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환란 중에는 믿음을 갖고 주님을 찾으십시오.”

교종, 6월20일 연중 제12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20일 성 베드로 광장 발코니에서 행한 연중 제12주일 낮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이날 복음(마르 4,35-41)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다 만난 강풍과 거센 파도를 진정시킨 에피소드를 되돌아보면서 파도와 바람을 우리 일상의 시련에 비유하고 주님은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결코 ‘주님을 찾는데 지치지 않는 신앙의 은혜를 구하라’고 격려했다. 가르침 내용.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도중 갑작스러운 강풍과 거센 파도를 만나 배가 위험에 빠졌을 때 진정시키신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습니다. 강풍과 격랑에 놀란 제자들은 고물에서 잠든 예수님을 깨워 도와 달라고 간청합니다. 당시 제자들이 겪은 두려움과 당혹감은 우리 삶의 시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주님께 부르짖으면서 그분이 침묵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업이나 건강 문제의 위기에 닥치는 경우 안전한 항구가 보이지 않는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고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우리와 공유하십니다. 예수님이 잠자고 있거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이것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그곳에 계시면서 우리가 그분을 불러내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의 중심에 그분을 두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어야 할 뿐 아니라 그분 앞에 있어야 하며, 그분에게 우리 목소리를 높이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바다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주민들이 구원을 애원하면서 하느님께 울부짖는 비극적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삶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바람, 항해를 방해하는 파도를 되돌아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삶의 물결’에서 피난처, 위로와 지원을 호소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항상 어려움을 주님과 공유하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말해야 합니다. 복음에서 제자들이 깨어나신 예수님께 말하는 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접근방식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가 ‘우리 혼자서는 물 위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선원들이 하늘의 별을 보며 항해하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그분의 은혜가 믿음의 기본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방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의 유혹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 대신 우리가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어떠한 놀라운 일도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외칠 때 특별한 기도의 힘이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신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40절)는 질문은 우리에게 해당됩니다. 특히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만 집중하고 마음을 돌리지 않고 주님께 신뢰를 두지 않거나 필요한 순간에만 예수님을 깨울 것이 아니라 항상 주님을 찾고 그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데 지치지 않는 신앙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끊임없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매일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기본적인 필요를 우리 안에 일깨워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미얀마의 굶주림과 난민에 대한 열린 마음을 호소”

프란치스코 교종은 삼종기도 가르침 말미에 신자들에게 현재 진행 중인 미얀마 사태에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면서 수많은 난민과 실향민, 굶주린 사람들을 돕기 위해 도움을 호소하는 미얀마 주교들의 목소리에 동참했다. 현재 미얀마 가톨릭교회 주교들은 특히 교회와 수도원, 모스크 사원과 학교, 병원들이 중립적인 피난처로 존중받을 수 있게 되도록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교종은 이 같은 미얀마 상황을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미얀마에 평화를 가져다주기를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종은 오늘은 ‘우리가 함께 치유하고 배우고 빛난다’는 주제로 유엔 ‘세계 난민의 날’을 기념한다고 밝히면서 우리들이 ‘난민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나누고 인류가 ‘더욱 인간적인 공동체, 하나의 대가족’이 되기 위해 용감한 회복력에서 배우자고 호소했다.

 

"종신부제는 교회 봉사의 수호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로마대교구 종신부제들에게 봉사직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19일 500여 명 로마대교구 종신부제들을 접견하면서 그들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교종은 부제들은 사제나 주교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기 교회에서부터 내려온 교회의 봉사직임을 강조했다. 연설 내용.

