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만화가 김준희 씨 인터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는 말괄량이 삐삐처럼 머리를 양 갈래로 딴 캐릭터와 귀엽게 생긴 예수님이 등장하는 만화 <지금예수>가 연재 중이다. 연재 100회를 맞은 <지금예수>를 그린 만화가 김준희 효주아녜스 씨는 머리를 양 갈래로 따고, 예쁜 헬멧을 쓴 채 오토바이를 타고 인터뷰 할 카페에 나타났다. 의정부교구 사회사목국 산하의 대안학교인 ‘도담학교’에서 무급 교장을 9년 간 맡았던 그녀는 유쾌한 표정으로 세 시간 내내 끝없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가족 이야기를 해도, 좋아하는 것에 대해 떠들다가도, 요즘 그리는 만화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도담학교 아이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기승전‘도담학교’인 그녀는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교사이면서, 그림을 전공하지 않고도 우연한 계기에 만화를 시작한 만화가이고, 사람을 좋아하고 잘 챙기는 ‘오지랖쟁이’였으며, 좋은 것을 보면 사람들과 함께 할 계획을 세우는 꿈쟁이였다.

도담학교에 교장으로 가게 된 계기는?
도담학교는 원래 공부방으로 출발했어요. 처음엔 한 해만 미술치료 같은 걸 해줄까 하고 갔다가, 애들을 만나니 딱 제 수준이더라고요. 너무 예뻐서 아이들을 끊지 못하고 2006년부터 공부방 4년, 2011년부터 학교로 5년을 꼬박 함께 했죠.
제가 만화를 그리다보니 다들 미술 전공인 줄 아시는데, 실은 교육학을 전공했어요. 아버지가 자녀들이 법대 가는 걸 원하셨는데, 위에 오빠와 언니들이 아무도 법대에 안 갔어요. 사 남매 중 막내다보니 저라도 가라고 하셔서,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희망엔 당연히 ‘법관’이라고 썼죠. 그런데 법대 입학시험을 봤는데 떨어졌어요. 집에서 삼수는 안 된다고 해서, 못하던 한문이 적게 나오는 과를 알아보다가 교육학과에 진학했죠. 막상 가니까 재미있었어요. 상담도 배우고, 교생실습도 나가고. 그런데 같은 내용을 여러 반에서 반복해서 말하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교사임용은 포기했었죠. 대안학교는 좀 달라서 마음에 들었어요.
대안학교에 오니 제 관심 분야가 다양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됐어요. 어릴 때는 “열 우물 파다가 제대로 하는 게 없다.”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학교에 오니 그 열 우물이 하나로 모아지는 것 같아요. 대안학교 선생님은 엄마 같아서 밥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애들 이야기도 들어주고, 재밌는 것도 해줘야 하거든요. 공부도 제가 일곱 과목이나 가르쳤고요.
어릴 때부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동물, 사진, 운동, 먹는 것, 영화, 노는 것, 만화책...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들도 좋아했어요. 도시락 싸가면 오전에 다 까먹으니까, 점심 때는 큰 식빵을 싸가고 ‘사라다’라고 마요네즈 잔뜩 버무린 것을 가져가서 친구들과 둘러앉아서 발라 나눠먹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저희 반이 60명이면 60개를 손수 다 만들어서 줬어요. 지금도 친구들이 카드 준 것을 많이 기억하더라고요. 한 명이라도 안 받고 소외된 게 싫었어요. 섭섭할 것 같고 마음이 쓰여서 다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어릴 때 주고받은 편지도 다 갖고 있어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지만 지금 보면 재미있어요.
아이들에게 열 우물 파도 된다고 이야기해요. 파다가 안 되면 다른 거 파고, 옆에 또 파고... 그렇게 파다가 진짜 자기 것이 나오기도 하고 저처럼 통합되기도 하니까요. 청소년 시기엔 무엇이 자기 것인지 모르잖아요. 이것도 좋은 것 같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그래서 시도해보는 것들이 기둥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기둥 세우고 나중에 지붕은 정말 자기 것을 찾아서 올리면 되는 거죠.
사람 챙기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음식을 잘 하는 건 아닌데 KBS <해피투게더-야간 매점>을 빼지 않고 보고, 다 해보고 맛있으면 가서 해줬어요. 별로 맛있지 않아도 애들이 좋아하니까 싸들고 다니면서 먹였죠. 전 들고 다니는 건 자신 있거든요. 애들이 부대찌개 해주면 “우와, 선생님 부대찌개 맛이에요!” 이게 칭찬이에요. 그럼 기분 좋아서 또 만들어주고 싶죠.
도담학교에서 아이들 생일선물은 일단 봉투를 하나 만들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생각날 때, 그 친구가 좋아하는 걸 발견했을 때 사서 봉투에 담아둬요. 이야기를 많이 나누니까 서로 뭘 좋아하는지 잘 알거든요. 큰 게 아니라 오백 원, 천 원짜리 자잘한 물건을 사서 담아두는 거죠. 생일엔 그 봉투를 주는 거예요. 정감 있잖아요. 이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생각한 시간들이 담겨 있으니까요. 지금은 아이들도 이걸 배워서 제 생일엔 봉투에 캬라멜, 볼펜 하나, 지우개 하나 이렇게 담아서 줘요.
처음 학교에 온 아이에겐 자기사용설명서를 쓰게 해요. 전자제품 사면 들어있는 설명서처럼 자신을 소개하는 거죠. 제 자기사용설명서도 읽어주고요. 어떤 건 좋아하고, 어떤 건 싫어하는지 알고 챙겨줄 수 있어요. 저도 “문자 씹으면 싫어해요.”라고 제가 싫어하는 걸 말하죠. 아이들은 “욕하지 마세요.”, “때리지 마세요.”, “안아주세요.”, “한 번에 못 알아들으니 세 번은 설명해주세요.” 등등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요. 읽다보면 이 아이는 많이 맞았구나, 이 아이는 사랑이 필요하구나 알 수 있죠. 마음껏 쓰게 하고 서로 알 수 있으니 참 좋아요.
