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의 초록별 이야기]
이제 먼 옛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를 처음 만나던 날의 느낌은 지금 돌이켜봐도 좀 당혹스럽다. ‘이 사람이 여기 있었구나!’ 하는 친근함, 안타깝게 헤여져 헤매이다 다시 만나게 된 것 같은 안도감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뚜렷이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적도 없었고 단순히 일을 하다 만난 사람일 뿐이었는데, 얼치기 같은 나는 그 사람하고 결혼할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가장 다정한 사람이 되어 줄 것을 그가 약속한 것도 아니건만 터무니없게 그래주기를 바랬다. 이런 분수를 넘는 착각은 감정에 재앙을 불러왔다. 차라리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훨씬 알차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사랑이 아니었다. 감정기압의 차이에서 생기는 바람, 봄바람에 불과한 통과의례였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무수히 낭비된 에너지와 감정의 허송세월을 돌이킬 수 있다면, 그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여 어느 야산에 사과나무를 심어 차곡차곡 알찬 수확을 거둬들이고 싶다.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며 그 보혈의 피로 나의 죄를 사하시었다. 죽을 만큼 나를 사랑하셨다...?’
오랫동안 이러한 서술이 내 귓가에 맴돌았지만 마음 안으로 스며들지 못한 채 겉돌고 있었다. 배반당한 마음은 배반의 기미만을 탐색하고 있었다.
사회 변혁기에 해당하는 80년대, 운동권에 속하지도 못했고 차라리 운동권의 대상에 가까운 입장에서, 하루는 예수님의 제자 열혈당 시몬이 되었다가
다음 날은 배반자 유다로 돌변하느라 내 마음은 쉴 틈이 없었다.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는 이런 감정혁명은 뜨거운 열기와 춥고 어두운 침묵이 반복되는 변주곡이었다. 그러다 지치면 사도 요한인양 사랑해 주기를 바라며 애교를 떨었으니 이를테면 정체성의 혼란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그 시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일텐데, 우리는 술에 취해 민중을 위해 자신을 헌신짝처럼 버릴 듯 강렬한 사랑노래를 불렀다.
당연하게도 우리들 대부분이 그 사랑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변명과 비굴한 자기합리화의 경지를 넘나들던 마음의 행로에 어쩐지 예수님도 우리들처럼 애지중지하던 사랑을 배반한 것처럼 보였다.
가슴에 칼을 품고 조국이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랐던 열혈당 시몬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은 배반자였다. 배반이 배반을 낳은 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처럼 보였다. 어쩌면 예수님은 그 분이 살던 시대와 그 시대 대다수 사람들의 염원과 거리가 생기는, 틈을 벌리는 삶을 살아가셨다. 한 시절을 살다 소멸하는 유한한 사람의 시야로 보면.
장황하지만, 예수님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그 왜곡을 끊어보려는 열혈당원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와 정양모 신부님의 글을 통해 알아보았다.
"로마 사람들은 BC 37년 헤로데를 팔레스티나의 왕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그가 죽자(BC 4) 그 아들들이 나라를 분할해 다스렸다. 헤로데 아르켈로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헤로데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와 베레아를 각각 통치했다. 그리고 헤로데의 동생 필립보는 트라고니스와 갈리니티스를 지배했다. 훗날 아우구스트 로마 황제는 아르켈로를 내쫓고 유다와 사마리아를 본시오 빌라도 총독에게 넘겼다. 빌라도는 재임 기간(26-36년의 10년)에 예수님을 신(神)으로 언급하면서 조롱했다(루가 23,6-12). 이 기간의 대사제는 안나스와 가야파였다.
이 무렵의 팔레스티나는 갈릴래아, 사마리아, 유다 등 세 지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유다 지방은 유다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 지방의 수도가 곧 솔로몬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었다. 그리고 갈릴래아는 유다인과 아브라람의 종교를 따르지 않는 이방인들이 함께 살았다.
예수는 갈릴래아 사람으로서 티베리우스 황제와 빌라도 총독과 헤로데 안티파스 분봉왕과 안나스와 가야바 대제사장이 지배하던 시기에 갈릴래아에서 성장하고 거기서 주로 활동하며 로마총독과 분봉왕 그리고 고위성직자들이 연합한 정치세력과 이들의 시야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소외된 사람들, 정치의 장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에 기대여 함께 하는 대항세력(?)으로 살아가셨다.
그리고 이 시기동안, 로마제국에 반항 운동을 일으킨 급진적이고 호전적인 유대인 반란 단체인 혁명당이 갈릴래아를 중심으로 생겨나 활동했다. '혁명당'이라는 용어는 실제로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리사이파와 노선을 같이 하면서도, 종교 단체라기보다는 정치 조직체였으며, 일종의 극한적인 투쟁단체였다. 열렬한 애국자, 광신적인 국수주의자들로서 "오직 하느님만이 이스라엘의 주님이시다"라는 믿음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어떠한 이방통치자도 반대하였다. 열혈당을 세운 자는 서기 6년경 퀴리노 총독 시대의 인물인 갈릴래아 지방 가믈라 요새 출신의 유다였다.
서기 6년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던 아르켈라오를 폐위하고 코포니우스를 그 지역 총독으로 임명했다. 코포니우스가 자기 관할 지역에 주민세를 부과했다. 주민세란 12세 또는 14세부터 65세까지의 주민은 한 데나리온씩 바쳐야 하는 인두세였다. 이에 유다가 갈릴래아의 동지들을 모아 열혈당을 조직한 것이다.
