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복음의 토착화는 지역 전통문화와 충돌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10월13일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13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에서 바오로 사도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서한의 열한 번째 교리교육을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지역문화와 전통과 충돌하지 않으며, 그동안 교회 역사에서 ‘단일문화’로의 획일화 유혹은 ‘복음화’를 위한 과정에 많은 ‘오류’를 일으켰다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에게 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는 우리가 지켜온 문화와 전통과 결코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류에게 ‘새로운 자유, 해방시키는 새로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복음 토착화에 모든 은사와 힘이 있습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살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문화를 취하지만 이는 그 문화와 함께하는 토착화의 덕분입니다. 그러나 지역문화 속에서 선하고 참된 것을 존중하면서 구세주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하나의 문화적 모델’을 강요하려는 복음화에서 많은 오류가 일어났습니다. 획일성은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전체 인구의 문화적 전통을 수반하는 수많은 지역적 표현의 풍부함을 박탈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는 은총으로 무상의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성 바오로는 우리에게 자유를 상기시키면서 서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생명은 모든 사람과 문화를 환영하도록 우리를 열어야 하며 동시에 ‘모든 사람과 문화를 더 큰 자유로’ 열어야 합니다. 사실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는 갈라티아서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유대인이나 이교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통해 활성화되는 믿음'입니다"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 지역에 도착한 근본주의자들은 바오로를 비방하면서 그가 ‘사목적 기회주의’. 즉 그의 가장 엄격한 종교 전통에서 받는 요구를 최소화하면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이 입장을 취했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참신함’을 공격했습니다. 오늘날 근본주의자들의 담론도 마찬가지겠죠?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역사는 항상 반복됩니다. 모든 복음주의적 새로움에 대한 비판은 우리 시대의 것일 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이러한 비판에 용기 있게 대응하면서 자신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섬기기를 원하노라”며 자신은 사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하느님의 동의를 구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강조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데살로니카 교인들에게도 자신은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말을 한 적이 없고 ‘인간의 영광을 구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은 바오로 사도 자신의 사상에 깊이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은 문화와 전통의 핵심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새로움과 순수함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를 위해 얻은 자유는 우리가 받아온 문화와 전통과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의 새로운 자유, 해방시키는 새로움을 문화에 도입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세례를 통해 얻은 해방’은 우리에게 하느님 자녀들의 완전한 존엄성을 얻을 수 있게 해줍니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적 토대에 잘 뿌리를 두고 있는 동시에 우리 자신을 엽니다. 모든 문화에 침투하여 존재하는 진리의 씨앗을 인식하고 발전시켜 그 안에 포함된 선을 충만하게 하는 신앙의 보편주의를 지향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각 민족의 다른 전통에도 충만함을 가져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살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문화를 취하지만 복음의 토착화의 진정한 의미는 ‘그 지역 문화와 함께 한다’입니다. 그러나 '문화에서 선하고 참된 것을 존중'하는 복음화 방법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만의 삶의 모델이 가장 진보되고 가장 매력적인 것처럼 강요하고 싶은 유혹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복음화의 역사에서 단일한 문화 모델을 강요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실수가 있었습니까! 삶의 규칙으로서의 획일성은 그리스도교적이지 않습니다! 통일은 아닙니다! 때로는 폭력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고집했습니다. 우리는 전쟁도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교회는 전체 인구의 문화적 전통을 수반하는 수많은 지역의 문화적 풍부함을 박탈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자유와 정반대입니다!

16세기 중국에서 선교한 마태오 리치 신부님과 인도의 드 노빌리 신부님의 사도직 방식의 긍정적인 예를 “그들은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다”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커다란 오류입니다. 그분들은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기쁨과 희망’에서 회상하듯이, 그리스도는 성육신으로 ‘모든 사람과 일치’하셨습니다. 따라서 각 개인의 문화적 기원을 존중하고 어떤 우세한 문화에 의해 지시되는 어떤 의무도 제시되지 않는 자유의 공간에 그들을 배치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자신을 가톨릭이라고 부르고 가톨릭교회라고 말하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다른 그리스도교인들과 구별하는 것은 사회학적 교파가 아닙니다. 가톨릭은 ‘보편적’이라는 뜻의 형용사입니다. 가톨릭, 보편성. 보편교회입니다. 즉 가톨릭은 그리스도께서 만인을 위해 태어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교회 자체가 본성상 모든 시대, 모든 민족과 문화에 대한 개방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문화는 ‘본성상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며, 오늘날 점점 더 발전하는 기술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큰 문화적 변화의 시기에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지난 세기에 행해진 믿음에 대해 말하는 척할 수 없습니다. 이는 새로운 세대가 이해하지 못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는 삶과 문화에 대한 정적인 비전이 아니라 역동적 비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의 소유를 주장하지 않고 소중히 간직할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각 사람이 자신의 충만함을 향한 끊임없는 여행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우리는 계속되는 ‘탈출의 순례자 상태’에 있습니다. 은총에서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를 향한 여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선물로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노예 상태에서 무상으로 해방시켜 주셨고, 우리를 완전한 자유 가운데 걸을 수 있는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교종, 새 복자 4명과 가경자 4명 교령 승인”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13일 오전 바티칸 시성성 장관 마르첼로 세메라로 추기경을 접견하고 요한바오로 1세 등 복자 후보 4명에 대한 기적을 승인하고 가경자 후보 4명을 승인하고 이를 공포할 권한을 부여했다. 각 후보자들에 대한 프로필.

