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같이 봉사 활동을 하는 후배 중에 야고보, 아가다 부부가 있다. (나 역시, 존경하올 ㅎ 신부님과 생각이 같아서, 정체불명의 외국 이름을 덧씌우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으나 지면이 가톨릭 지면이고 굳이 이름을 거론하기가 조금 그러그러한 내용인 고로 그냥 세례명을 쓰기로 하겠다.)
마땅히 축하할 일이지만
그런데 갓 마흔을 넘긴 이 부부가, 게다가 색시가 신랑보다 한 살 연상인 이 부부가 일을 치고 말았으니 바야흐로 ‘득녀’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축하 받아 마땅한 일이고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누구누구는 좋겠다는 둥, 정말 대단한 용기라는 둥, 해 가면서 가톨릭적 생명 윤리 사상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그 부부의 쾌거를 경하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나와, 소식을 전한 선배와의 문답은 이랬다.
“토마스. 글쎄 아무개가 득녀를 했단다. 얼마나 좋을까?”
“남편이 몇 살인데?”
“아마 마흔 하나 인가봐.”
“돈 많이 벌어놨대?”
“야. 애를 돈으로 키우냐? 제 밥은 제가 챙겨 나오는 거야.”
“그럼 형네 애들을 제 밥을 제가 마련해 먹고 그래?”
“이 자식 왜 이렇게 까칠한 거야?”
“애 대학 들어가면 환갑이겠네. 나 원 참.”
내가 까칠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 부부가 용기 있게 아이를 출산 한 것이야 당연히 아름다운 일이다. 따라서 나는 마음속으로, 소식을 전한 선배 이상으로 그들에게 축하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그것은 축하받을 일임과 동시에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엄청나게 들어갈 것이 분명한 교육비는 차치하더라도 남들보다 최소한 열 살은 많은 부모님이 자모회에 나오는 모습을 봐야 하는 자식을 어떻게 납득시키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할 사회에서 나름대로 적응해 가는 아이와 어떤 경로로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며, 자식에게 가르침을 주되 어떤 방식으로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게’ 할 것인지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난제가 그 부부 앞길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 분명한 바, 마냥 축하 타령만 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하게’ 축하축하 하고 있는 게 영 못마땅했다.
마치 아들 하나 낳아 주는 것 외에 다른 것은 며느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가 방금 출산한 손자를 안고, 피 흘리며 고생한 며느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기뻐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어쩌랴... 고 녀석 비비안나를 보자마자 나 역시 후배 야고보의 손목을 덥썩 잡고 잘했다, 수고했다, 축하한다 어쩌고 하면서 감격에 몸을 떨었던 것을... (수고했다니, 그 녀석을 야고보가 낳았나? 아가다가 낳았지.)
아기, 오줌을 질금거릴 만큼 예쁘다
유모차에 앉아 이제 막 대면하기 시작한 이 세상이 매우 어색하다는 듯한 몸짓으로 발을 버둥거리는 고 녀석의 코는 똑 내 새끼손톱만 했다. 그리고 쉼 없이 오물거리는 고 앙증맞은 입술에 눈은 또 어찌나 동그랗고 말간지. 희다 못해 파르스름한 눈자위와 그만큼의 분량으로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동자는 곁눈질 할 새도 없이 제 앞에 출몰하는 인간들을 탐색하기에 바빴다. 마침내 내 얼굴이 고 녀석의 얼굴 앞에 등장할 수 있는 차례가 되었고 나는 매우 느끼하고 늘어지는 발음으로 ‘안’ 자에 악센트를 넣어서 이렇게 외쳤다.
“비비‘안’나아아아아아...”
이미 고 놈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었건만 나는 더 큰 기적을 경험하고야 말았으니... 아 이 녀석이 나를 보고 냅다 배시시 웃는 것이었다. 으아, 나는 정말 미칠 뻔했다. 예전에 우리 어머님 살아생전 당신의 손녀딸을 보실 때 마다 오줌을 질금거릴 만큼 예쁘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나도 하마터먼 질금거릴 뻔 했다. 나는 그 웃음을 유지시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비비안나 까꿍. 메롱. 지지배배지지배배. 뚜루루루루...”
그곳은 내 단골인 동네 돼지 부속 집 앞의 야외 테라스였고 수많은 사람들, 특히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의 왕래가 이어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곳에서 러시아산 불곰을 연상케 하는 큼직한 사내가 작은 유모차 앞에 웅크리고 앉아 양 손을 귀 옆에 대고 쥐락펴락 하면서 까꿍 메롱 타령을 하고 있었으니 참 객관적으로 볼 때 쪽팔리는 일이긴 했다. 따라서 우리 마누라 역시 나를 필사적으로 말리기 시작했다.
“토마스. 정신 차려요. 당신 미쳤어요?”
“그래 나 미쳤다. 비비안나.. 까꿍. 잼잼...”
하지만 비비안나와 내가 벌인 퍼포먼스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박장대소했고 그야말로 고기 불판 주위로 평화가 넘실대는 게 눈에 보였으니 내가 미치지 않았던 것은 분명했다.
나 아직 쌩쌩해
그 날 밤 나는 마누라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여보. 우리도 아직 안 늦었다오. 나 아직 쌩쌩해.”
“뭐가 안 늦어요. 이 인간이 진짜 미쳤나?”
“야고보도 사십대고 나도 사십대요.”
“야고보는 사십 하나고 당신은 사십 여덟이예요. 정신 차려요.”
“일곱 살밖에 차이가 안 나지 않소. 그리고 무엇보다 비비안나의 그 예쁜 눈과 코, 그리고 입을 보는 순간 나는 아이가 갖고 싶어졌소.”
“...... 거울을 보고 얘기해요. 당신 눈은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렵잖아요.”
나 닮아서 눈이 작은 아이가 태어날까봐는 아니지만 아무튼 나의 돌발적 충동은 색시의 합리적 제재로 인해 무마되었다. 그리고 이제 조금은 알 듯 하다. 과연 생명이라는 게 무엇이고 왜 우리가 하느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지 말이다.
하, 고 녀석, 비비안나......
/변영국 2008-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