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한일 생활협동조합 활동가들의 교류 때 쓰찌다 다까시 선생을 만났다. 한국에서 선생은 지금은 절판된 "공생공빈"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한국어 번역은 기독교 농민운동을 했던 이제 고인이 되신 김영원 선생이 했다. 김영원 선생은 기독교 장로로 농민운동과 유기농업 실천에 앞장선 생명 운동의 어른이었다.

쓰찌다 선생은 대학교수였다. 그것도 일본에서 잘나가는 교토 대학교 공대의 금속물리학과 교수였다. 선생이 교수였던 1960년대 일본은 격렬한 학생 운동의 시기였다. 선생은 당시 학생들의 투쟁에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꼼꼼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대학교육과 과학기술, 일본 사회의 윤택한 삶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문명사회를 지탱하는 과학기술은 결국 공해를 유발하는 범죄이고, 공업기술사회는 언젠가 망한다는 생각에 선생은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사회 참여와 인식변화를 위해 1973년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선생은 이 모임에서 폐지 모으기, 농사, 된장 만들기, 반핵운동 등을 하고 있다. 폐지 모으기는 종이사용이 문명의 잣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 산림을 파괴하기 때문에 폐지를 모았고, 폐지를 줍는 가난한 사람들과 사귀었다. 재일 한국인도 있었고 히로시마 피폭자도 있었다. 선생은 교수 시절 이미 방사능의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폐지를 주우며 피폭자의 현실을 알게 되었고 이는 반핵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선생은 또 시골 할머니를 찾아가 된장과 효소를 배웠다. 할머니는 좋은 효소는 좋은 부부가 아니면 만들 수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엉뚱한 이야기같이 들렸고 이해할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된장에는 효소가 필요한데 효소 입장에서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했다. 된장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좋은 효소이듯이, 부부도 남편, 아내 입장에서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 좋은 부부였다. 이 경험과 생각들이 '공생’이라는 생각으로 정리되었다.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 사무실에서 쓰찌다 선생(가운데). ©️맹주형<br>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 사무실에서 쓰찌다 선생(가운데). ©️맹주형

선생은 이 모임에서 다른 사람 입장으로 나를 반성하고 스스로 삶을 고쳐 가는 작업을 함께 한다. 오늘날 문명은 금전주의로 돈과 자기만을 추구하며, 타인은 고려하지 않고 나만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선생은 돈의 반대 가치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답은 생명이었다. 생명은 크건 작건 존재할 가치가 있고 이 생명이 사라질 때 큰 혼돈이 온다. 

선생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지난 보궐선거가 야당의 승리로 끝난 때였다. 나는 이 승리를 돈의 승리로 보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일말의 관심도 없던 후보자들이 당선되었을 때, 대학교수직을 던지고 폐지를 주우며 가난한 이들을 만나고 농사일을 배우는 고된 삶을 선택한 선생이 떠올랐다.

서울역 인근 이미 공공개발로 지정된 곳에서는 민간 개발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붙고 있고, 제2의 용산 참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부산 경동건설 문현동 경동리인아파트 현장에서 추락 사망한 정순규(미카엘)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산업재해는 기업의 살인임에도 경동건설은 물론 정부, 지자체 모두 관심조차 없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세상에서 생명은 파괴될 뿐이다.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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