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전국사제기도회 청주서 열려

민주주의의 실현과 새로운 국가공동체를 준비하는 제7차 전국사제시국기도회가 8월 3일 청주 금천동성당에서 열렸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 사제 78명과 수도자 등 시민 1100여명이 함께 해 뜨거운 시국기도회의 열기를 이어갔다.

조성학 신부는 강론에서 "우리가 그동안 지은 죄가 얼마나 큽니까? 우리는 제16대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 큰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용산 형제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책임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밖에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 하에서 불의에 맞서다가 잡혀간 모든 사람의 고통들에 대한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조 신부는 우리가 그동안 공범자로서 저지른 죄악이 얼마나 큰지 깊이 뉘우치고, 오늘의 시국에 대한 책임을 절실히 통감하며, 보다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야한다고 했다.

용산참사 유가족 유영숙 씨는 "남편은 살려고 망루에 올라 갔는데 주검으로 내려왔습니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남편은 도심 테러리스트가 되어 있었습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전교조 충북지부장 남성수 스테파노 씨는 "교사들의 시국선언은 정권을 겁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하며 정상적인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돈 많은 사람만 행복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했을 뿐인데 학교에서 나가랍니다. 아이들을 차별하고 불행하게 해야 합니까. 무엇이 불손하고 위험하다는 것입니까. 그냥 상식적으로 말한 것뿐입니다."라며 현 정권의 교육정책을 비판했다.

금천동성당은 잔디밭과 식당에 스크린을 설치해 많은 시민들이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인국 신부가 "밖에 계신분들 들리십니까?" 라고 묻자 "네, 들립니다"라는 답이 들려 왔다.

제8차 전국사제시국기도회는 오는 8월 10일 부산교구 중앙 주교좌 성당에서 개최된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아이들이 성당 벽에 설치된 스크린을 보고 있다.

 

조성학 신부 강론 전문

사랑하는 신자여러분, 사랑하는 시민여러분,

우리는 지금, 전국을 돌면서 7번 째 맞는 시국미사를 청주교구 금천동 성당에서 봉헌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오늘의 시국이 어떠하기에 이렇게 고생하며 모였습니까? 시국의 본질과 그 상황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시와, 다산 정약용 요한 형제가 약 200년 전에 쓴 ‘용산촌의 아전’과 ‘도둑고양이’라는 시, 두 편의 일부를 먼저 소개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공범자로서 저지른 죄악이 얼마나 큰지 깊이 뉘우치고, 오늘의 시국에 대한 책임을 절실히 통감하며, 보다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여러분과 함께 올바로 찾고자 합니다.

첫 번째 노대통령의 유언시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큽니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화장해주십시오.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 주십시오.> 부엉이 바위 상상

두 번째 용산촌의 아전 시입니다.
<아전들이 용산촌에 들이 닥쳐 소를 빼앗아 관리에게 넘겨주네. 백성을 구제하란 왕의 명령은 끝내 오지 않고 모든 목숨 서로 베게하여 죽어가네. 궁핍하게 살자니 슬픈 일이고 죽은 사람 차라리 편안하도다. 아낙네는 있으나 남편이 없고, 울며 끌려가는 소 바라보니 눈물이 솟아, 떨어지는 눈물 치마폭을 적시네. 용산촌은 피폐하여 궁핍 일색인데 아전은 앉아만 있고 어찌하여 돌아가지 않는고. 앉아서 생활수단 소를 빼앗겼으니 온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목이 메네. 끌고 간 소로 포 떠서 고관 집에 바치니 관리들 출세 길 이로써 결정되네.> 용산 현장 상상

세 번째 도둑고양이 시입니다.
<남산골 한 늙은이 고양이를 길렀더니, 해묵고 꾀 들어 요망하기 여우로세. 하늘이 너를 만든 것은 본래 어디다 쓰려 했는냐, 너로 하여금 쥐 잡아서 백성 피해 없애라 했지. 이 때문에 너를 보내 쥐 잡는 대장으로 삼아 마음대로 찢어 죽일 권력 네게 주었고, 황금같이 반짝이는 두 눈을 주어 칠흑 같은 밤중에도 올빼미처럼 벼룩도 잡을 만큼 두 눈 밝혔지. 너에게 보라매처럼 쇠발톱 주었고, 톱날 같은 범의 이빨 또한 주지 않았더냐? 하루에 백 마리 쥐 잡은들 누가 말리랴, 보는 사람마다 네 기상 뛰어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줄 뿐. 너 이제 한 마리 쥐도 안 잡고 도리어 네 놈이 도둑놈 되었구나. 나 이제 붉은 활에 큰 화살 매겨, 내 손으로 네놈들을 쏘아 죽이리. 만약에 쥐들이 행패 부리면, 차라리 무서운 개를 불러대리라.> 청와대 회의 상상

