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기획 : 문헌 밖으로 나온 공동합의성2 - 평신도의 책임]

# 1.

지난 5월 한 교구 게시판에 올라온 사건의 내용이다. 본당 신부의 지나친 자기중심적 사목 태도로 신자들의 불만이 생겨났다. 신자들은 이에 대한 불만을 본당 신부에게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불만은 점점 높아져, 일부 신자들은 신부 교체를 요구하는 요청서에 신자들의 서명을 받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신자들이 성전에서 막말을 내뱉는 상황이 벌어졌다. 서로 선을 넘는 상황이 되자 외부로 번졌던 다툼은 잠시 멈췄고, 교구 차원에서 사태 정리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 2.

한 본당에서는 새로운 주임 신부가 부임하자마자 사목회를 해체했다. 하지만 1년여 지난 뒤, 본당 회계 문제가 생기자 일의 수습을 위해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 회장에 임명했다. 사태가 해결되자 주임 신부는 임기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회장을 해임했다. 사목회 임면권은 본당 신부에게 있기 때문에 이 상황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 3.

한 본당의 사목회. 해당 본당에 오래 다닌 이들로 구성된 사목회와 이른바 힘 있는 신자들은 본당 신부가 원칙을 무시하고 본당 재정을 마음대로 지출했지만 단 한 번도 항의하거나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뒤, 자신들의 신앙생활에 불편함을 주는 본당 신부가 오자 갈등을 빚었다. 본당의 오랜 역사를 지켜본 이들은 본당 신부의 독선적 행동은 문제지만 일부 신자 간에 형성된 권력 역시 자신들의 이익대로 판단하고 대다수 신자의 의견과 상관없이 행동한다고 지적한다. 신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옳지만, 일관성도 원칙도 없다는 것이다.

# 4.

최근 본당의 사목위원을 맡게 된 A씨는 그동안 본당 인건비가 교구 방침 외에 추가 지출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래전부터 좋은 의도로 본당 차원에서 인건비가 지출된 것은 이해하지만 교구 방침과 행정적 차원에서 맞지 않을뿐더러, 이 결정 과정이나 본당 재정 지출 상황이 신자들과 공유되고 있지 않은 점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A씨는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다른 본당의 사례를 찾아봤지만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문제 삼은 이들만 본당을 떠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공론화할 생각을 접었다. A씨는 항의나 지적이 아니라 단지 본당 운영이 합리적인지 물어보는 것조차 저어되는 상황이 무척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취재를 통해 파악한 본당공동체 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들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본당공동체에 때로 분열과 갈등이 생기는 것은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이며, 어쩌면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갈등 상황에 대해 서로 입장을 나누고 받아들이는 가운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화해와 성장의 과정이다. 하지만 그 자체로 완결된 교회이자, 기초공동체인 본당에서 교회의 본래 모습인 친교와 화해, 식별, 일치는 흔한 사례가 아니다.

교회로부터 주어진 본당 사제 고유의 사목적 권한은 경우에 따라 소통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 되고, 신자들의 의사를 바탕으로 자문역을 맡은 사목회는 사제의 대리기구가 된다. 주체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본당 봉사자들은 사라지고, 신자들은 자신들이 본당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공동합의성’이라는 직관적이지 못한 단어 탓인지 이 개념은 무척 어렵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공동합의성은 다름 아닌, 하느님 백성인 모두가 교회의 본질을 살기 위해 각자의 직분을 따로 또 같이하며 함께 걸어가는 과정, 태도를 말한다. 직분에 상관없이 모든 공동체 구성원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러므로 공동체 안의 권리와 책임은 모두의 것이다. 공동체, 연대, 식별, 상호 권리와 책임 의식을 상실하는 교회는 맨 먼저 무슨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른 채, 모두가 피해자로 상대방의 탓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이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방법, 아니 벗어나야 한다는 의지를 정말 찾을 수 없을까. 교회 내에서 여러 의견이나 목소리로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다면, 바로 그것이 공동합의성이 필요한 지점이다.

