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프란치스코 교종과 함께 하는 2월의 기도 지향
프란치스코 교종이 전 세계 신자와 함께 하는 2021년 2월 기도지향은 ‘폭력 피해자 여성들을 위해’이다. 교종은 메시지에서 여성들에 대한 다양한 종류의 폭력을 제시하면서 이를 '모든 인류의 타락'이라고 묘사했다. 메시지 내용.
매일 전 세계 수백만 명 여성이 ‘심리적 폭력’ ‘언어적 폭력’ ‘육체적 폭력’ ‘성폭력’ 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여성들에 대한 학대는 비겁한 행위며, 모든 인류의 타락입니다, 얼마나 많은 여성이 폭행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강간을 당하는지 놀랍습니다. 2020년11월 유엔 여성위원회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매일 137명 여성이 가족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여성은 세계적으로 확인된 인신매매 피해자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세계적으로 여성 3명 중 1명이 삶 동안 신체적 또는 성폭력을 경험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매일 15-19살 사이 15만 명 소녀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특히 지난해는 코로나로 인한 이동제한, 사회적 고립, 경제적 불안으로 세계적으로 여성들은 더욱 개인적 환경에서 폭력에 취약해졌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모든 사람이 그들의 고통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함께 기도드립시다.
“전례와 기도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
교종, 2월3일 일반 교리교육 전례와 결합된 기도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3일 바티칸 도서실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수요 일반 교리교육을 통해 기도에 대한 주제를 계속하면서 교회 전례와 결합된 기도가 우리를 어떻게 더욱 효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가르침 내용.
교회 역사에서 종종 전례의식의 영적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리스도교 신앙을 실천하려는 유혹이 있어 왔습니다. 전례의식을 쓸모없거나 해로운 부담으로 간주하면서 이러한 의식에 의존하지 않는 종교의 더 큰 순수성을 주장하면서 특정한 의식 형태나 전례방식을 배제하는 가운데 현대의 많은 신자는 비록 미사에 참석은 하지만 다양한 개인적 헌신을 통해 자신의 영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신앙생활에서 전례의 중심성에 대해 최근 수십 년 동안 많은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기도는 성서, 성례전, 전례의식과 같은 구체적 신앙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전례는 단순히 자발적인 기도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전체의 경험과 기도를 발견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지나간 사건이면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존이며,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사적 표징을 통해 성령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따라서 전례가 없는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가 없는 그리스도교입니다.
전례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온전히 참여하도록 초대하여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교의 기도는 전례에서 비롯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인이라면 모두 전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사적 중재를 전제로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찬을 거행할 때마다 현존하십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예수님 성찬의 임재를 내면화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즉 식사의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우리 외부에 있는 것이 우리의 일부가 됩니다. 미사는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구경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뿐만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신자가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전례의 중심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진심으로 전례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인생은 하느님을 경배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지만 이것은 기도, 특히 전례기도 없이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아부다비의 결실 ‘세계 인간 형제애의 날’”
프란치스코 교종은 수요 일반 교리교육을 마치면서 내일 2월4일은 첫 번째 역사적인 ‘세계 인간 형제애의 날’이라고 상기시켰다. 말씀 내용.
내일 2월4일은 첫 번째 ‘세계 인간 형제애의 날’입니다. 저는 내일 오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알아즈하르 대이맘과 여러 세계 종교 및 정치지도자들과 함께 화상회의에 참여합니다. 세계 인간 형제애의 날은 지난 12월 유엔총회 결의로 제정되었습니다. 이에 앞서 저와 알아즈하르 대이맘은 2019년2월4일 아부다비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인간 형제애에 관한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종교 간, 문화 간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전 세계 국가가 이 행사에 참여해 매우 기쁩니다. 유엔 결의안은 모든 종교 간의 대화가 인류가 공유하는 공통가치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기도이며 연중 매일 우리의 헌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편 이날 화상회의는 로마시간 오후 2시30분 아랍 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에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 주최로 열린다. 또한 이날 행사에는 아부다비에서 서명한 ‘인간의 형제애’ 공동선언문에서 영감을 받아 제정된 ‘국제 인간 형제애 상’ 시상식도 거행된다. 수상자 선정은 ‘인간의 형제애’ 공동선언 발표 후 설립된 ‘인간의 형제애 고등위원회’의 독립적인 심사로 결정되었으며, 인간의 형제애를 장려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한 이에게 수여될 예정이다.