복자로 추대될 요한바오로 1세 루치아니 교종은 1912년10월17일 이탈리아 카날레 다고르도에서 태어나 1935년 사제로 서품된 후 1958년 베네토 교구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1973년3월 바오로 6세 임명으로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그는 1978년 8월26일 바오로 6세가 사망한 후 콘클라베에서 교종으로 선출된 후 재위 33일 만에 급서했다. 1978년9월28일 밤 갑자기 사망한 요한바오로 1세는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방으로 가져온 수녀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는 짧은 재위기간 단순함과 겸손함, 가장 작은 자를 옹호하는 말, 복음적 미소로 수많은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싸고 많은 이론과 음모론이 책과 영화로 제작되었다. 사건을 종결짓는 죽음에 대한 문서화된 연구는 시복 절차 부주관자 스테파니아 팔라스카가 서명했다. 고인에 대한 거룩함의 명성은 매우 빠르게 퍼졌으며, 많은 사람이 그의 중보를 청하는 기도를 드렸으며, 이번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전체 주교들은 사려 깊은 과정을 거쳐 2011년7월23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일어난 한 소녀의 치유가 33일 동안 요한바오로 1세의 전구로 일어난 기적임을 인증했다. 따라서 요한바오로 1세 교종은 이제 복자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프란치스코 교종의 시복식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다른 복자 후보 2명은 1600년대의 선교사와 복음 전파자들이다. 아르헨티나의 페드로 오르티스 데 사라테는 1626년6월29일 태어나 17살에 부유한 여성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다. 그는 아내가 사망한 후 사제직에 대한 소명을 느끼고 165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의 생애는 원주민들 사이에서 열렬한 사도활동, 기도에 대한 헌신, 거룩한 전례와 성음악에 대한 관심과 가난한 자와 병자를 위한 성사에 집중되었다. 그와 함께 예수회 사제라고 공언한 후안 안토니오 솔리나스 신부는 1683년10월27일 원주민들의 신앙에 대한 증오로 사망했다. 그는 평신도 18명과 함께 원주민 지역에 있었고, 그들 중에는 개종한 원주민도 있었다. 그들은 토바와 모코비에스 부족에 속한 원주민들에게 공격을 받았으나 미사를 계속했다. 그들의 몸에 폭력과 고문의 흔적이 남았다.

후안 안토니오 솔리나스는 누오로 지방에서 태어나 1663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을 향한 그의 선교 소명과 첫 번째 사도직 분야는 파라과이였으며 그곳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사도적 열성과 자애로 두각을 나타냈다. 1683년에 그는 피에트로 오르티스 데 사라테와 순교의 죽음을 공유했다. 당시 많은 부족이 서로 전쟁하고 있었고, 복음의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선교사들이 그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원주민들의 ‘믿음의 증오’(Odium fidei)는 이들을 살해한 사람들 행동의 중요한 동기였다. 이들과 함께 새 복자 후보에 오른 마리아 베레니체 두케핸커 수녀는 1898년8월14일 콜롬비아 살라미스에서 태어난 후 도미니코 수녀회에 입회해 수도생활을 시작했으며, 1943년5월14일 메데인 대주교의 허가를 받아 수태고지 수도원 설립의 기초를 닦고 장상이 되었다. 그녀의 중재로 인한 기적은 2004년 심각한 건강상태로 병원에서 마리아 베레니체 수녀의 중보기도를 청한 젊은 콜롬비아인에 관한 것이다.

 

“가경자로 선포될 수녀 2명과 사제 2명”

첫 번째 막달레나 수녀는 1898년4월26일 파리에서 창설된 예수의 막달라 마리아 수녀회 창립자다. 그녀의 이야기는 복자 샤를 드 푸코와 얽혀 있다. 그녀는 샤를 드 푸코의 전기를 읽고 충격을 받았지만 허약한 건강으로 분별력이 손상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의사의 권유로 자신의 상태에 적합한 곳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하고 알제리로 이주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소명으로 구별했지만, 또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부드러움의 표시로 관상생활의 필요성을 크게 느꼈다. 1947년 예수의 작은 수녀회가 승인되었고, 막달레나 수녀는 특히 중동에 작은 관상공동체를 전파하는 데 전념했으며 일치운동이 우선순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미래의 교종 바오로 6세와 요한바오로 2세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복자 샤를 드 푸코에게 소중한 표현인 "예수님은 불가능의 주인이십니다"라는 표현은 그녀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자주 좌우명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엘리자베타 마르티네즈 수녀도 건강이 위태로웠지만 여러 교종의 격려를 받아 산타 마리아 디 루카 수녀원 창립과 자선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1905년3월25일 이탈리아 레체 지방 갈라티나에서 태어난 그녀는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 미국에 수많은 공동체를 설립했으며 1946년에는 수도회와 수련회 본부를 로마로 옮겼다. 그녀의 믿음은 성체조배에 의해 자라났고, 그녀는 특히 불평이나 낙담하지 않고 계획을 수행할 주님의 때를 신뢰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기도와 함께 동행하면서 용서한 몇몇 자매들에게 중상을 입었다.

