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성사 후 30여 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에어컨을 구입했습니다. 큰 에어컨이 아니라 침실에 벽걸이 에어컨 하나를 설치했습니다.
매년 안해는 “별난 남편을 만나 사서 고생한다”라고 푸념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내년 여름에는 고려합시다”라고 위로했습니다.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신념 때문에 전기를 아껴 써야 한다는 포기할 수 없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집을 떠나야 할 일이 아니면 각방을 쓴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름에는 상승하는 이상 기후로 각방을 사용해야 할 만큼 힘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밤의 숙면은 중요했습니다. 특히 안해는 사회복지사로서 공부방을 운영하기 때문에 숙면을 방해하는 무더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것 같았습니다. 창궐하는 감염병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봐야 하는 안해에게는 이중 삼중으로 고통스런 나날이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침실에만 에어컨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에어컨을 설치하고 시험 가동을 하니 작은 침실은 금방 시원해졌습니다. 기계 문명의 진보는 고집스런 저의 신념 가치를 비웃듯이 싸늘한 기운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냉기를 받으며 미래 세대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자리했습니다. 현재 세대의 안락함을 위해 지구별과 미래 세대들에게 잘못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에어컨에서 차가운 바람이 쏟아지는 것을 바라보던 안해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봉~~~ 오늘 밤부터는 따로 자지 않고 꼬옥 껴안고 자도 되겠네요.”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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