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열린군대를 위한 시민연대' 박석진 공동대표
군대의 가장 큰 문제는 '폐쇄성', 열어낼수록 변화할 것

현재 한국군은 약 60만 명이다. 국방비가 나라 전체 예산의 약 10퍼센트를 차지하며, 남성 대부분이 군대에 가고 국민 대부분이 군인의 가족이 되는 경험을 한다. 이른바 '군대 문화'는 한국 사회 각 영역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안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됐고, 군대는 그 바탕 위에 존재해 왔다. 하지만 오늘의 군대는 현재 모습 그대로 괜찮은 것일까. 끊임없는 사건과 논란은 단일 사건으로 치부해도 되는 걸까? 이 절대적 존재에 가까운 군대에 대해 말하고, 수술용 칼을 쓰면 안되는 것일까.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을 즈음해, 군대에 대한 문제의식과 고민을 바탕으로 전쟁과 폭력이 아닌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군대를 말하는 이들, ‘열린군대를 위한 시민연대’(이하 열린군대)의 박석진 대표를 만나봤다.

다음은 박석진 대표와 나눈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많은 시민들의 힘을 모아 우리의 군대를 인권과 민주적 제도가 보장되는 곳으로 나아가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는 군대로 바꿔낼 것이다.”(열린군대를 위한 시민연대 창립 선언문 마지막 문장)

창립 선언문에서 지난 70여 년간 군대가 벌였고, 또 군대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들을 언급하고 민주적 군대로 바꾸겠다는 선언을 했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에 대해, 특히 군대의 개혁이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금기에 가까운 일인데, 어떻게 이런 활동이 시작된 것인가?

2013년, 그동안 통제돼 왔다고 생각했던 군대가 정치에 개입한 사건이 드러났다. 이른바 사이버사령부의 조직적 선거 개입이 있었던 것인데. 국정원과 군대가 연계되면서 군이 정치화됐다는 정황이었다. 1987년 이후 군의 정치적 중립이 헌법에도 명시됐는데 당시 그 가치가 다시 흔들렸다고 본 것이다. 이 일을 지켜보면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이들이 군대에 주목하는 시민단체를 시작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1990년 전후, 군인과 전투경찰의 양심선언이 이어졌고, 나 역시 전투경찰로 복무하던 1991년 5월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경찰 진압에 의해 사망한 사건으로 전투경찰 해체를 요구하는 양심선언을 했었다. 당시 양심선언을 했던 50여 명의 네트워크가 있었는데 그들과 이전에 평화활동을 해 왔던 활동가 등이 참여했다.

'열린군대를 위한 시민 연대' 박석진 공동대표(왼쪽)와 신재욱 활동가. ⓒ정현진 기자<br>
'열린군대를 위한 시민 연대' 박석진 공동대표(왼쪽)와 신재욱 활동가. ⓒ정현진 기자

‘스스로 중립에 있으면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복무하는 군대’를 지향하는데, 이를 위한 여러 차원의 문제 가운데 특히 주목한 부분은 무엇인가.

군은 규모, 위상, 예산 등으로 볼 때 어마어마한 조직이다. 많은 영향력뿐 아니라 징병제인 상황에서 군 입장에서 (정상적) 남성이라면 다 겪어야 하고, 그 가족들이 함께 겪고 영향을 받는 문제다. 실질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으로 전방위의 영향을 미친다. 한 사회의 기본적 인권과 민주주의를 판단하는 두 척도는 감옥과 군대다. 두 곳의 공통점은 폐쇄적이라는 것이고 군대의 폐쇄성에 주목했다. 군대 내 폭행, 사망 사건 등은 여러 기재가 작동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저변에 있는 폐쇄성에 있다. 군대 내에서 모든 문제가 처리되고 노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폐쇄성의 또 다른 특성은 사회적 변화가 가장 늦게 침투한다는 것이다. 1987년 이후 급격한 사회변화가 있었지만, 이런 변화가 군대에는 강제적이거나 특별한 계기가 있으면 적용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유심히 들여다봐야 할 영역이 군대다. 군대가 바뀌지 않으면 다른 여러 영역이 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는 국민의 생명권, 인권, 안전을 지키려는 조직인데, 정작 조직 내의 기본권, 생명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는 군 당사자만이 해결할 문제는 아닐 것인데, 군 시스템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군 자체 자정능력은 이미 없다고 본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외과적 수술이 필요하다. 수술이란 군 내부 문제를 지적하고 드러내는데, 다른 영역, 민간의 영역이 들어가는 것이다. 폐쇄된 공간의 문을 열고 군인 외의 인력이 들어가야 한다. 이미 수차례 만들어졌던 조사와 변화를 위한 위원회 등은 해결방법이 아니다.

