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다. 다울이가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다. (5학년에 편입) 심지어 남몰래 유치원에 대한 환상을 키워 가고 있던 다나까지 병설 유치원 원생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거의 십삼 년 만에 홀로됨의 자유를 (낮 동안 잠깐이라도) 마주하게 된 셈이다. 이 얼마나 벅찬 변화인가. 한데 아이들 집에 없는 동안 고요히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태극권 수련도 하고.... 오만 가지 활동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글쎄 차 한 잔 여유 있게 마실 시간이 없다.

다랑이가 새 집을 지었어요. 집 이름은 개나리꽃뒷집.&nbsp;©️정청라<br>
다랑이가 새 집을 지었어요. 집 이름은 개나리꽃뒷집. ©️정청라

왜냐, 하려고 들면 밭일이 너무 많고 또 다른 어떤 일보다 그 일이 재미나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밭에 딱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음이 확장, 이완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게 된다. 무릉도원에 가면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이런 이치인가? 밭 만들며 괭이질, 호미 들고 김매기, 씨앗이나 모종 심기, 검불 긁어다 멀칭(농작물이 자라는 땅에 짚 덮는 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단순하면서 용쓰고 힘쓰는 일들이 대부분인데 크게 힘든 줄을 모르겠다. 내 움직임에 따라 밭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고 조화로운 한 세계를 이루어 가는 것이 흐뭇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날이면 날마다 불현듯 나타나는 새로운 새싹과 꽃을 발견하는 게 흥미진진해서 그런 건지.... 아무튼 '지복을 누린다'는 말의 말뜻을 몸과 마음이 절로 느끼게 된다.

요즘 밭 풍경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매화가 지는 게 아쉽다 했더니 돌복숭아꽃 마구 피어나고 제비꽃이 심심해서 친구들을 불렀는지 냉이 꽃, 꽃다지, 현호색, 별꽃, 개불알꽃과 광대나물 꽃까지 땅바닥 구석구석 빈틈없이 작은 꽃 무리가 진을 치고 있다. 그뿐인가, 지난 가을에 일군 배추밭에도 어느새 배추꽃이 물결을 이루어 넘실대고 있으니 꿀벌들의 환호성이 내 귓가에까지 닿는 것 같다.

순돌이밭 귀퉁이에 있는 비밀의 뜰. (잘 보면 하우스 놀이터 앞에 벌통 하나가 놓여 있는 게 보인다.)&nbsp;©️정청라
순돌이밭 귀퉁이에 있는 비밀의 뜰. (잘 보면 하우스 놀이터 앞에 벌통 하나가 놓여 있는 게 보인다.) ©️정청라

맞다, 꿀벌! 꿀벌 식구 한 무리가 우리 밭에 이사를 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다랑이가 작년 생일 무렵부터 벌통을 선물로 받고 싶다 노래 노래 불러 왔고 그 끈질긴 간절함에 내가 두 손을 든 것이다. (양봉의 ‘양’자도 모르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도 전부터 벌을 키워 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벌들의 이름은 다랑이가 ‘초롱이들‘이라 붙였고, 벌통은 ‘비밀의 뜰‘("비밀의 정원"을 읽고 그 영향을 받아 붙인 이름) 한 켠에 두게 되었는데 벌통이 놓이기 전과 후가 그 공간을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만들어 놓았다. 뭐랄까, 병아리들이 삐약거리는 소리가 봄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느끼게 하듯 벌들이 붕붕거리는 소리가 밭에 생기를 가득 불어넣는 것 같다고나? 명절이 되어 온 집안이 북적북적 소란스러운 그런 느낌? (그러고 보면 벌 식구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내가 밭을 더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내가 저 존재들을 잘 보살피고 길러낼 수 있을 것인가 두렵고 막막하지도 하지만 신나게 날아다니는 벌들을 보면 그냥 마냥 흐뭇해진다. (아이 기르는 거랑 어쩜 이렇게 비슷한지....)

비밀의 뜰 안에 있는 다울이의 별난 밭(딸기 나선).&nbsp;©️정청라
비밀의 뜰 안에 있는 다울이의 별난 밭(딸기 나선). ©️정청라

그나저나 벌들과 함께 살면서 크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꽃을 느끼는 감각이 그것! 그전에는 꽃이 피면 ‘예쁘다 좋다‘ 수준으로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다행이다 고맙다’ 넙죽 절하는 마음이 된다. (순딩이 덕분에 풀밭을 고마운 밥상으로 직접 인식하게 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어떤 존재의 펑 터짐(생명력 발산)이 다른 존재들의 목숨줄을 잇게 한다는 걸 현실적으로 아는 데서 오는 깊은 존경심과 감탄! 이런 식으로 불교의 연기법이라는 게 관념이 아니고 실상이란 걸 벌들과 꽃을 통해 생생히 배우게 되니 어떤 측면에서는 벌이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것도 아이 기르기랑 일맥상통!)

그러니까 나는 진짜 학교를 제대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이렇게 잘 배우며 잘 살고 있으니 아이들도 잘 자라고야 말겠지. 이렇게 넘치는 자신감도 밭이 나에게 준 크나큰 선물이다. 나의 든든한 백(back), 밭!

순딩이 풀 먹는 거 구경하기. 정청라
순딩이 풀 먹는 거 구경하기. ©️정청라

덧.

이번 원고에는 아이들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많이 담긴 것 같다. 해서, 매주 월요일 자발적 결석계를 쓰고 혼자서 신나게 다채롭게 노는 다랑이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는다. 꽃이 된 하루를 '꽃이 되었네' 노래와 함께 감상하시라~

 

 

꽃이 되었네

(글 : 박다울, 곡 : 정청라)

 

꽃이 되었네

꽃이 되었네

온 세상이 다 꽃처럼 됐네

 

꽃이 되었네

꽃이 되었네

온 세상이 다 꽃처럼 됐네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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