전선을 가리지 않고 떠나는 종신부제들의 관대함은 복음의 냄새를 맡고, 그분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첫걸음을 내딛는 하느님의 겸손의 위대함을 전합니다. 가톨릭교회에서 부제는 주교, 사제, 부제의 세 단계 중 첫 번째입니다.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라틴 가톨릭교회는 종신부제를 적절하고 영구적인 직급으로 복원했습니다. 사제직을 준비하는 부제는 ‘과도기적 부제’인 반면, 사제서품 계획이 없는 부제는 종신부제입니다. 독신이나 기혼 남성들을 종신부제로 서품할 수 있습니다. 그가 결혼했다면 서품을 받기 전에 했을 것입니다. 종신부제직의 역할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부제는 ‘신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봉사를 위한 직분입니다. 과거의 개념에서 부제를 신권에 대한 구절로 축소시킨 이 차이가 하느님 백성보다 제사장 계급을 '위'에 두는 성직자의 재앙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성직주의’의 악몽이 계속될 것입니다.

부제들이 하느님 백성을 섬기기 위해 헌신하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의 몸 안에서 누구도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높일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교회에서는 ‘낮추는 논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셨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자신을 낮추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자신을 가장 작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도록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랑은 섬기는 것이고 섬기는 것이 통치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신 것을 기억합시다. 권위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봉사에서 나옵니다. 부제는 교회에서 봉사의 수호자이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의 진정한 ‘권위’의 수호자입니다. 아무도 봉사의 힘을 넘어서는 안 됩니다.

종신부제들이 이러한 차원에서 봉사하지 않으면 그들의 사역은 열매를 맺지 않는 ‘불임’이 되어 서서히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부제들은 ‘사랑으로 타오르고 겸손과 기쁨으로 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전선을 따지지 않고 자신을 보내는 부제의 관대함은 복음의 냄새를 맡으며 하느님에 등을 돌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겸손의 위대함을 보여 줍니다. 사제직 성소자가 감소함에 따라 부제의 대리 임무에 대한 헌신이 요구되지만 그것이 부제의 특정한 성격을 구성하지는 않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와 마찬가지로 종신부제들은 무엇보다 ’자선과 행정직‘에 헌신한다고 ​​강조합니다.

현재 로마대교구에는 본당과 구별되는 7개 조직이 도시 지방자치체 전체에 분포되어 있으며, 부제들은 전체 그리스도교 공동체, 특히 '이들 중 가장 적은 것'을 대신하여 광범위한 사역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말했듯이 그들 중 누구도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로마대교구 성 스타니슬라우스 교회와 까리타스 및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다른 지역의 디아코니아(그리스어로 '봉사')와 함께 부제직의 고대 전통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부제는 결코 자신의 지위를 잃지 않고 '반 또는 준사제'와 멋진 제대 복사의 역할을 하겠지만 아무도 배제하지 않고 돌보는 종이 되어 주님의 사랑이 사람들 삶에 영향을 미치도록 구체적인 방식으로 보장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부제의 영성은 '내부 가용성'과 '외부 개방성'으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 스스로 '내면의 마음'에서 구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의제를 중심으로 삶을 돌아가게 하지 않고 “예”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 특히 소외된 사람들,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밖을 향해 자신의 문을 활짝 여십시오. 저는 부제들에게 세 가지를 기대합니다. 그들은 공작새처럼 과시하거나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고 겸손해야 합니다. 둘째, 좋은 배우자,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가 됨으로써 '진정한 단순함에서 뻗은 손'을 발견하는 어려움에 처한 부부에게 희망과 위로를 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멀리 있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가난한 사람들과 먼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문을 두드리는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파수꾼'이 되는 것입니다.(역자 주: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종신부제는 현재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의 모든 나라를 포함한 특히 사제가 부족한 전 세계 교회에서 광범위하게 채택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약 6만 명의 기혼 종신부제들이 사제를 도와 사역하고 있다.)

 

교종, ‘유럽​​연합 창시자’ 로버트 슈만 등 10여 명 가경자 선포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19일 바티칸 시복시성성 장관 마르첼로 세메라로 추기경이 상신한 여러 명의 시복 후보자들의 ‘가경자’ 선포를 위한 법령을 승인했다. 여기에 포함된 사람들 중에는 프랑스 출신 정치가로 유럽연합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로버트 슈만(1886-1963)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소련군에 의해 순교한 10명의 폴란드 수녀들과 다른 여러 거룩한 남녀의 영웅적 미덕도 공식적으로 인정해 ‘가경자’로 선포했다. 이와 함께 교종은 다른 가경자 4명의 시복을 위한 절차와 미래 가경자 11명의 절차를 추진하는 법령을 공표하도록 승인했다.