그들이 내세운 "오직 하느님만이 이스라엘의 주님이시다"는 하느님만이 이스라엘 통치자라는 것이요, 황제의 흉상이 새겨진 은화 데나리온을 로마황제에게 세금으로 바치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것이었다(마르꼬 12,13-17). 열혈당원들 가운데서도 극렬분자들을 일컬어 자객들(Sicarii)이라고 한다.
열혈당원들은 로마인들과 그들에게 동조하는 자들에게 테러, 살육, 방화 등을 저질렀다.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던 군중들 가운데에도 그들이 끼어 있었고, 예수의 제자 중에 시몬이 베드로와 구별하기 위해서 '열혈당원'이라고 불리웠다(루가 6,15; 사도 1,13)."
로마제국에 의해, 그 전에는 그리스의 식민지로 살아야 했던 당시 유대인들의 분노와 희망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같은 경험을 한 우리들의 역사의식을 견주어 보면 동류의식이 생길만큼 익숙한 감정들이다. 그들이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자류롭게 살고자 했던 희망과 뜻을 이루고자 찾아낸 방법의 다양성은 세밀한 부분까지 피가 통하듯 감지되는 부분이다. 분봉왕 헤로데 안티파스를 가리켜 "여우"라고 칭했던 예수님의 언급은 아직도 친일파의 재산권을 두고 법정싸움을 하는 우리들로서는 바로 밥상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열혈당 제자들의 갈급한 소망을 들어주시지 않았을까? 열두 해 동안 하혈하는 여자의 아픔에는 동참하시어 그녀를 낫게 해주셨는데, 이스라엘 동포의 삶을 열악하게 만드는 식민지 구조라는 더 큰 악의 세력에는 무심한듯 하시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예수님의 이러한 불투명함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고민이고 예수님에게서 멀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편에선 예수님을 비정치적인 분으로, 해방자로 오셨지만 해방의 분야를 축소시켜버리는 근거로 작용한다. 이 세상에는 없는 해방구-유토피아처럼 허공에 떠도는 갈망의 세계를 말씀하신 분으로 죽음 이후의 천상왕국만이 그 분이 이끄는 진정한 세계라고 오해하였다.
애초부터 게임이 안되는 도전이었듯이 열혈당원들은 로마의 반역자가 되어 십자가 못박혔고 마지막으로 마사다 요새에서 집단자살하는 것으로 그들의 분명한 뜻을 남겼다.
이러한 오해 혹은 일말의 진실을 나는 로마에 세워진 교회의 총본산을 보며 나름대로 해소하였다. 박해의 근원지에 세워진 하느님의 성전은 허약한 인간의 숱한 이해부족을 해명해준다. 누구도 예상못한 방식이 아닌가.
지금 베드로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중심이 긍정적이든 부정적 요소가 스며있든, 천 칠백년 전 지배자의 심장에 피지배자의 헤게모니가 들어선다는 건 반전의 묘미중의 묘미가 아닐까.
사울을 바오로 성인으로 완성하시는 경륜과 로마의 중심지에 대성전을 세우시는 것은 많이 닮아 있다.
예수님은 열혈당원인 제자, 시몬의 소망을 저버리지 않고 이루어주신 것이다.
300 년이라는 긴 시간의 터널을 건너면서도 제자들의 간구를 잊지 않으셨다. 제자 시몬의 뜻한 바를
예수님은 더 크게 더 높은 완성도로 이루어 주셨다고 본다. (현실적으로도 유대인들이 1900년간의 유랑 끝에 1900년 전의 본거리로 돌아가 그들의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게 가당키나 한 건지, 신비스러운 경지로 느껴진다. 긴 기다림의 아픔을 생각하면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예수님은 언뜻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길을 외면한 듯 보인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흘러 성령의 숨결을 되돌아 보면 역사의 굽이굽이 그분의 사랑과 의지를 읽게 된다. 박해자와 희생자가 한 몸임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의 기도는 이루어지는 걸까.
나는 어느 어머니... 남루한 시대를 살아내느라 씨다른 자식들을 품으며 살아가시던 한 어머니를 보며 하느님의 깊은 사랑과 고통을 엿보았다.
각자 성씨가 다른 데서 오는 불협화음으로 자녀들은 서로 반목했다. 차라리 남보다 못한 그들은 서로를 언니 오빠, 동생이라 부르며 괴롭혔고 결정적인 도움이 필요한 순간엔 예외없이 외면했다. 그런 자식들을 사이에 두고 그 어머니는 살을 베어내는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일생을 사셨다. 그 분에게야 어느 자식인들 금자동이 은자동이가 아니었겠는가.
같은 하느님의 자식들인 우리가 반목하는 것과 너무 비슷한 모습이었다.
엥겔스의 글 어디선가 그는, "혁명은 그리스도교식으로 해야했다. 우리들의 방식은 많은 희생이 치러진 반면 그 효과는 의심스럽다."는 구절을 대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길어야 백 년을 살기도 어려운 사람의 수명을 전제로 놓고 보면, 칼을 품고 목숨을 건 도전을 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조차, "제 뜻대로 마옵시고..." 하는 뜨거운 고백을 토해내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돌아 시야가 흐려지며 저절로 무릎이 끓어진다. 권세에 혹은 남녀라는 이성의 매력에 미혹되어 거짓사랑으로 실패한 허송세월을 되찾을 겸, 이제 예수님의 뜨거운 고백을 알아듣고 응답을 드려야겠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주검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卍海 한용운 作 <사랑하는 까닭>
/이규원 2008-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