군대는 모든 것이 군 지휘권의 영역에서 이뤄지고 지휘관이 모두 통제해야 한다고 본다. 지휘권 영역에 법, 개인의 인권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사회 일반의 시각으로 파악하기가 너무 어렵다. 군옴부즈맨, 국방 감독관 등의 제도를 만들었고, 법도 있다. 그런데 몇 년째 실행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또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먼저 군의 문을 열 수 있어야 하고 열릴수록 변화한다고 본다.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그 규정과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식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폐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국민을 지키는 군대가 국민을 해하고, 평화를 파괴하는 도구이기도 했기 때문에 특수성을 내세울 수만은 없다. 특수성을 전혀 부정할 수 없다고 해도, 일반적 상식이 통용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열린군대는 군을 둘러싼 현재의 상황이나 문제보다 한국전쟁이나 여순사건 등 군대와 관련된 지난 역사를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어떤 이유인가?

기본 활동 방향이 군대라는 조직이라서 여러 이슈를 다뤄 왔다. 그러다가 2018년 즈음 군대 역사를 중심에 두게 됐다. 그 시작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이라는 공간이었다. 국방부 예산으로 운영하는 곳인데, 그 공간에 가 보니 문제의식이 많이 느껴졌다.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 너무 미화됐고, 피할 수 없는 폭력과 죽음 등 전쟁의 본질적 모습은 모두 빠져 있었다. 오히려 무기 체험과 같은 것은 일종의 게임과 놀이가 된다. 그런 영향력이 너무 큰데, 학생들의 수업공간으로 이용되는 만큼 편향적 역사 의식, 평화와 전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견고하게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다. 그래서 매년 6월 25일 시민들과 전쟁기념관을 방문해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한국전쟁 등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기회를 만들어 왔다. 전쟁기념관의 맥락과 다른 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한데, 군대가 아니라 민간인,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겪고 보는 전쟁이란 무엇인가.... 그런 관점에서 공부하면서 이야기할 필요를 느꼈고, 2019년 제주4.3사건 70주년을 맞았을 때, 같은 시기에 일어난 여순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 그 시작점이었다. 현재는 한국전쟁 70주년 즈음부터 시작한 강의와 대중행사의 연속선상에서 “허락되지 않은 기억”이라는 주제로 한국전쟁 사진전을 열었고, 온라인으로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한국전쟁 70년 기억사진전 바로가기)

우리나라 군대의 뿌리를 건드리는 것 같은데. 한국전쟁을 비롯해 우리나라가 겪은 전쟁의 양상은 한국군 창설과 관련이 있다. 한국군 징집제도가 법적 근거로 마련된 것이 1949년 6월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그러니 많은 청년이 강제징집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군의 태생이 그렇게 불완전했고, 전쟁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전쟁에서 민간인학살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현재 군대가 갖는 일반적 문제와 함께 역사적인 특수성이 함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2018년 10얼 열린군대가 진행한 여순사건 순례 프로그램 '학살을 거부한 군인들'. ⓒ정현진 기자<br>
2018년 10얼 열린군대가 진행한 여순사건 순례 프로그램 '학살을 거부한 군인들'. ⓒ정현진 기자