이 지면에서는 그동안 ‘공동합의성’에 대해 교회 내에서 논의하는 자리에서의 의견과 문헌, 고찰 내용을 통해 하느님 백성의 공동책임성, 그 가운데서도 평신도의 책임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공동합의성, “우리 이 길을 함께 갑시다!”
공동책임성과 함께, 공동책임성 안에서 - 평신도의 책임과 그 근거

“하느님 백성 전체는 본디 그 공동합의적 소명으로 부름을 받는다. 모든 신자가 지니고 있는 신앙 감각, 공동합의성을 실현하는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식별, 그리고 일치와 다스림의 사목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권위 사이의 순환적 관계가 공동합의성의 역동성을 나타낸다. 그러한 순환적 관계는 세례의 품위와 모든 이의 공동 책임성을 촉진시키고, 성령께서 하느님의 백성 안에 부어 주신 은사들의 현존을 존중하며, 로마 주교와 합의체적이고 교계적 친교를 이루는 목자들의 특수한 직무를 인정한다.”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 72항)

고준석 신부(서울대교구)는 2009년 낸 논문 “가톨릭 본당에서의 평신도들의 유기적 협력”에서 평신도들의 사명, 위치를 역사, 법률, 사목적으로 접근했다. 고 신부는 우선 평신도 사명의 고유한 특성에 대해, “평신도들이 본당이나 다른 사목적 구조 안에서 교회 공동체의 이름으로 활동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협력의 기능, 책무 등의 중요성을 없앨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본당은 신자들과 성품 직무의 통합으로 이뤄진 유기적 구조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인 본당 안에는 신자들의 희생과 봉사가 존재하며 수품된 사목자의 분야만이 아니라 평신도와 함께 하는 교회의 사도직 사명이 유기적 공동 주체 안에 이뤄진다”고 말한다. 또 이와 함께 “유기적 공동주체”인 본당은 선교 사명을 위해 안과 밖에서 활동해야 하는데, 그러한 활동은 사목적 특성을 지닌 본당 주임 신부에 의한 본당 내 활동, 그리고 본당에 속해 있는 평신도들이 본당 밖에서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활동이 있다. 이 두 가지는 각각의 생활, 사목 영역에서 유기적으로 이뤄진다고 봤다.

고 신부는 평신도의 법률적 위치에 대해서도, “사목 구조 안에서 평신도들이 부수적 역할을 지녔다는 사실은 성직자에 비해 평신도들이 자연스레 보조적 위치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며, 수동적 역할을 지녀야 한다는 것도 아니”라며, “오히려 평신도들이 사목자의 역할을 제외하고 주체로서 능동적 참여가 요구된다. 또 오늘날까지 신자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평신도들의 능동적 참여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고 신부는 교회사적으로 평신도와 사제들은 존재론적, 법률적 이분법으로 취급됐고, 이는 영신적 질서와 세속적 질서로 대조됐다면서,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을 거둬내고 교회의 모든 신자들을 하느님 백성으로 바라봤다. 이에 따라 평신도는 고유한 특성을 세속성으로 표현하면서 그들의 세속 활동은 그리스도교 사명 수행을 위한 자리임이 강조됐다”고 말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2019년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최현순 박사(서강대 전인교육원)는 “공동합의적 교회 실현을 위한 신학적 성찰”을 주제로 한 발표 내용에서 “유기적 공동책임성”에 대해 말했다.

최 박사는 공동합의성 개념이 드러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르면, 하느님 백성이 공통의 품위를 지녔을 뿐 아니라 공통의 활동을 하도록 부름받았다고 강조된다. 또 공동의 품위를 가지고 공통의 활동을 하지만, 직무는 다양하고 다르며, 은사 역시 다양하게 존재한다. 각 지체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와 직분에 따라 공통의 목표를 향해 각자의 몫을 하지만, 그 다양성은 분열이 아니라 일치를 이룬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하느님 백성 구성원들 전체의 ‘공동책임성’을 논할 수 있는 근거다.

