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 시인 인터뷰
처음 김유철 시인을 만난 건 그의 세 번째 시집 <천개의 바람> 북콘서트 자리였다. 손수 붓을 들어 쓴 ‘천개의 바람’을 담담하게 낭독하던 시인에게서,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각종 시민단체 일을 보느라 분주한 얼굴을 찾기란 어려웠다. 김유철 시인이 서른 해 동안 발 딛고 사는 창원을 찾아, 분주함 가운데서도 시를 놓지 않는 이유를 들어보았다.
시인의 하루는 어떠한가요?
저는 철저히 일상을 사는 사람이라서 아침이면 와이셔츠 입고 넥타이 매고 출근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죠. 한량인 줄로 알았더니, 정확한 시간에 회사 출근한다는 것에 일단 놀라고, 사장이 아니라 직원으로 일한다고 하면 “그 성격을 누가 데리고 있어요?” 하면서 두 번 놀라요. 회사에선 열심히 일하지만, 저녁 6시에 퇴근한 이후엔 철저히 회사와 담을 쌓고 살아요. 제가 퇴근 이후엔 회사 일로 전화 안 받기로 유명해요. 혹시 받더라도 “퇴근했습니다.” 하고 끊어버려요. 그리고 하루에 한두 건 시민단체 일을 봐요. 경남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 총연합) 부회장을 맡아서 준비해야 할 행사도 많아요. 그러다보니 시 쓰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대신 새벽에 아무 때나 일어나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책을 보기도 하고 글을 쓸 때도 있어요. 평생을 이렇게 바쁘게 살았어요.
남들은 직장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기도 하는데, 나는 ‘회사를 그만두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도 이십 년째 그만두지 못한 사람이에요. 어떻게 보면 용기가 없죠. 회사를 그만두면 애들이랑 마누라 굶길까봐 걱정하고요. 이 시대의 밥벌이라는 게 이렇게 치사해요. 하지만 올해는 여러 가지를 떠나보려고 해요. 회사 그만둘 수도 있고, 책도 버리려고 해요. 쉰이 넘어가니까 책에 매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에 아무리 좋은 이야기가 있어도 이건 남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고요. 장서가들 보면 책을 쉽게 버리지 못하잖아요. 저도 최근에서야 지금 갖고 있는 책만큼을 버렸어요. 막상 버리고 나니 별 볼일 없는 책을 쌓아두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버리고 나면 내년에는 제 인생이 많이 달라질 거예요.
바쁘시다보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요.

오랫동안 글을 쓰셨는데,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하셨어요.
시인이라는 정체성이 생긴 이유는?
시는 오래토록 나에게 있었어요. 삼십 년 전에도 시를 썼어요. 하지만 다른 글들도 썼지요. 2006년에 민족화해위원회 이름으로 평양을 방문했는데, 그때 다녀와서 쓴 게 ‘평양의 베란다에도 화분이 있습니다’라는 수필이에요. 가톨릭문인협회에서 덜컥 수필 신인상을 준다는 연락이 왔어요. 상을 준다니 받긴 하는데 마음이 복잡해졌어요. 제가 문학을 하려면 시인으로 나가야지 수필가면 안 되는데,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른 춘천의 박두규 시인에게 전화해서 한국작가회의에 시인으로 추천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죠. 늦은 나이에 시 다섯 편을 내서 심사를 받았어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는 그냥 시인이고 싶었어요. 가장 함축된 언어로 함축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시라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거든요.
예수라는 청년을 만났을 때에도 내 머릿속으로 들어온 그 청년의 이야기는 시였어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은 어느 종교에서도 어느 문학작품에서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한 마디로 ‘아빠’라고 부르는 젊은이 앞에 자지러진 거죠. 예수가 꼰대나 윤리선생처럼 가르쳤다면 전 예수를 믿지 않았을 거예요. 아무리 사랑을 강조하고 기적을 베풀어도 말이죠. 예수가 시를 말하는 청년이라는 게 너무 좋았어요. 저는 성경필사 대신 예수의 말만 적어보라고 해요. 성경에 양쪽 따옴표 붙어있는 것만 써보는 거죠.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한 말인지 살피면 성경에 통달할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은 듣지만 그 말을 제자들에게 한 건지, 오천 명 앞에서 한 건지, 율법학자 앞에서 한 것인지는 몰라요. 다양한 맥락의 말들이 아픈 말은 아픈 대로 좋은 말은 좋은 대로 제게 시로 다가왔어요.
시를 쓰는데 영향을 준 시인이 있나요?