올해 ‘국제 인간 형제애 상’ 수상자로는 모로코 출신의 다섯 자녀 어머니인 라티파 지아텐과 포르투칼 출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선정되었다. 이마드 청소년 평화협회 창설자 라티파 지아텐은 17살 때 프랑스로 이주했으며 그녀의 아들 중 하나인 이마드는 2012년 프랑스 지방도시 트루즈에서 사회에서 버림받은 청년에게 살해되었다. 그녀는 아들의 살인범을 만나 살인을 저지른 원인을 파악하고 사회에서 버림받고 통합하는 데 실패한 젊은 사람들을 위한 ‘이마드 청소년 평화협회’를 창립해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면서 젊은이들과 만남을 통해 세대 간 그리고 프랑스 원주민과 이주민 간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데 기여해 왔다. 그녀는 수상 소식을 접하고 "저와 많은 사람이 극단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노력하는 가운데 ‘인간 형제애를 위한 자예드 상’을 수상하는 것은 큰 영광이며 이 상이 대화, 상호존중, 평화 공존을 위한 인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또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세계 곳곳의 휴전을 이룩한 노력으로 수상자로 선정된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인간 형제애를 위한 자예드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며 겸손과 깊은 감사를 표하면서 이는 유엔이 평화와 인간 존엄성을 증진하기 위해 매일 어디서나 하고 있는 일을 인정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자예드 상은 평화로운 공존의 삶을 살았던 고 셰이크 자이드 UAE 창립자의 가치를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으며 지난해 이어 두 번째 시상으로 연례행사가 될 것으로 알려졌으며, 세계 평화, 조화 및 문화 간 대화를 증진하기 위해 협력하는 지도자와 종교인들의 지속적인 노력을 인정해 유엔총회가 선언한 ‘국제 인간 형재애의 날’ 기념의 일환으로 수여된다.
“인내는 봉헌된 남녀의 특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2월2일 주님 봉헌 축일 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가톨릭 교회가 주님께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축성 생활의 날’로 지키는 2월2일 ‘주님 봉헌 축일’ 밤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미사 강론에서 이스라엘이 위로를 받을 때를 기대했던 시메온이 성령의 속삭임에 응답한 루카 복음 2장25절 말씀에 집중해 종교적인 남녀들에게 계속 전진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성령의 속삭임에 응답하기 위해 인내심과 용기를 가지라고 강조했다. 강론 내용.
아기 예수에게서 ‘이방인을 비추는 빛’을 인식한 시메온은 하느님 약속의 성취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던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기다렸고 마음의 인내를 행사했습니다. 시메온은 하느님이 특별한 사건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명백한 단조로움 속에서, 자주 둔한 활동의 리듬 속에서, 끈기와 겸손으로 일함으로써 우리가 성취하는 작은 일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행하려는 우리의 노력 속에서 활동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시메온은 긴 생애 동안 분명히 상처받고 어려운 시기가 있었겠지만 지치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희망의 불꽃은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서 밝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함으로써 우리들 삶의 황혼이 다가올 때 발생할 수 있는 후회나 낙담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시메온의 소망과 기대는 모든 일에도 마침내 약속된 '구원을 그의 눈으로 볼 때까지' 깨어 있는 한 남자의 일상적 인내에서 표현되었습니다. 시메온의 인내는 하느님 자신의 인내의 거울입니다. 사실, 시메온은 자신의 기도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 자비로우시고 분노에 더디시고 확고한 사랑과 성실이 풍부하신 하느님을 주님 안에서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성 바오로 사도도 로마인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인내가 우리를 회개로 이끈다”고 인내가 하느님의 응답 방식임을 말해 줍니다. 또 다른 누구보다도 시메온이 팔에 안으신 메시아 예수님은 우리를 계속 부르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의 인내심을 마지막 시간까지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완전함을 요구하지 않으시지만, 우리의 굳어진 마음에 틈을 열고 자하는 소망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일 때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기다리는 것에 결코 지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우리 희망의 이유입니다. 우리가 돌아서면 하느님은 곧바로 찾으러 오십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 하느님은 들어 올리십니다. 길을 잃고 돌아오면 두 팔 벌려 기다리십니다. 하느님 사랑은 인간 계산의 균형에 무게를 두지 않지만 우리에게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부지런히 제공하십니다. 모든 봉헌된 남녀는 봉헌생활을 생각할 때 하느님의 인내와 시므온의 인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내는 단순히 어려움을 견디거나 고난에 직면해 냉혹한 결단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며 약함의 표시가 아닙니다. 인내는 개인과 지역사회 문제의 짐을 짊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정신적 힘입니다. 또한 인내는 다른 사람들을 우리 자신과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일 때도 선으로 참아 견디며, 피로와 냉담함으로 극복될 때에도 계속 전진하게 합니다.