이러한 교회론적 당위성 외에 최 박사는 사도직 활동에 있어, 모든 지체의 협력, 특히 평신도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지역교회(본당)는 하느님의 교회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장으로, 지역교회가 구원의 성사로서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삶의 자리를 파악하는 것이 절대적 요소라고 강조한다. 이는 바로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해석, 식별하는 것으로, 그에 따라 복음 선포를 위한 적합한 방법을 모색하는 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복음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 즉 평신도들은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해석하고, 식별하고, 또 적합한 해결책을 찾아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지적, 또 복음화의 구체적 실현인 사도직 활동에 있어 목자와 평신도 간의 긴밀한 협조도 필수적이라는 지점에 대해 한민택 신부(수원교구)는 “공동합의성이 가장 먼저 발휘되어야 할 지점은 바로 이곳이며, 현대 한국 사회 안에서 가톨릭 신앙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현재 교회가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 평신도들의 적극적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신부는 “공동합의성은 신앙의 본질과 부합하며, 또한 그리스도 신앙 진리의 역사성에서 비롯되는 문제”라며, “계시는 식별행위를 통해서만 전달되고 신앙도 교회도 역사 안에서 구체화된다. 교회는 상황 변화에 따라 존재와 삶의 방식을 계속 식별해야 하며, 현재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에 대한 다각적 분석은 공동합의성 실현을 통해서만 진단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합의성이 관념에만 머물지 않고 진정한 희망의 표지로 자리매김 되기 위해서는 사도들의 삶의 방식과 원리를 우리의 것으로 해야 한다면서, “공동합의를 위한 제도적 구비에 앞서야 할 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자 개개인이 성령을 통해 영적 활기를 갖고, 신앙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서울 평협 세미나에 참석한 평신도들의 경험과 의견을 다시 들여다보자.

이병욱 씨(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평신도사도직연구소 연구위원)는 본당 내 공동 책임 의식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사목회도 제 역할을 못 하는 이유의 하나로 사목평의회 구성 문제를 짚었다. 그는 “사목평의회의 설립 현황은 한 지구 13개 본당 가운데 설치되지 않은 본당이 2-3개인 실정이며, 구성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구성 인원에서 다양한 신분, 문화, 연령층을 고려한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사목협의회 구성은 사제나 사목회 일부 위원들의 친목 관계, 특정 단체, 특정 구역 신자 등으로 구성하거나 본당 구성원들에 대한 충분한 파악 없이 전임 사제나 사목위원의 의견만 반영돼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사목협의회 운영에 대해서도 그 역할과 임무의 충실성을 보면 매우 실망적인 수준이며, 사목자 자문역에 그치는 경우 사목회의 자체가 위축되고 활발한 의견 개진이나 소통이 이뤄지지 않게 되는데, 자문을 넘어 본당 내 의결사항으로 수용되는 경우에는 사목위원의 참여도가 훨씬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병욱 씨는 “공동합의성 실현을 위한 환경조성이 먼저 필요한데, 무엇보다 상호 경청의 태도가 중요하다”며, “다수결의 원리가 아니라 성령의 소리에 목자와 신자가 하나 되어 귀 기울이고 함께 식별해 저마다의 몫을 하는 것이다. 이는 지속적 교육과 훈련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공동합의적 교회를 위해서는 우리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또 책임을 나누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책임을 나눈다는 것은 우리가 받은 은사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꼭 그것이 성직 직무에 우리가 뭔가를 전가하거나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것을 서로를 위해 나누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합니다.”(하유경 씨, 상도동본당, 한국CLC회원)

하유경 씨는 “하지만 권한이 있어야 그에 대한 책임도 있다”며, 앞으로 결정에 대한 권한을 어떻게 함께 질 것인지 활발히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공동합의적 교회가 타협과 화합주의로 되는 것을 경계하려면 먼저 그 장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한쪽에서 결정권을 갖는데 다른 편에서 다른 주장을 한다면 수용과 반영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합의적 식별이 문화를 복음화하는 새로운 과정을 돕는 것이라면, 문화를 복음화하는 직접적 장에 있는 이들은 바로 평신도이며, 그들이 공동식별의 장에 있는 것은 교회의 선익에 분명한 도움을 줄 것”이라며, “현재 자문의 역할에 그친 평의회의 모습은 공동합의적 식별의 커다란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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