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올 봄, 아침저녁 출퇴근 때마다 새로 생긴 좌판행상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쓰다버린 모자와 벨트를 손질한 중고품을 파는데, 하도 손때가 묻고 낡아서 과연 팔릴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건도 물건이지만 주인의 인상과 옷차림이 심상치 않다. 어찌나 험상궂고 사나워 보이는지 흥정만하고 그냥 가면 욕설에다 주먹이 즉시 날아올 것처럼 위협적이다. 눈 마주치는 것도 겁이 나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척 하면서 좌판을 훔쳐보곤 했다.

푹 눌러쓴 군인모자, 너덜너덜한 군화, 색이 바랜 군복의 밀리터리룩에 주독이 꽉 밴 검붉은 피부, 툭 튀어나온 광대뼈, 부리부리한 눈, 푹 패인 주름살에다 더욱 살벌하게 느껴지는 건 손등과 굵은 팔뚝위에 새긴 기괴한 푸른색 문신들이다. 손님과 이야기 할 때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쉰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서 협박을 하는 건지 흥정을 하는 건지 헷갈린다. 아무튼 아저씨의 인상은 한마디로 “나 쎈 사람이야! 무시하지 마!”이다. 다혈질에다 성미가 불같아서 곧 장사를 접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좌판이 사라지고 합판으로 만든 진열대가 등장했다. 모자와 벨트 대신 어디서 구했는지 짝퉁 중고품 가방들을 주렁주렁 걸어놓았는데 손님도 조금씩 느는 것 같았다.

▲ 산다는 것은 때로 딴청을 부리는 것처럼 무심함이 필요하다. 짐짓 모른 체... 아니면 위선이나 위악으로. ⓒ한상봉

그날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누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아저씨였다. 술에 잔뜩 취한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고 갈 지(之) 자를 그리더니 내 옆에 바싹 얼굴을 들이밀고는 혀 짧은 소리로 시비를 걸었다. 돈이 필요하니 좀 달란다.

그동안 열심히 장사하는 성실한 모습만 봤는데 술주정하는 뜻밖의 모습에 실망과 걱정이 교차했다. 추정컨대 알코올 중독 같았다. 그렇다면 큰일이다. 그러고 보니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울 때도 항상 막걸리 한 병이 따라 다녔고 벌컥벌컥 마시는 것도 자주 봤다.

아저씨는 알코올 중독이 의심되었다. 지난여름, 온종일 30도를 웃도는 폭염과 뜨거운 햇빛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그늘이라곤 한 점도 없는 도심의 아스팔트 위에서 행상을 한 그 노력과 수고를 알기에. 알코올 중독이라면 심각한 병이다. 오랫동안 노숙인 자선병원에서 일하면서 술 때문에 삶이 완전히 망가지는 모습을 수없이 봤기 때문이다.

“가방 파는 아저씨에 대해서 좀 아세요?” 참다못해 바로 옆 버스 정류장에서 구두 수선을 하는 단골 할아버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집도 가족도 없고 고아원 출신인데 혼자 떠돌아 다녀. 감옥도 갔다 왔고... 술 없이는 못 살아. 술기운으로 저 장사를 하는데 겉모습은 저래도 심성은 착하고 고와. 인정도 많은 사람인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사람이 사노라면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쓰게 된다. 그가 고집하는 군복, 술, 문신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쓴 가면이라고 생각한다. 가면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실은 착한데 악한 척 보이려고 쓰는 가면, ‘위악’이라는 가면이다. 반면 ‘위선’이라는 가면이 있다. 실은 악한데 선하게 보이기 위해 쓰는 가면이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위선’이다. ‘위악’은 ‘악’을 겉으로 드러내지만 ‘위선’은 ‘악’을 교묘하게 감추고 ‘악’을 ‘선’으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악’을 혼동하게 만들고 진실을 가린다.

더위가 물러나고 제법 서늘한 기운이 돈다. 오늘도 막걸리로 충전하고 군복으로 무장한 아저씨의 검붉은 얼굴과 흉한 문신이 도심 한 가운데에서 생존을 위해 싸운다. 그 튀는 모습이 누구에겐 신기하게, 누구에겐 불쾌하게 보일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멀리서 그를 향해 “화이팅!”을 보낸다. ‘위악’이라는 착한 가면을 쓴 거니까. 적어도 ‘위선’이 아니니까. 그러나 ‘위악’도 ‘위선’도 필요 없이 착한 심성의 사람이 손해도 무시도 당하지 않고 오롯이 대접받고 그 심성을 알아주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심명희
/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