도담학교에서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어떤 아이는 제가 자동차 좋아하는 걸 기억했다가 자동차 모형을 주더라고요. 아이들이 그런 걸 기억해주면 고맙고 신기하죠. 이런 맛에 선생 하는구나 싶어요. 함께 갔던 곳을 지나가면 그때 추억이 생각나고요. 방 값 싸다고 여름 다 지나가는데 바닷가에서 놀다가 해파리 쏘였던 것까지 추억이에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과 웃는 시간이 참 좋고요.
졸업한 친구들이 종종 찾아오는데 여전히 고민들이 많아요. 그럴 때면 “지금 너희 모습을 봐봐. 여기까지 잘 온 것 같지 않아?” 하면 고개를 끄덕여요. 처음엔 그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겁도 났죠. 머리 노랗고, 맨날 술 먹고, 눈 치켜뜨고... 그런데 친해지고 공부하다보면 다들 너무 예뻐요. 너무 무기력해서 집에선 게임만 하고, 학교 와서도 마루에서 방까지 굴러가던 아이가 친해져서 중3 때 대입검정고시까지 마치는 걸 보면 ‘이렇게 조금만 끌어주면 되는 거였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도담학교는 12시 등교예요. 오자마자 밥 먹고 와서 공부하고 좀 늦게 집에 가는 거죠. 그런데도 맨날 지각하던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지각 한 번 안 하고 일한다고 하면 뿌듯해요. 학교에서 여유를 주고 기다려주는데, 그럼 사회 나가서 고생한다고 걱정하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책임감도 생기는 거 아닐까요.
저희 집에서 학교까지 두 시간 반이 걸려요. 멀고 힘든데 왜 계속 하냐고 하면 정말 보람 있거든요. 좋은 대학 가고 어떤 성과를 내는 게 아니지만, 작게 변화된 모습들이 너무 좋아요. 아이들이 저랑 눈을 맞추면서 즐겁게 이야기하는 게 기적이죠. 큰 변화를 원했다면 도담학교를 하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한 아이의 인생에서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큰 성장이죠.
의정부교구 주보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꾸준히 올라오는 만화를 봤어요.
만화에서도 사람에 대한 관심이 느껴지더라고요.

지금여기 만화인 <지금예수>는 교회 쇄신을 촉구하는 만화가 필요하다고 시작했지만, 하다보니 그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고민의 결과물이에요. 예수님이면 이렇게 했을 테니까 나도 이렇게 해봐야지. 그렇게 묵상하고 성장하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요.
교육학과를 나오셨는데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엄마가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수업시간에 어떤 아이가 만화책을 보고 있어서 압수하신 걸 집에 가져오셨었어요. 그게 <들장미 소녀 캔디>였는데, 처음 접한 만화였죠. 1~4권을 가져오셨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따라 그리고, 먹지 대고도 그리고... 뒷이야기를 궁금해 하니까 엄마가 5~9권을 빌려 오셨어요. 그래서 또 보고. 만화가 좋다는 걸 그때 알았죠. 대학생 때 동아리로 동화반에서 그림동화를 그렸는데 그것도 재미있었어요. 결정적으로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대전 엑스포 공모전에서 입선했던 거예요. 한 번 상을 받고 나니 재미있어서, 만화가 선생님 문하생으로도 들어갔었죠. 전공이 교육학이다보니 <도와줘 법맨>, <도와줘 과학맨> 같은 교육만화를 많이 그렸어요.
성당에서 만화를 그리게 된 것도 엄마 덕분이에요. 엄마는 ‘마리아’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셨는데, 시집 오셔서 할머니가 불교를 믿으시니 성당에 못 가셨어요.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힘든 마음에 내가 대신 성당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녀님이 해주시는 교리 시간도 좋고, 빈 성당에 앉아서 울고 나면 후련해지기도 하고요. 종교를 갖게 되고, 이렇게 만화를 그리면서 더 성장하는 것 같아요. 남편도 지지해주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도담학교에 오래 있다보니 전에는 “도담학교 교장 김준희입니다.” 하고 소개했는데, 요즘은 “만화 그리는 김준희입니다.”라고 소개하게 돼요. 도담학교의 경험을 담은 만화도 그리고 싶고, 아이들과 하려다가 미처 못 다한 일들도 언젠가는 하려고 해요.
도담학교는 아이들이 언제든 와서 놀고 쉬어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다른 학교 간 친구도 와서 점심 먹고 가고. 대학 간 친구도 버스 놓치면 와서 놀다가고.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시장학교’도 해보고 싶고요. 도담학교 아이들이 차비가 없어서 학교에 못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차비를 만들어주려고 레몬차, 쿠키, 비누 등을 만들어서 열심히 팔았던 경험이 있거든요. 그 돈으로 아이들 교통카드 충전해 주고 그랬죠. 그런데 그걸 팔려고 돌아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상설시장에 들어가서 팔면 어떨까 고민했죠. 만들고 팔고 공부도 하고. 점심을 시장에서 사 먹으면 시장 경제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네일아트 배워서 시장 할머니들 네일아트도 해드리고, 일찍 가서 청소해놓고 예쁨도 받고. 그런데 자리가 비싸서 아직 못했거든요. 아이들과 함께 만든 기획서가 열 장인데 정말 자세하게 적어놨어요. 기획서가 있으니 언젠가는 작게라도 해볼 수 있겠죠.
이희연 기자/뜻밖의 소식