폴란드 수녀들은 1945년 소련군 침공 중에 신앙을 증오하는 소련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병자들과 노인들을 돌보는 봉사를 하던 그들은 1945년2월과 5월 사이 여러 곳에서 ‘붉은 군대’ 병사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그들 중 한 명인 마리아 로사리아 실링경 수녀는 약 30명 군인들에게 강간당하고 다음 날 살해됐다. 수녀들에 대한 소련군의 분노는 신앙, 특히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증오로 표출되었다. 무신론과 마르크스주의에 세뇌된 그들은 수녀들에 대한 굴욕의 무기로 강간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의 위험을 인식한 수녀들 중 누구도 자신의 사명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폴란드 신자들은 그들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순교자로 공경해 왔으며, 그들의 무덤은 ​​많은 순례자가 방문하고 있다. 이밖에도 17세기 독일의 예수회 사제 요한 필립 제 닝겐과 이탈리아 사제 세베리노 파브리아니, 청각장애인 위한 수녀회 섭리의 딸 러시아의 안젤라 로사 고데카 수녀, 공장 노동자를 돌보는 마리아 성심의 작은 자매회 창립자, 이탈리아 수녀 오르솔라 도나티, 슬픔의 성모 자녀회 수녀와 스페인 성모마리아 수녀회 마리아 스텔라 디 게수 수녀 등이 가경자로 선포됐다.

 

“교회는 항상 노동자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국제노동기구 화상총회에서 기조 연설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17일 화상으로 개최된 ILO(국제노동기구) 제109차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경제개혁과 모든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위해 설립된 109주년을 맞는 ILO가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 동안 가장 취약한 형제자매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꼭 필요한 일을 수행했다고 칭찬했다. 교종은 또한 우리가 코로나19 유행병에서 회복될 때 경제회복과 함께 모든 형태의 노동자들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종 연설 내용.

지난해 우리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세계적 경제 위기와 함께 전례 없는 노동자들의 고용감소를 경험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유행 이후 경제활동 정상화에 돌아가기 위한 모두를 위한 해결책을 모색할 때 공동선을 위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해결책을 마련할 때 ‘소비주의’ 또는 ‘민족주의’를 포함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피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항상 공동선을 염두에 두고 품위 있는 근무조건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업무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솔루션을 찾아야 합니다. 코로나 대유행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에게 우리의 대응을 우선해야 합니다. 특히 취약한 노동자들 중에는 많은 이주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익숙해진 ‘배제의 철학’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주민들은 다른 취약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과 함께 일반적으로 국가의 건강증진, 질병예방, 치료 및 보호프로그램, 재정보호 계획 및 심리, 사회 서비스에 대한 접근에서 배제된 채로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배제는 코로나19 전염병을 다루는 것을 복잡하게 만들고 공중보건에 추가적 위협을 가하는 발병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근본적 사명은 첫째, 모든 사람이 함께 일하도록 호소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 사이에 평화와 신뢰를 구축하고 공고히 하는 것이 공동선의 목표입니다. 정부와 기업과 노동자들의 대화에서 결코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제쳐 놓을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이와 관련한 ‘교량 건설자’로서 모든 교단과 종교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대화에 참여한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대화를 만들거나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교량의 건설자’로 자신을 세상에 제공합니다. 권리가 적거나 없는 사람들과는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동일한 수준의 권리와 의무가 진지한 대화를 보장합니다. 모든 사람이 질병, 나이, 장애, 이주, 소외 또는 의존과 같은 취약성에 따른 필요한 보호를 받도록 보장하는 것도 교회의​​사명에 필수적입니다. 교회가 주요 위험에 직면하고 있는 정부의 사회보호 시스템을 지원하고 확장하여 보건서비스, 식량 및 기본적인 인간 요구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노동자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보호를 보장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를 존중하는 데 노조를 조직할 권리는 기본입니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경제지표에만 초점을 맞춘 회복을 가속화하는 조치로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시스템의 깊은 개혁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경제가 운영되는 방식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공동선을 방해하는 바이러스는 ‘삶이 나에게 더 좋으면 더 낫고, 나에게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고 생각함으로써 확산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선택하고 가난한 사람을 거부하고 소위 ‘진보의 제단'에 던져 버립니다. 많은 사람을 버리는 대가로 새로운 엘리트를 구축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의 역동성입니다. 바티칸과 ILO의 미래를 내다보면 교회는 기본이 되며 따라서 신자들의 행동은 ILO와 함께 노사관계의 긴장을 조장하는 부당하거나 부정확한 상황을 시정하고 그들을 ’제외개념‘에 완전히 복종시키거나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치를 반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사이에 차이나 경계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지만 동시에 모두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우리의 기존 핵심들을 흔들어 놓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불평등을 제거하고 인류전체의 건강을 해치는 불의를 치료할 때가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직장에서의 '규제게임'으로부터 보호된다면 노동자들이 보장, 지원 및 권한에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바티칸의 신념입니다. 법적 규범은 고용성장, 양질의 일자리, 인간의 권리와 의무에 맞춰져야 합니다.