인내심이 구체화 될 수 있는 세 가지를 설정한다면 첫째는 개인생활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방식은 실망, 좌절, 무력감으로 인해 항상 변함없는 삶을 살았던 우리의 개인적 삶은 아닙니다. 봉헌된 남녀로서의 삶에서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결과 희망이 서서히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인내하고 하느님의 시간과 장소를 바라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느님은 항상 그분 약속에 충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면 내면의 슬픔과 낙담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 발걸음을 되돌리고 꿈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봉헌된 사람들의 내면의 슬픔은 벌레와 같습니다. 벌레는 우리의 내면을 갉아먹습니다. 내면의 슬픔에서 피하십시오!
인내심이 구체화 될 수 있는 두 번째 환경은 공동체 생활입니다. 삶의 프로젝트나 사도적 활동을 공유할 때 인간관계가 항상 고요한 것은 아닙니다. 갈등이 발생하고 즉각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거나 성급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한 발 물러서서 평화를 유지하고 관대함과 진실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더 나은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약점과 결점을 포함해 형제자매들 중 한 사람의 삶을 우리 자신의 어깨에 짊어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독주자’로 부르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교회는 많은 사람이 때때로 한두 음표를 놓칠 수 있는 합창단의 일원이기 때문에 항상 한마음으로 노래해야 합니다.
세 번째 환경은 우리와 세계와의 관계입니다. 시메온과 안나가 어떻게 선지자들이 선포한 희망을 소중히 간직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세상의 불신앙과 폐허 속에서 조용히 성장하고 성취하는 것이 느리지만 그분들은 잘못된 일에 불평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역사의 어둠 속에 비치는 빛을 찾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인내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더 이상 우리말을 듣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할일이 없다”, “이것들은 쉬운 때가 아니다” 등등 우리가 가지기 쉬운 부정적 생각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역사의 토양과 우리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시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참을성이 없고 모든 것을 즉시 판단하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희망을 잃게 됩니다. 인내는 우리가 자비를 베푸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인내심은 우리 자신, 우리 공동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자비를 베푸는 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봉헌된 남녀들과 모든 신자는 성령의 인내에 대한 환영을 멈추지 말고, 서로 견디며 형제적 삶의 기쁨을 발산하는 것을 계속하면서 우리의 봉사를 참을성 있게 제공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봉헌생활에 있어 진정한 도전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향수에 갇혀 있거나 단순히 똑같은 옛 일을 반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 전진하고, 새로운 길을 탐색하고, 성령의 속삭임에 응답하기 위한 인내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 삶속에서 험담하지 말고 유머감각을 잃지 마십시오! 특히 이 코로나 전염병의 시기에 주님께 봉헌하는 삶을 위해서는 앞으로 나가기 위한 참을성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특히 종교 공동체의 삶에서 가십의 위험에서 벗어나십시오. 그것은 공동체 생활을 죽입니다! 이것이 쉽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 험담하기 전에 봉헌된 남성과 여성들은 ‘혀를 깨물도록’해야 합니다. 절대 다른 사람을 나쁘게 험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때 유머감각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좋은 마음으로 자신과 주변 상황,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도 웃을 줄 아는 ‘가십방지’ 방법입니다!
봉헌생활을 선책하시고 잘 살아가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는 일에 간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려움을 짊어지고 성소가 부족한 상황에서 고통을 견디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봉헌생활 수련회 총재 조아오 아비즈 추기경께서 오늘 모이신 여러분을 환영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위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을 따릅시다!
한편 ‘세계 봉헌 생활 기도의 날’은 1997년 요한바오로 2세 교종에 의해 제정되었다. 봉헌생활을 위한 세계의 날 축하행사는 세계교회 전체를 위한 봉헌된 사람들의 은사를 강조하기 위해 다음 주일로 이전된다.
