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청산민주연대 등 광주서 심포지엄
민주화 활동한 여성들, 희생자 또는 모성성으로만 존재

유신군부독재 청산과 민주화를 향한 우리 사회의 과제는 무엇인지 묻는 자리가 마련됐다.

유신청산민주연대, 5.18기념재단,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민형배, 설훈 국회의원이 4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공동 주최한 심포지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의 군사독재 통치 해부, 한국 민주화 진로’에서 참가자들이 그 답을 모색했다.

이날 진행을 맡은 이대수 운영위원장(유신청산민주연대)은 “내년은 유신이 시작된 지 50년째다. 독일이 나치 청산으로 민주국가로 거듭났듯, 군부독재의 유신체제를 제대로 청산하는 것이 역사의 어둠을 걷어내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굳건히 하는 길”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경제성장은 박정희 덕분? 사회 곳곳 여전한 유신 잔재
정권 교체보다 사회권력 교체 더 중요

김재홍 상임대표(유신청산민주연대)는 기조발표에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모두 유신헌법을 기초로 한 동질적 군사독재정권임을 지적했다.

정당정치 무력화, 언론탄압, 대학병영화와 교수 해직, 관치경제, 국가정보기관을 활용한 정보 및 정치 공작, 사회문화적 통제, 관치경제, 거액의 불법 자금 수수 등 세 정권은 같은 통치 행보를 보였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 일부 학자 등이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전두환 정권은 더 부패하고 인권을 탄압했다고 보고 있지만, 두 정권 모두 유신헌법에 기반한 군사독재 정권이며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정권의 관행과 시스템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 일부에 한국의 경제성장은 일제가 구축한 인프라와 박정희 개발독재의 덕분이란 인식이 있지만, 권위 있는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세계 최장 노동시간, 세계 최저 임금, 세계 최대 산업재해율, 세계 최고 미성년 노동 등 국민의 피땀이 한국의 경제 기적을 일궈낸 주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은 주입식 국민교육과 사회문화 통제를 통해 박정희를 우상화, 신격화했던 잔재이고, 이는 일반 국민 생활의 영역까지 권력이 침투했다는 의미다.

그는 “정권 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권력의 교체”라면서 “사회권력은 선출되지 않고 교체되지 않은 권력으로 언론사 사주나 각 영역마다 있는 토호세력이다. 정치 혁명으로도 바뀌지 않는 뿌리 박힌 사회권력을 바꿔내기 위해서는 장기적 시민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홍윤기 교수, 김경례 전문위원, 김재홍 상임대표, 이대수 운영위원장, 윤상철 교수, 조종주 사무처장, 신일섭 지도위원. (사진 제공 = 유신청산민주연대) 
(왼쪽부터) 홍윤기 교수, 김경례 전문위원, 김재홍 상임대표, 이대수 운영위원장, 윤상철 교수, 조종주 사무처장, 신일섭 지도위원. (사진 제공 = 유신청산민주연대) 

주먹밥은 5.18 상징 되고, 성매매 여성들 헌혈은 기록에서 소외....

그동안 5.18 기록과 역사 평가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부차적으로 다뤄졌던 여성의 활동상을 성평등의 가치에서 재조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경례 전문위원(경제문화공동체 더함)은 ‘5.18광주의 시민저항과 여성들, 그리고 그 이후의 현실’이란 발표에서 “5.18 민중항쟁의 역사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대부분 피해자로서의 여성, 모성이 강조되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으로 정형화됐다”고 말했다.

5.18은 각계 민중이 대거 참여한 운동이지만 기록과 기념은 엘리트, 남성, 엘리트 여성 순으로 이뤄졌고, 그 가운데 특히 기층 여성의 활동은 주목되지 않았다. 그 한 사례가 광주 황금동 성매매 여성들의 활약상이다.