이러한 공동행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일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해의 첫 번째 요소는 ‘비표준 고용형태’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업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노동의 실태는 전통적으로 ‘공식 고용’으로 알려진 그 이상입니다. 비공식적이거나 숨겨진 경제에서 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사회적 보호의 부재는 특히 충돌에 취약하게 만들고 그들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보험이나 사회지원 제도가 제공하는 보호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특히 '지하경제'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고립에서 건강위험에 대한 극심한 노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들은 접근 가능한 탁아소가 없기 때문에 노동자 자녀를 어머니가 직장에 데려가거나 집에 방치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위험은 더욱 증가하게 됩니다. 사회적 지원이 지하경제에까지 도달하고 여성과 소녀들의 특별한 필요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두 번째 요소는 관리의 차원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심하지 않고 창조를 파괴하고 미래세대 생존을 위협하는 일은 노동자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습니다. 반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는 배려하는 일은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화'라는 단어를 특정 유형의 지적 형성 및 사회적 소속과 연관시키는 계몽주의 유산에서 마침내 우리를 해방시킬 때입니다. 모든 사람은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선단체에서 영감을 얻으십시오. 정치 지도자들과 정부의 모든 사람에게 항상 정치적 자선인 사랑의 형태로 영감을 구할 것을 요청합니다. 기업인들의 진정한 소명은 모든 사람을 위해 부를 생산하는 것이고, 사업능력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특히 기업인들은 다양한 일을 창조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발전과 빈곤을 제거하는 데 명확하게 지시되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가 사유재산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이 상품의 보편적 목적지인이 1차적 권리에 의존하는 2차적 권리라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원들과 노동자단체 지도자들은 그들이 활동하는 이웃과 지역사회 실제 상황에 초점을 맞추면서 광범위한 경제정책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면서 스스로를 '구속당하는'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또한 '노동단체 내부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경비원처럼 노동단체 성벽을 보호해야 하지만, 성벽 밖 사람들도 감시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ILO 총회에 참석한 모든 분은 교회가 항상 여러분 곁에서 지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교회는 늘 여러분과 함께 걷고 있습니다. (역자 주 : ILO 총회에는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아시아, 태평양지역 대표 정상 자격으로 초청받아 프란치스코 교종 다음에 기조연설을 했다. 문 대통령 다음은 아프리카 대표 펠릭스 치세케디 콩고 대통령, 유럽 대표 안토니우 코스타 포르투갈 총리, 아메리카 대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순으로 연설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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