고등학교 때 김현승의 시를 보면서 “내가 졌다.”라고 했어요. 서정주의 시를 봤을 때 두 번째로 “내가 졌다.” 했지요.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시인은 그 둘이에요. 그리고 시인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자극을 주는 작가는 김훈이에요. 김훈 선생은 소설과 수필을 쓰지만, 제겐 그 말들이 다 시예요. 시이고, 칼이고, 바람이죠. 바로 그게 제가 요즘 이야기하려는 바람이에요. 올해 <천개의 바람>이라는 시집을 냈더니, 많은 사람들이 시집을 보고 세월호를 떠올려요. 제주에 ‘딸아비 오름’이 있어요. 딸과 아버지의 전설이 있는 큰 오름이죠. 바람이 엄청 부는 날 딸아비 오름에 올라갔더니, 바람이 저를 확 할퀴고 지나갔어요. 바람의 끝을 만난 그런 기분으로, 그 자리에서 쓴 시가 ‘천개의 바람’이에요. 하지만 여기서 ‘천개’는 숫자로 1000개가 아니에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란 말이 있죠. 천 개의 강에 달이 비추면, 천 개의 달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달이죠. 그런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수없이 많은 바람이 불어왔지만 그 모든 바람이 하나의 바람이었기를. 결국 그것이 사랑의 바람이었기를, 모든 것이 사랑이었기를...

사랑이라는 주제가 중요하신가요?
제겐 아주 중요해요. 저는 이성과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예수의 사랑을 조금씩 깨달았어요. 사랑을 하니까 사랑이 얼마나 좋은지, 사랑하는 사람에겐 얼마나 잘해주고 싶은지 예수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거죠. 우리가 성당에 앉아 생각하는 예수의 사랑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이에요. 간절함이 없어요. 간절하다는 것은 ‘불안한 파국의 정황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 더 내딛는 것’이에요. 예수에 대한 믿음은 신앙의 문제이기 이전에 간절함과 신뢰의 문제예요. 사람들은 예수는 믿지만, 예수의 방법은 믿지 않아요. 예수의 방법은 ‘지는 것’이에요. 성모상을 방마다 놓아두고도 성모님의 방법은 신뢰하지 않아요. 그 방법대로 살면 큰 일 나거든요. 아이 낳을 방도 없고, 그 아이는 나중에 끌려가서 죽고, 자신은 남의 집 아들에게 빌붙어서 살아야 하는 저 어머니의 방법은 신뢰하지 않아요. 옆집 남편보다는 조금 더 많이 버는 남편을 만나서 옆집 애보다는 조금 더 공부 잘 하는 애들 키우 게 싶은 게 우리의 방법이에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예수의 방법에도 동의하느냐고 물어봐야죠. 이렇게 보면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를 신뢰하지 않아요.
젊어서부터 제게 가장 큰 신앙의 주제는 ‘예수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예요. 예수에 대해 갖고 있는 책도 여러 권이죠. 하지만 신앙보다 신뢰가 중요한 것처럼, 우리에겐 ‘그리스도론’보다 ‘그리스도 실천론’이 필요해요. 교리서를 보면 예수를 이야기하는데, 예수처럼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거의 소개하지 않아요. 똑똑한 학자들이 그리스도 실천론을 연구해주었으면 해요. 예수는 현학자도 꼰대도 윤리학자도 아니었어요.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잔소리 늘어놓는 쫀쫀한 사람이 아니었다고요. 그런데 우리는 쫀쫀한 교리를 만들고 있어요. 대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이야기 해야죠. 예수는 존재 자체예요. 그를 따르는 신앙인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랑해야죠. 제 시 ‘육하(六何) 너머’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왜 / 사랑은 육하 너머에 있다 / 사람도 분명 육하 너머에 있다”
사랑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분명 사랑이었을 거예요. 질문을 받으니 생각나는 말이 있네요. “답이 답이 될 때까지 마음속으로 문제를 갖고 있어라.” 굉장히 어려운 말인데, 그 말이 바로 이런 뜻이었구나 싶네요.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 그것이 정답이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답이 될 때까지 질문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거죠. 그게 사랑이라는 말을 시로 쓰고 싶었어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스틸 앨리스>라는 영화가 있어요. 여주인공이 콜럼비아대학의 언어학 교수인데, 학교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갑자기 어디로 가는지 잊어버려요. 알츠하이머에 걸린 거죠. 언어학 교수인데 점차 언어를 잃어버려요. 남편을 붙들고 “내 머릿속에 많은 것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요.”라고 하면서 울어요.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지막 장면에 나와요. 다 자란 딸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를 앉혀놓고 자신이 어딘가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줘요.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딸이 엄마 눈을 보니까 엄마는 자신이 한 이야기를 모르는 것 같아서 물어봐요. “엄마, 지금 내가 한 이야기 모르지?” 엄마도 당황하죠. 그런데 3초 후에 엄마가 씩 웃으면서 안다고 이야기해요. 딸이 묻죠. “내가 뭐라 그랬는데?” 엄마가 대답해요. “러브.” 네가 말한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거죠. 저의 수많은 바람도 사랑이었을 거예요, 분명.
이희연 기자 / 뜻밖의 소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