이 나라 대통령이었던 사람, 고향 봉화 마을로 내려 농사를 지었던 사람, 가장 낮은 자리 논밭으로 들어가 농사꾼으로 말년을 보내려고 했던 사람, 우리 대통령이었던 사람, 누가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어 건강을 해치게 하고 죽게 했나. 또한 평생을 가난한 농사꾼으로 살았던 사람들, 서울에 올라가 피땀을 흘리며 밤잠도 설치며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 벌은 돈 몽땅 상가 전세금 내고 장사했지만 그래도 전보다 살만했던 사람들, 뉴타운 도시개발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몇 마디로 저항했던 사람들, 누가 그들을 불에 타 죽게 했던가!

우리는 그 살인자들을 압니다. 우리는 그 살인자들을 모릅니다. 왜 나는 ‘우리는 안다.’고 말하면서, 왜 또 ‘우리는 모른다.’고 이렇게 혼자 외칩니까? 전직 대통령 노무현과 용산의 우리 다섯 형제를 죽인 자들은 분명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입니다. 하지만 이들만이 죽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죽인 것입니다. 지난 대선 때 우리가 이명박에게 투표하여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지난 총선 때에서도 한나라당 후보자들을 지지하여 정권을 그들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비자 교리 때 첫영성체를 준비할 때, 살인하는 것이 대죄 중에서 가장 큰 죄라고 배웠습니다.

역사가들은 1801년 신유박해를 계기로 독식노론정권이 등장하면서 조선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유교의 경전을 자기 구미에 맞게 해석하면서 자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노론 세력이, 오늘날에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면서 자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뉴라이트세력처럼, 모든 권력을 동원하여 백성 편에 있었던 남인파 인사와 천주교신자들을, 다 잡아들여 고문하고 귀양 보내고 죽이며 박해했습니다. 그들이 죽거나 힘을 못 써야, 마음대로 도둑질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은 불법 날치기로 통과된 미디어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을 무기로, 그 때 못지않게 우리 국민을 속이며 이제 본격적으로 살인강도질을 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이 권력을 이명박 한나라당에게 준 것은 다산 정약용 말대로 도둑놈들을 잡아 백성 피해 없애라고 준 것인데, 한 놈도 안 잡고 그들과 한 패가 되어 서로 나누어 먹게 되었습니다. 독재는 정권이 무너지지만, 독식은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만이 도둑놈이요 강도입니까? 물론 큰 도둑이요 강도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들도 자신도 모르게 좀 도둑질은 물론, 어느 때는 강도질을 하며 사람을 죽인다고 가톨릭 교리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제2446항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 갖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지은 죄가 얼마나 큽니까? 우리는 제16대 우리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 큰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용산 형제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책임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밖에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하에서 불의에 맞서다가 잡혀간 모든 사람의 고통들에 대한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제1868-9항에 의하면 죄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행위입니다. 하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범죄에 협력하면 그것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경우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죄악에 직접 혹은 고의적으로 관여할 때입니다. 그 죄악을 명하거나 권하거나 지지하거나 묵인하는 경우입니다. 그 죄악을 알려야 할 때 알리지 않거나, 막아야 할 때 막지 않은 경우입니다. 그 범죄자들을 보호하는 경우입니다.

이처럼 죄악은 사람들을 서로 공범이 되게 하고, 그들 사이에 탐욕과 폭력과 불의가 판치게 합니다. 죄악은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사회적 상황과 제도와 법을 만들어내게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구조악은 각 개인이 지은 죄악의 표현이며 결과입니다. 이 구조악이 다시 그 구조의 희생자들을 같은 악행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구조악을 사회적인 죄, 즉 세상의 죄라 부릅니다.

사랑하는 신자들이여, 사랑하는 시민들이여!

인생은 선택의 연속과정입니다. 우리 선택의 여부에 따라 우리 인생이 결정되고, 앞으로 우리나라 운명도 좌우될 것입니다. 이런 죄악이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가 매사를 올바로 선택하여, 이 나라가 사랑과 용서, 정의와 평화로 충만한 주님의 나라로 거듭 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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