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er Van 회사에서 택시를 부르기에 달려가 보니 나이 드신 노부부가 몇 개의 큰 짐을 갖고 기다리고 계셨다. 햇살에 꽤나 그을린 듯한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느낌이 원숙한 인생 경륜을 지닌 모습이다. 다정스런 큰 나무 두 그루를 연상케했다.

목적지 공항 길로 향해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뉴질랜드 여행 3개월을 잘 마무리 지으며 그 분들의 나라 스위스로 가는 길이란다. Camper Van을 빌려 뉴질랜드 남섬 1개월에 북섬 2개월을 여행하면서 참 좋은 자연 속에서 기대 이상으로 평화와 기쁨을 느꼈단다. 이번 여행을 위해 3년전부터 준비해 왔는데, 여행정보를 수집하고 여행경비를 마련하면서 기다린 날들도 좋았다 한다.

여행이란 알고 준비한 만큼 보고 얻어갈 수 있다고 하시며 주변 이웃들에게 이곳 뉴질랜드의 아름답고 편안한 여행을 그대로 전하고 싶은 마음이란다. 그 분들의 얼굴에서 하늘 냄새가 물씬 피어오른다. 하늘처럼 맑아 보이는 그 분들의 얼굴은 평화 그 자체이다.

나이 서른 살까지의 얼굴은 하늘이 만들어 준다지만 서른 이후의 얼굴은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간다고 하지 않던가? 그 분들의 얼굴에 겸허함과 온유함 거기에 여유로운 느낌이 있어 좋다. 평범하고 사소한 것이라고 흘려보냈던 일 조차도 여행길에선 새롭게 보이지 않던가!

발길 머무는 곳에 Camper Van을 세우고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지긋이 바라다 볼라치면 그 느낌이 어떨까? 새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상큼한 바람, 초록빛 내음, 빨갛게 타오르는 노을, 쏟아지는 별빛, 밤새 떨어지는 빗방울소리, 영롱한 새벽 이슬, 산허리를 피어오르는 물안개, 푸른초원 흰 양떼들…

사소한 것을 중히 알아보는 지혜의 눈뜸에 그 얼마나 가슴이 설레고 뭉클해질까? 계획이 있으면서도 쫓기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머물면서 이어지는 여행! 정말 그런 여행을 한번 해보고 싶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그 분들은 기다림의 기대와 세상에 감사한 맘으로 가득 차 있다. 자녀들 다 출가시키고 남은 여생을 화려한 외출식 여행이 아닌 자연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옮기는 발걸음에 편안함도 있고 때때로 고단함에 이어지는 단잠도 한 번씩 실컷 잘 수 있어 그 아니 좋을까?

왜 어느 작가는 그리도 강조했을까? “세상 언어 가운데 최후로 두 가지만 남긴다면 그것은 ‘사랑’과 ‘여행’이다”고. 정말 할 수 있는 한 사랑하면서, 여행으로 다져가는 생활은 축복일 게다. 뉴질랜드를 석달간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서슴없이 남섬 Milford Sound를 으뜸으로 꼽는다. 자연이 만들어낸, 아니 하늘이 내려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자 축복이란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느끼지 못한 용솟음쳐 오르는 자연 생명력에 압도됐단다. 충분히 수긍이 가고 역시 동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몇 년 전 한번 다녀온 그곳의 정경과 기운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아니래도 시가 나올 것만 같고, 노래를 잘 하지 못해도 절로 찬양이 올려질듯 싶은 곳으로 남았으니 말이다.

우리가 한번씩 길을 떠나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야로 이끌어 준다. 세상이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며 새로운 에너지를 샘솟게도 하는 듯싶다. 어쩌면 본래의 창조 모습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연과 하늘에 눈길을 주며 한번씩 일상을 떠나도 볼일이다. 이탈리아나 덴마크,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여행객들을 가끔씩 택시에 태우면서 잘 정착된 그네들의 휴가 문화가 부럽게 느껴지곤 한다.

그들은 휴가를 사치품이 아닌 생활의 일부로 받아 들이고 있다. 1년에 한번씩 길게는 3개월 짧게는 한 주일 이라도 꼭 휴가를 보낸다. 우리 말 가운데 휴가의 휴(休)자를 들여다보면 참 깊은 뜻이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 인(人)변에 나무 목(木)자가 합해 하나될 때 비로소 휴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자연과 하나 돼 교감을 나누면서 자신을 돌아다보게도 되고, 보이지 않는 그 분의 숨결도 묵상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 속에 자신을 내 맡길 때 피곤했던 심신은 다시 회복될수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연은 모든 병을 치유 할 수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공항에 그 분들을 내려 드리고 짐을 꺼내 카터에 실어 그 분 손에 전해드렸다. 두 손을 꼭 쥐어주신다. 멀어져가는 그 분들을 바라다보니 미래의 나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듯 하다. 여행은 만남이 있는 축복이다. 새로운 곳과 자연 그리고 특색있는 풍물도 만난다. 역사와 현재, 미래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 분을 만난다.

/백동흠 2008-07-02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