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살과 뼈, 심장을 비롯한 각종 몸의 장기와 핏줄을 의학적(?)으로 연결시켜놓은 들 우리는 그것을 사람 혹은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가와도 설사 그것이 70번 반복된다고 손 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태극기 물결이 눈을 찌른다. 높다랗고 널따란 등판을 지닌 건물들은 무조건 징발되고, 터미널과 기차역, 말쑥한 다리와 말짱하게 생긴 길목은 모두 징용감이다. 언제 적 누가 하던 짓거리를 이렇게도 개코원숭이처럼 흉내 내고 있단 말인가? 아무리 좋은 냄새도 과하면 콧잔등을 찡그리는 법인데 해도 해도 너무한 일들이 애국이란 이름으로 강요되고 세뇌되고 고문중이다. 일단 명토 박고 시작하자. 민주주의는 애국주의가 아니다.

임시공휴일을 만들 정도로 그대는 광복이 자랑스러운가? 이 나라의 정치인, 경제인, 예술인, 학자, 공무원 등등이 그토록 조국광복에 목이 쉬어라 기쁨이 넘쳐나는가? 어디로부터, 누구로부터의 광복을 말하는 것인가? <암살>이란 영화처럼 친일한 민족의 배반자들을 우리는 모두 처단했으며 그래서 속 시원히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있는 것인가? 다시는 그런 치욕을 없을 것이라 다짐하며 1년, 2년, 3년을 거쳐 70년을 지금 여기서 기념하자는 것인가? 두 번째 명토를 박는다. 어림 반 푼 어치 없는 지나간 70년이다.
지금 한반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20세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타나서, 21세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것은 그토록 덧없이 짧은 것이다. 돌이켜보자. 한반도의 20세기 시작은 대한제국이었다. 그러나 그 국호의 ‘제국’은 나라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호랑이 입 안에 들어간 가녀린 먹이였을 뿐이었다. 20세기가 시작하고 10년 후 즉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귀와 눈과 입을 모두 빼앗겼다. 민족의 소녀들까지 몽땅! 우리가 말하는 70년 전 국호 없는 한반도는 남의 힘으로 광복을 맞이하지만 그것은 독립이 아니라 분단이었다. 세 번째 명토 박아 말한다. 기쁜 광복 70년이 아니라 슬픈 분단 70년이다.
남북의 언어가 달라지고, 시간이 달라지고, 생활방식이 달라지고, 신체유형이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 두려운 분단의 배설물들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의 벽이 높아가는 것이다. 재래식 무기로 쌍방 3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한 번의 전쟁을 이젠 가공할 무기로 무장하고 또 한 번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무리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일까? 그들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 와중에 민족의 치욕에 대한 아무 것도 청산하지 못한 채, 아니 암살되지 못한 친일파의 후예들이 정계, 경제계, 학계, 종교계 사회 곳곳에서 “이대로!!”를 외치고 있다. 네 번째 명토를 박는다. 우리는 광복되지 못했다. 전혀.
펄럭이는 태극기가 싫은 것이 아니라 슬픈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부끄러운 것이다. 우리는 지난 70년 무엇을 했던 것일까? 독재와 패거리정치, 재벌경제와 부익부 빈익빈, 모래성 학벌과 고정화된 사회계급, 기복종교와 세월호도 모자라 분단의 공고화로 이루어진 광복 70년 만세를 부를 것인가? 미래는 지금 여기서 결정된다. 우리가 분단을 어떻게 생각하며, 광복을 어떻게 여기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광복 100주년이 분단 100주년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오늘을 다시 살아야한다. 오늘이 바로 내일의 모습이다.
김유철 / 시인, 한국작가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