당시 황금동 성매매 여성들이 시위대를 숨겨 주고 헌혈에 적극 동참했다는 간접 증언이 있을 뿐 5.18 관련 기록물 어디에도 그들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이 없다. “항쟁의 일원으로서 고유 명칭 하나 얻지 못한 채 기록에서 소외됐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주먹밥으로 상징되는 양동시장 여성 상인들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먼저 조명됐고, 5.18에 대한 상징성도 갖게 됐다. 그는 “성매매 여성과 밥 지어 주는 어머니라는 여성상, 이에 대한 우리 인식이 5.18을 기념, 기록하는 과정에도 반영됐다. 어머니로서의 여성은 충분히 상징하고 수용할 수 있지만 성매매 여성의 활동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5.18 당시 여성의 활동이 모성적 역할이나 성폭력 등의 피해자라는 관점에 한정될 때 “화염병 제작, 취사, 선전, 모금, 헌혈, 시체수습, 수배자 및 구속자 뒷바라지 등 다양한 여성 활동이 비가시화되고 부차적 차원에 그칠 수 있다”면서 “5.18의 공동체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란 문제에서 성평등의 가치가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4일 광주광역시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유신군부독재청산 심포지엄. (사진 제공 = 유신청산민주연대)&nbsp;<br>
4일 광주광역시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유신군부독재청산 심포지엄. (사진 제공 = 유신청산민주연대) 

“빨갱이, 적폐.... 민주주의와 거리 멀어”

이어 윤상철 교수(한신대)가 한국 민주화의 과제로 서로 다른 정치세력 간 권력 균형, 관용과 인정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통합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민주주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하는데 한국 사회는 그보다 집산주의나 국가 통제주의에 더 익숙하고, 구성원 간 세대 간 충돌이 강하다. 한국 민주주의는 서구 민주주의와 달리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전통이 부족한 ‘결손민주주의’다.

이러한 설명과 함께 윤 교수는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 상호 간 인정과 관용이 없으면 한국 민주주의는 매우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빨갱이, 적폐처럼 어느 한쪽만 옳다고 밀고 나가는 것은 민주주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당 기간 설득과 양보, 타협의 과정이 필요하고, 서로 용인되지 않는 세력도 딛고 가야 한다”면서 “민주주의 세력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더 많은 세력이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며, 민주주의 세력보다 민주주의로 가는 도정 그 자체가 존경받고 그 어떤 이도 같이할 수 있도록 (서로가) 열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사회 통제에 관한 유신 잔재 연구, 국가범죄 처벌 조항 마련, 한국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분단 체제 극복 등이 논의됐다. 

먼저 홍윤기 교수(동국대)는 현재 경제, 교육, 문화, 종교 등 전반에서 이뤄지는 사회통제와 사회적 권력, 경쟁 중심으로 편중된 사회문화가 유신의 가장 큰 잔재인 만큼 그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5.18 당시 헌신했던 기층 여성들을 통해 “가장 천대받던 이들이 숭고함과 존엄성, 그들이 대한민국 주권자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3.1운동,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은 “주권자들이 전체주의적 폭력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 것”이며 “이러한 주권자들의 민주적 의지로 군사독재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30년 이상 안정되게 운영돼 왔다”고 평가했다.

유신군부독재 청산을 위해 국가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 마련도 강조됐다.

조종주 사무처장(강제징집녹화, 선도공작진실규명추진위원회)은 “국민의 보호막이 돼야 할 공권력이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학살했다”면서 “국가범죄는 국가 존망과 안전을 위협하고,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사회에 공존하고, 가해자가 여전히 절대 강자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가범죄로 인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그 책임에 대한 진상규명이 쉽지 않다고 지적하고, 공소시효 없는 국가범죄 처벌 조항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일섭 지도위원(광주전남민주운동동지회)은 “한국 민주주의가 내부의 법제적 문제나 계층 갈등으로 여러 위기에 직면했지만, 무엇보다 남북 분단으로 민주주의의 어려움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통일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며, 우리가 남북문제에 좀 더 실질적으로 접근할 때 민주주의 위기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1970-80년대 군부독재정권이 벌인 국가폭력과 사회적 잔재 등 역사를 청산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방향을 묻는 이 심포지엄은 지난 3월 서울을 시작으로, 이날 광주에서 열렸으며, 10월에는 부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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