가경자 선포를 기다리는 디에고 에르난데스 곤살레스 신부는 1915년1월3일 스페인 자바리 누에보에서 태어난 교구사제로 내전과 완전한 종교적 박해 속에서 살았다. 그는 신학생 시절 반란군의 방화로 인한 본당 화재 속에서 성체를 구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오리우엘라와 안달루시아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당했다. 종교의 자유가 회복된 1940년6월9일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알리칸테 사제의 집 관장이 되었다. 그의 하느님 사랑의 미덕은 다른 사람들, 특히 병자들과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에 대한 완전한 가용성으로 그의 삶 전체를 형성했다. 이를 위해 그는 또한 교구에 영화관을 만들었으며, 읽고 쓰는 법을 배워야 하는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다.

또 다른 가경자 후보 주세페 스폴레티니 신부는 1870년8월16일 치비텔라(현재 벨레그라)에서 태어나 1894년9월22일 팔레스트리나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프란체스코회 영성에 매료된 그는 사역 첫 해 산 프란체스코 리파 성당에서 화해의 성사에 지칠 줄 모르고 헌신했다. 경건하고 기도하는 사람인 그는 1944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자들에게 근면하고 자선적 삶을 살도록 권고했다. 특히 고해성사에서는 피곤하고 지쳐도 언제든지 사람들을 맞이하는 자비를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는 나치와 파시스트에게 체포될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가난한 이들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교회를 건설합니다.”

교종, 성 요한 안티다 투레 사랑의 수녀회 총회 참석 수녀들 격려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11일 프랑스에 본원을 둔 성녀 요한 안티다 투레 사랑의 수도회 21차 총회에 참석한 수녀들을 접견하고 연설을 통해 그들의 자선활동에 감사를 표했다. 교종은 총회에서 새로 선출된 총장을 환영하고 전임 총장수녀의 노고를 치하했다. 연설 내용.

여러분이 새로 선출한 총장수녀님을 환영하면서 총장님을 중심으로 ‘조용한 가운데 유익한 봉사’를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의 바티칸 방문이 시노드 개막과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우리가 교회로서 함께 ‘공동합의체’를 성장시키려는 약속은 봉헌생활에 대한 강력한 동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과 같은 ‘봉헌된 여성’들은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과 함께 걸으며 사명을 나누면서 자신들만의 특별한 공헌을 했던 성경에 기록된 여성들의 존재에 대한 연장선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전체 교회 시노드 여정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시노드에 대한 여러분의 기여는 무엇입니까?” 사실 여러분 수도원 카리스마 주제에 답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지만 이러한 질문에 짜여진 정답은 없습니다.

이번 여러분의 총회 주제는 ‘마르타의 관심과 마리아의 경청’으로 베다니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이 두 여성은 예수님과 열두 사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제자들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복음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여성으로서, 세례를 받은 예수님 제자로서, 여러분이 교회 안에 살아 있는 존재이며, 친교와 선교에 참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여러분 총회 주제인 ‘관심과 경청’이란 단어는 훨씬 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베다니의 성 마리아와 마르타 모범을 따라 진정한 관심과 경청에 성공한다면 계속해 전체 교회의 여정에 귀중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가난한 이들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서 우리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 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자매들 역사를 생각하면서 노인, 병자,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고, 어린이들에게 가까이, 마지막은 하느님의 자비와 긍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교회를 세우며 사랑의 길인 그리스도의 길을 걷게 됩니다. 가난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교회를 건설합니다. 하느님은 항상 이렇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만큼 우리는 하느님을 닮은 목자가 될 것입니다. 항상 친밀함, 항상 동정심, 항상 부드러움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새로 선출된 총장님을 중심으로 여러분의 활동이 ’고요하고 유익한 봉사‘가 되기를 바라며, 퇴임하는 총장님과 평의회 수녀님들의 노고를 치하드립니다.

 

교종, 사르키샨 아르메니아 대통령 접견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11일 아르메니아 아르멘 사르키샨 대통령의 예방을 받고 환담했다. 교종과 아르메니아 대통령은 약 40분간 만남에서 바티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고대 그리스도교 전통의 나라 아르메니아와의 양국 관계 발전과 강화에 대한 만족감을 공유하면서 국제정치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아르메니아 사르키샨 대통령은 아르메니아 카펫과 나렉의 성 그레고리우스를 묘사한 그림, 아르메니아 교회의 미니어처 책을 교종께 선물하고 교종은 2021년 평화메시지, 사도적 권고와 회칙 모음집과 ‘꽃이 만발한 사막’이라는 그림을 선물했다. 사르키샨 대통령은 교종과 만난 후 국무장관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폴 리차드 갤러거 국가관계 장관과 함께 회담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