책들로 청년들과 함께 배우며 나누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경제적으로 취약하거나 어려움을 털어놓을 데가 없고, 가족 등 주변인조차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가진 상황에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 등에게 교회가 ‘성소수자 부모모임’ 같은 통로가 돼 주길 바란다는 의견, 수녀로서 동료 수녀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는 7월 중 열릴 예정인 서울퀴어축제에서는 가톨릭교회의 부스도 마련된다.

이번 세미나는 우신연이 매달 마지막 화요일 저녁 진행하는 줌 세미나로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6월에는 '차별과 배제를 넘어선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진행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