로마 전례력에 성인 성녀 6명 기념일 추가
성녀 마르타와 마리아 성 자라로를 7월29일 함께 기념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2일 로마 전례력에 4개의 새로운 기념일(축일)을 추가하는 두 가지 법령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현재 성녀 마르타 기념일인 7월29일에 그의 오빠와 자매인 마리아와 라자로가 함께 기념될 것이며 전 세계 모든 전례 책에 예수님의 세 동반자들인 이들에 적합한 기도와 본문으로 업데이트될 것이다. 이밖에도 나렉의 성 그레고리오, 아빌라의 성 요한, 빙겐의 성 힐데가르트도 지역교회의 선택적 기념일로 기리게 된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종은 성녀 마르타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집에서 영접하고 그분의 말씀을 주의 깊게 경청하며 그분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믿는 중요한 복음적 증거를 바탕으로 마르타 전례 기념일에 함께 추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교종은 “베다니의 집에서 주 예수님은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의 가족 정신과 우애를 경험하셨기 때문에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아낌없는 봉사를 제공했고, 마리아는 그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욕스럽게 하신 예수님 명령에 따라 즉시 무덤에서 나왔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교종의 법령은 그동안 마리아의 정체성에 대한 ‘라틴교회의 전통적인 불확실성’이 최근 로마 순교학의 연구에 의해 그녀가 마르타와 라자로의 자매임이 확인되면서 해결되었다. 이와 별도의 법령에서 선택적 기념일로 제정된 세 사람의 ‘교회 의사’들의 기념일은 2월27일 나렉의 성 그레고리오, 5월10일 아빌라의 성 요한 사제 겸 교회박사, 9월17일 빙겐의 성 힐데가르트 교회의사다. 교종은 법령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경험하는 지혜와 거룩함의 결합은 교회의 신비와 뗄 수 없는 관계이며 그들은 거룩한 지혜의 제자가 됨으로써 전체 교회 공동체를 위한 지혜의 교사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선과 악을 구별하도록 돕고 대화에 기여하라”
프란치스코 교종, 미 가톨릭 뉴스 기자단에 교회언론 사명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1일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통신사 설립 100주년을 맞은 미국 주교회의 산하 가톨릭 뉴스 서비스(CNS) 대표단을 접견하고 대화 형식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교종은 이 자리에서 다가오는 이라크 사도적 순방과 미디어의 역할, 현재의 미국 교회의 모습 등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인터뷰 요지.
100년의 역사를 가진 가톨릭 뉴스 서비스는 진리를 쉽게 조작하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시대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영어권 세계에서 귀중한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인들의 역할은 사람들이 선과 악을 구별하도록 돕고 대화에 기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결과 형제애를 증진하도록 도와주고 분열을 촉진하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교회 언론은 교회의 연합을 추구하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언론은 교회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대립하는 당사자들이 이성을 바탕으로 형제애의 길을 찾도록 단합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불에 불을 지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성은 획일적인 같음이 아니라 차이에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논쟁할 수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같은 신앙과 지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 교회는 특히 가톨릭학교의 방대한 네트워크와 함께 이민자들을 돕고 그들이 통합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생동감’ 있게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교회는 미성년자 학대 혐의로 위기를 겪고 있으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세로 관대하고 겸손한 자세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모든 공동체가 그러하듯이 미국 교회도 결점을 가지고 있지만 희망이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교회는 가톨릭의 ‘보편적’이라는 의미에서 ‘살아 있는’ 교회이며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저는 몇 년 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기자들 회의에서 당시 언론인들의 직업을 괴롭히는 저널리즘의 네 가지 ‘죄’에 대해 말했습니다. 첫 번째는 '잘못된 정보'입니다. 잘못된 정보는 오류로 이어지기 때문에 죄입니다. 두 번째 죄는 '비방'과 '거짓말'로 이는 사람의 평판을 해치는 중죄입니다. 세 번째 '명예훼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끄집어 내어 사람을 비방하는 죄입니다. 마지막으로 ‘스캔들을 파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에 동기를 부여한 ‘오물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공동 번식’ 또는 스캔들을 소비하는 악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가톨릭 언론인들은 절대 이러한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민족 간의 친교는 연대와 다양성으로”
교종, 토착 원주민 글로벌 회의 메시지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UN 농업개발기금(IFAD)이 2월 2-4일과 15일에 주최하는 제5차 토착민 포럼 글로벌 회의에 보낸 메시지에서 참가자들에게 연대와 다양성이 조화될 때 민족 간의 친교가 번성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포럼은 코로나 전염병 맥락에서 토착민들의 식량 시스템의 가치 회복력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다. 또한 토착민 대표가 IFAD와의 파트너십과 원주민들의 참여 효과를 개선하기 위한 우려, 요청 및 권장사항을 전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대화를 위한 플랫폼을 목표로 한다. 메시지 내용.
교회는 세계화가 다양성을 무시하고 새로운 유형의 식민주의를 부과하는 통일성을 의미할 수 없다는 우리의 확신을 표현하기 위해 계속 여러분들과 함께 걸어가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세계화에 대한 교회의 대안은 연대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아무도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지만 그 자체의 방향을 과도하게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획일적인 세계화와 반대로 다양성이 명료해지고 상호 풍요로워질 때 민족 간의 교감은 더욱 번성하고 활기차게 됩니다. 소비를 수단과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진정으로 환경을 감시하고 경청하고 배우고 고귀하게 하는 방식으로 발전을 촉진해야 합니다. 사회정의는 지구보호와 결합되는 완전한 생태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겸손한 영이 있어야만 우리는 유행과 편파성의 결실이 아니라 정의와 선함의 결실인 지속적 가치를 바탕으로 ‘굶주림 사회’의 완전한 패배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의 이번 포럼이 다음 세대에게 ‘보물인 세계’를 넘겨주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고 관대함과 이타주의가 커다란 고랑을 남기고 세상을 통과할 수 있게 되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