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예전에 대학생이었을 때, 나는 그야말로 엄청난 단식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 다니던 학교를 짤리고 다시 입학한, 매우 진보적인 학풍을 가진 개신교의 한 신학대학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던 나는, 혈기 방장했으며, 눈에 불을 켜고 있었고, 데모를 하면 사복경찰이랑 맞짱을 뜨기도 했던, 이른 바 단순 무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학생이었음과 동시에 찢어지게 가난한 고학생이기도 했다. (결국 내가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그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제적당했다)
사복 경찰 (당시에는 그들을 ‘백골단’이라고 불렀는데 말하자면 체포조였던 셈이다.) 이랑 맞짱을 뜨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찢어지게 가난한 고학생의 신분’이라는 것은 참 견디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어느 해인가... 아마 1학기가 시작되는 시기였던 걸로 기억되는데, 등록금을 어찌어찌 마련하고 나니 라면 한 그릇 끓여먹을 돈도 남아 있지 않아서 며칠을 굶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스스로의 초라함과 이 사회의 불평등에 화가 치민 나는 공연히 예수님한테 분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허나 이상하다. 당시에 라면 끓일 돈도 분명히 없었는데 나는 어떻게 매일 밤낮 술을 마실 수 있었을까?)
“야. 아무개야. (같이 신학을 하던 친구와 나눈 대화인데 그 친구의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예수는 말이다. 딸꾹, 문제가 많다 이거야. 딸꾹...”
“형님. (나는 이미 다른 학교를 다니고 군대도 필한 예비역이었다) 형님도 문제가 많습니다. 왜 걸핏하면 예수님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십니까.”
“야 이놈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 있다 이거 아니야, 예수가. 그치?”
“그렇습니다. 그렇고말고요. 분명히 부활하셨고 살아계십니다.”
“너... 딸꾹.. 혹시 그 양반 봤냐?.. 딸꾹?”
“지금도 보고 아침에도 봤으며 이따 잠자리에서도 볼 겁니다. 아주 선명하게 말입니다.”
“이 자식이 딸꾹, 어디다 ..... 눈을 부라리고 지랄이야 지랄이... 딸꾹. 야 이 잡놈아. 살아 있으면... 딸꾹, 뭐하냐 이 말이다. 저 개 같은 전두환은 개기름 칠을 하고 살아 있고 딸꾹... 가련한 나는 삼일 째 굶고 있는데...”
“형님. 가련한 예수님은 40일을 굶으셔야 했습니다.”
허걱... 그랬지... 맞아 그랬어...
나이어린 그 친구는 그 때 참으로 귀한 돼지고기 안주에 소주를 대접하고도 모자라서 내게 일점 회심의 자극을 주었던 것이니 나는 죽비로 대갈통을 호되게 주어 맞고 비틀대며 내 자취방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 날 이후 나는 냅다 굶었다. 뭐 실제로 밥을 먹을 형편도 안 되는 처지에,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그냥 예수 따라 단식을 해 본 것이지만 무조건 굶었다. 술자리에서는 곡기가 들어간 막걸리를 마다하고 쐬주를 펐으며 안주 대신 냉수를 마셨고, 아침에 필히 해야 하는 해장은 물을 펄펄 끓여 마시는 걸로 대신했고 형의 건강이 걱정된다며 자취방으로 라면이라도 끓여오는 놈이 있으면 너는 내 신앙의 적이다 어쩌구 해 가며 미친놈처럼 굶었다.
서서히 나는 면봉이 되어 갔다. (나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머리가 유달리 크다. 상상하시라.. 살이 뭉텅 빠진 큰 머리의 사내를...) 어느 날인가 아침에 이를 닦다가 목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을 느끼며 그 무모한 단식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나는 내가 그렇게 오래 굶을 수 있다는 것에 감격했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기쁨에 떨었던 기억이 있다.
헌데...
그 연약한 여자들이...
60일을 넘어 70일이 다 되도록 굶고 있고...
정권 잡은 인간들은 올림픽에서 메달 딴 선수들을 동원하여 카 퍼레이드를 벌이겠다, 환영회를 하겠다, 별 주접을 다 떨고 있다.

별 것 아니지만, 한 끼 단식에 동참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의학적으로 60일을 굶으면 사람이 살 수 없다고들 한다. 허나 우리의 정의로운 기륭전자 여인들은 적어도 두 눈만은 형형한 채로 여전히 살아 있다. (제발 돌아가시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분들은 그냥 사람이 아니다. 그 분들은 예수님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내가 목마르고 굶고 갇혀 있고 핍박을 당할 때 저를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는 예수님을 뵌 적도 없는 걸요.”
“아닙니다. 그대는 그대 주변의 아주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바로 접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예수님......”
참으로 오랜만에, 어쩌면 생전 처음 예수님의 그 경구를 따라 행동해 본다. 기륭전자 여공들이야말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그야말로 이 시대 가장 버림받은 ‘보잘것없는’ 분들이다. 그러니 그 분들은 예수님들이시다.
후배에게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을 본 일이 있냐고 묻고 몇 주를 굶은 다음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분명히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 살아 계신 예수님이 이미 한 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민들레 국수집에서 식사를 하시며 동네를 돌며 폐지를 줍고 계시고 장애우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시며 지금 이 순간 기륭전자 여공들로 나타나셔서 굶고 계시는 것이다. 가톨릭 교리야 내가 알 바 없다. 허나 나는 그렇게 믿는다.
저녁 한 끼 굶는 거... 그거 별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조금은 배고픈 나의 상태가 내 정신을 각성시키기만을 빌고 또 빌 뿐이다.
그리고......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결코 죽지 말아야 한다.
이 시대가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변영국 2008-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