군복무제와 관련해서는 여러 부분에서 끊임없이 이슈가 생겨나고 끊임없는 논쟁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정치권으로부터 시작된 징병제와 모병제 논의도 그런데.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은 이런 논쟁에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군복무제가 정치권의 카드로 쓰이고 있는데 결코 이거냐 저거냐 같은 식으로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양비양시론은 아니지만 징병제와 모병제 모두 장단점이 있다. 현재 징병제의 경우는 군대에 가는 이들이 개인적 삶에서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문제, 그리고 장병 수가 얼마나 많으냐가 병력보유라는 국방부 입장이 반영된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병제의 경우는 이미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듯이 “과연 누가 지원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지금 군대의 모습 그대로 모병제가 된다면 또 다른 게토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징병제라면 더 많은 이들이 군대 문제에 연관이 되고 그만큼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모병제는 그냥 별개의 한 조직이 되고 국민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어떤 복무제냐에 앞서서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군대, 얼마의 병력이 필요한가, 그리고 군대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와 인구수 등이 비슷한 다른 나라의 군병력은 약 20-25만인데, 한국은 약 60만에서 인구감소분으로 50만 명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이를 정책적으로 판단을 해야 어떤 형태, 어떤 규모의 군을 유지하고 구성할 것인가의 답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감소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군복무자 기준을 낮출 뿐 총체적 정책 판단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군대는 자국의 안전, 국민의 생명권과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양상은 폭력에 기반하고 그것은 폭력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화를 모르는데 어떻게 평화를 지킬 수 있나?

군대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없기 때문에 군 내에서 폭력을 당한 이들, 심지어 자기 구성원에 대한 감수성, 공감능력, 문제의식이 없는 것은 맞다. 그러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거나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를 끼친 사람이 되고, 해결이 아니라 사건을 덮는 방식을 선택한다. 폭력에 무관심하고 무뎌지니 시끄러운 일을 외부로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태도로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군대가 더 나아지고 본분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군대가 해왔던 일, 그 과정에서 겪었던 트라우마를 더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군대의 역사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열린군대는 매년 6월 25일 시민들과 함께 전쟁기념관을 찾아 전쟁의 본질을 찾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열린군대를 위한 시민연대 홈페이지 갈무리)<br>
열린군대는 매년 6월 25일 시민들과 함께 전쟁기념관을 찾아 전쟁의 본질을 찾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열린군대를 위한 시민연대 홈페이지 갈무리)

군대에 대해서는 일상적으로 접하고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알아야 할 것은 모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 많은 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한국 사회는 유일하게 여전히 갈등을 겪는 분단 국가이고 수시로 반평화적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 내 평화운동은 활성화되지 못했다. 관련 단체들 그리고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를 봐도 가장 열악하고 어려운 분야가 평화, 군축 관련 활동이다. 스스로 위험 상황을 겪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하기 위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 이런 가치와 관련된 메시지와 이데올로기의 영향에 상당히 포섭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다 익숙한 것은 “무기를 줄이고, 힘으로 제압하는 평화가 아니라 손잡고 상생하는 평화”가 아니라 “적대감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무기와 힘이 있어야 우리가 존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 인식이다. 평화운동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군대의 폐쇄성을 걷어내고 그야말로 ‘열린’ 군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라고 앞서 말했다. 3년 뒤에 10주년을 맞게 되는 열린군대가 앞으로 만들어갈 상은 어떤 모습인가.

일단 과정과 결과도 사람이다. 함께하는 사람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그동안 상근자가 늘어 3명이지만 여전히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활동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더 많은 이들이 더 많이 일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또 내용적으로는 군대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한국군의 역사, 인권, 군민주화, 국방정책에 대한 사회적 의제 생산, 군사 기지화와 시민사회의 갈등, 군비축소, 군경제와 방산비리 문제 등 다양하고도 엄청난 무게감을 가진 이슈들이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하나 깊이 들어가되, 함께 공부하면서 유기적으로 맞물려가는 , 영역별 전문적 의제를 발산하고 생산하는 단체가 되는 것이 현재의 꿈이고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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