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은 가능해야, 그러나 시설이라는 안전장치도 필요"
"중증 발달장애인, 그 가족과 연대할 것"
“장애인 탈시설이 아닌, 탈시설 장애인 자립지원 로드맵의 방향에 반대합니다.”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가 보건복지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 내용을 우려하며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번 입장문은 유경촌 주교(사회복지위원장)와 전국 15개 교구(군종교구 제외), 남녀 수도회 연합체 내 사회복지 기구 대표들이 연명했다.
입장 발표에 앞서 김봉술 신부(사회복지위원회 총무)는 입장문 취지에 대해, 지난 8월 24일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한 사회복지위원회 차원의 토론회 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 검토를 거쳤으며, 가톨릭 사회교리 정신과 원칙 등에 따라 중증 발달장애인 및 그 가족과 연대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김 신부는 이러한 결정에 따른 사회복지위원회의 반대 입장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탈시설화에 대한 실효성과 현실성 있는 방안 마련, 해당 정책과 법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당사자, 가족, 사회복지 현장 종사자 등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함께 논의, 진행하기를 촉구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부에 ‘유엔 장애인 권리 협약’이 천명하고 있는 인간 존엄성 정신과 가치를 올바로 해석, 적용, 실천할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위원회는 입장문에서 “장애인 탈시설화 이전에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방안 제시, 장애인의 장애 특성, 생애 주기 등에 따른 선택권 보장과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 수립, 특히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폭넓은 의견 수렴과 새로운 탈시설 로드맵 구축”을 정부에 촉구했다.
위원회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여전히 지역 내 특수학교, 주간보호시설, 장애인 자립홈 등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면서,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적극적 대처나 구체적 대응 방안 없이 탈시설화라는 미명 아래 상시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과 가족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중증 발달장애인의 경우,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그룹홈, 마을 공동체, 30인 이상 공동 생활시설, 요양센터, 집중 치료 센터 등 다양한 생활 형태를 선택하는데 장애인 가족들의 입장과 처지, 가족의 유무 등은 오히려 시설 이용이 절박한 권리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온전한 자립이 불가능한 처지의 장애인과 그 가족 입장에서는 “비현실적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또 위원회는 연대하기로 결정한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들의 의견 수렴을 강조했다.
이들은 “전국 장애인 거주 시설의 80퍼센트는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숫자는 전체 발달장애인의 10퍼센트에 불과하다”며, “시설 밖 90퍼센트의 발달장애인 가운데 최중증 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봐줄 시설이 없어 가족 돌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가정에 대해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10퍼센트가 머무는 시설을 없애려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우리는 정부의 사회복지정책 수립과 법률 제정이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이뤄지고, 그러한 정책이 정의롭고 합리적으로 집행되기를 기대한다”며, “향후 탈시설 로드맵을 비롯한 사회복지정책 수립과 추진, 관련 법률 제정 및 개정 과정에서 당사자와 가족, 현장 종사자 등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논의, 진행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기수 신부(수원교구)는 로드맵의 기본적 문제는 “강압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는 것”이라며, 일례로 시설 전수조사와 문제 발생시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특히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와 더불어 자립해서 살아가야 한다면서도 지체장애와는 다른 발달장애의 경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탈시설, 자립할 것인지 명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사회복지 시설전수조사와 관리 등을 중앙지원센터가 중앙집중적 관리를 한다는 것이 로드맵의 프레임인데, 이를 누가 하느냐도 사실상 문제라고 말했다. .
이병훈 신부(대구대교구)는 시설 규모를 축소한 뒤 소규모 시설이 신설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부분을 지적했다. 이 신부는 “교회에서 운영하던 30인 이상 시설을 이미 30인 이하로 축소했고, 이는 보다 소규모에서 더 적절한 돌봄을 받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축소 뒤 다른 소규모 시설이 생기지 않는다”며, “입소를 원하는 이들도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해당 지자체에 등록해 입소 심사와 절차를 거치는 동안 당사자와 부모들은 고령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서울시 탈시설 시범사업 과정에서 이미 인권유린이 있었다는 공익제보가 있었다”며, “그럼에도 돌봐줄 가족이 없는 이들을 무연고자로 내보내고, 아동시설의 아동들을 내보내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탈시설인가”라고 물었다.
또한 장애인들이 시설 거주를 원하는 것도 선택권에 따르는 것이고 시설 장애인들이 밖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원하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다만, 정부의 탈시설화는 사회복지의 지역화, 개별화, 분산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술 신부도 로드맵의 방향성이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을 보탰다. 김 신부는 노인복지 경험을 통해 노인복지의 주체(건강보험공단)와 현장 사이의 갈등이 큰 문제가 되고 있고, 오히려 노인들의 삶의 질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장애인 탈시설은 장애인 자기결정권의 개별화, 대형화 시설의 소규모화와 지역 분산이다. 하지만 정부의 로드맵은 이와 다르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유경촌 주교는 “탈시설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목표의 의도, 지향은 시설에 사람을 넣고 획일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분산하고, 개개인이 온전히 존중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주교는 “교회가 현재 제시된 로드맵을 반대하는 이유는 장애인의 다양성 인정과 구분, 구체적 상황 파악 없이 획일적이고 강제적이기 때문”이라며, “탈시설은 가능해야 하고, 원하는 장애인들은 적극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지 않은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탈시설 반대가 아닌 로드맵 방향에 대한 반대인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